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코리아가 오랜만에 국내에 들여온 순수전기차, 세닉 E-Tech를 시승했다. 이번 시승은 소규모 기자단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양평에 위치한 한 카페를 목적지로 한 실주행 코스였다. 프랑스에서 생산돼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 중인 세닉 E-Tech는, 르노가 전동화 전략을 새롭게 정의하며 내놓은 핵심 SUV다.
과거 전기차 조에(ZOE)를 경험했던 입장에서 이번 세닉 시승은 꽤 기대가 컸다. 조에는 도심 위주의 주행에서 에너지 효율이 탁월했고, 급가속이나 회생제동 상황에서도 불안하지 않은 주행 안정성을 보여준 전기차였다. 그리고 이번 세닉 E-Tech 역시 그런 르노 특유의 안정성과 효율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주행 효율. 시승차는 87kWh 배터리를 탑재한 상위 트림 모델로, WLTP 기준 최대 625km의 전기 주행이 가능하다. 실제 주행에서는 공인 주행거리를 넘보는 수준의 에너지 소모 효율을 보였다. 가파른 오르막과 커브가 이어지는 와인딩 코스에서도 주행 가능 거리 하락폭이 크지 않았고, 회생제동 설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배터리 회복 효율도 꽤 만족스러웠다.
르노 세닉 E-Tech의 또 다른 특징은 정숙성과 승차감이다. EV 특유의 조용함은 기본이고, 노면 소음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방음 처리도 꽤 신경 쓴 느낌이었다. 특히 저속 주행 시 들리는 이질적인 전동 모터음도 상당히 억제되어 있어, 동승자와의 대화나 음악 감상에 전혀 방해되지 않는다. 서스펜션은 유럽차 특유의 단단함을 유지하면서도 과속방지턱이나 굴곡 구간에서는 매끄럽게 충격을 흡수한다. 가족용 전기차로 고려했을 때 이 부분 역시 가산점이 될 수 있다.
회생제동은 총 5단계로 제공되며, 패들 시프트 없이 오른쪽 스티어링 뒤쪽의 토글 레버를 통해 조작한다. 운전자의 취향에 맞게 제동감을 조절할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평소 회생제동 특유의 저항감을 선호하지 않아 대부분 끄고 주행했지만, 일상 출퇴근 등 정속 주행 위주라면 적극 활용하는 게 효율적일 것 같다.
주행 질감도 전기차 특유의 부자연스러움보다는 내연기관차에 가까운 느낌을 주기 위해 다듬어졌다. 전륜구동 방식에 125kW 모터를 탑재했고, 시스템 출력은 약 170마력 수준이다. 초반 응답성은 부드러우면서도 빠르고, 고속까지 무난히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특히 감속 시 불안하거나 뒤뚱거리는 느낌 없이 단단한 하체 밸런스를 유지한다.
차체 크기는 전장 4470mm, 전폭 1860mm, 전고 1570mm로 동급 SUV 중에서는 컴팩트한 편에 속하지만, 실내 공간은 체급을 넘어선다. 특히 휠베이스가 2785mm로 길게 뽑혀 있어 2열 레그룸은 성인 남성도 넉넉히 앉을 수 있을 정도다. 시트 착좌감도 단단하면서 포근한 편이며, 뒷좌석 등받이 각도도 적절하게 기울어져 있어 가족 단위 장거리 이동에도 무리가 없다.
트렁크 용량은 기본 545L, 2열 폴딩 시 최대 1670L까지 확장된다. 실내 하단 수납공간도 잘 정리돼 있고, 센터콘솔은 슬라이딩 방식으로 앞뒤로 이동시켜 공간을 조절할 수 있다. 글로브박스는 특이하게 서랍 형태로 되어 있어 개방감과 수납 편의성 모두에서 인상적이다.
이밖에도 최신 전기차답게 안전 및 편의사양도 충실하다. 전 트림에 전방 충돌방지 보조, 차선 유지 보조, 오토하이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등이 기본 적용된다.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는 투명도 조절이 가능하며, 실내의 개방감을 극대화시킨다. 또한 12.3인치 디지털 클러스터와 12인치 수직형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직관적으로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