지난 주말, 목적지는 충북 단양. 시승차는 지프 브랜드의 플래그십 SUV, 그랜드 체로키 L이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이 차를 타게 된 건 모두에게 행운이었다.
대형 SUV를 선택할 때 고려하는 기준은 명확하다. 공간, 편의성, 그리고 편안함. 그런 점에서 그랜드 체로키 L은 확실한 강점을 갖췄다. 길이 5204mm, 전폭 1979mm의 여유로운 차체 사이즈는 가족 구성원에게 남다른 가치를 제공한다. 특히 2열 독립형 캡틴 시트의 매력은 탑승과 동시에 가족 모두에게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아이들이 2열과 3열에 나누어 앉았고, 시트 간 거리가 충분해 서로 불편함 없이 각자의 여정을 즐길 수 있었다. 독립형 시트는 각도 조절과 슬라이딩 기능까지 제공해, 장거리 주행 시 탑승자가 자세를 편하게 바꿀 수 있는 여유까지 준다. 트렁크 공간은 기본 484리터에서 3열 시트를 접으면 1328리터, 2열까지 접으면 무려 2396리터까지 확장된다. 캠핑이나 장거리 여행의 짐들을 부담 없이 적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울퉁불퉁한 노면과 예상치 못한 요철들을 만나면, 이때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지프가 자랑하는 쿼드라 리프트(Quadra-Lift) 에어 서스펜션이다. 5단계로 조절 가능한 이 시스템은 차량의 높이와 강성을 주행 환경에 따라 최적으로 맞춰주며, 잔진동과 충격을 매끄럽게 상쇄해 준다. 장거리 주행에 매우 유용한 기능이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의 심장은 3.6리터 펜타스타 V6 엔진으로 최고출력 286마력, 최대토크 35.1kg·m를 발휘하며, 여기에 8단 자동변속기가 조합된다. 여유로운 힘의 배분 덕분에 고속도로에서의 추월 가속력도 충분했으며, 고속 주행 시 안정감은 특히 인상적이다.
다만, 2톤이 넘는 무거운 차체의 무게는 고속에서 급제동 시 미리 감안해야 할 부분이다. 브레이크의 제동력 자체는 충분하지만, 조금 더 여유 있게 밟는 습관을 가져야 운전의 품격과 안전성을 함께 챙길 수 있다.
지프의 유커넥트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10.1인치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로 제공되며, 차량 상태, 내비게이션, 오디오 등 다양한 기능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360도 서라운드 뷰 카메라는 커다란 차체의 단점으로 꼽히는 주차 난제를 말끔히 해결했다. 화면의 선명도와 시야각이 뛰어나 초보 운전자라도 큰 차의 주차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유지 보조, 사각지대 모니터링 등 첨단 운전자 보조장치(ADAS)도 탄탄하게 갖춰져 있으며, 장거리 주행에서 더욱 큰 신뢰감을 준다. 과도한 기능 탑재로 오히려 사용성을 떨어뜨리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지프는 핵심적이고 실용적인 기능 중심으로 직관성을 놓치지 않았다.
차량 내부의 가죽 시트는 퀼팅 패턴으로 섬세하게 마감됐고, 곳곳의 메탈 액센트와 우드 트림은 차 안에서 느끼는 품격을 한층 높여줬다. 누군가는 올드하다고 핀잔을 주겠지만, 실제로 만져보면 촉감이 고급스럽고, 눈에 보이는 디테일 또한 섬세하게 잘 다듬어져 있다. 단순히 고급 소재를 사용했다는 느낌보다는 세심한 설계와 품격 있는 마감으로 사용자를 존중하는 지프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국내 시장에서 지프라는 브랜드가 갖는 포지션은 평가절하된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충분한 경쟁력, 뛰어난 상품성을 제시한다. 국내 판매 가격은 오버랜드 트림 기준 약 9000만 원 내외로, 비슷한 크기의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 SUV와 비교하면 합리적인 선택지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BMW X7, 혹은 벤츠 GLS와 같은 차들 말이다. 볼보 XC90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