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이 대형 SUV에 추가 비용을 물리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자동차를 둘러싼 도시 규제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예전에는 배출가스와 연비가 규제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차의 크기와 무게, 도심 점유 면적, 주행 속도, 혼잡 유발 정도까지 함께 관리 대상이 되는 흐름이다. 최근 런던교통공사(TfL)는 공식 계획에서 과대형·중량 차량이 안전과 혼잡, 도로 공간 점유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런던의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차가 점점 커지고 무거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 SUV는 보행자나 자전거 이용자와 충돌할 때 피해를 키울 수 있고, 좁은 도심 도로와 주차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한다는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과금 기준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자동차 규제의 잣대가 “무슨 연료를 쓰는가”에서 “도시에 얼마나 부담을 주는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관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 흐름은 런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파리는 이미 차량 무게를 기준으로 대형 SUV 주차요금을 크게 높였고, 뉴욕은 맨해튼 중심부 진입 차량에 혼잡통행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암스테르담은 도심 도로의 상당수를 시속 30km 구역으로 전환했다. 각 도시가 택한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자동차의 자유로운 이동보다 보행 안전과 도시 공간의 효율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가 자동차를 다시 설계하기 시작한 셈이다.
한국 독자에게 중요한 대목은 이런 변화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도 이미 강한 자동차 규제를 시행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양도성 내부, 이른바 사대문 안 ‘녹색교통지역’이다. 서울시는 이 구역에서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의 운행을 제한하고 있다. 제한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이며, 토요일·일요일·공휴일도 포함된다. 위반 차량에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즉 서울 도심 역시 이미 “아무 차나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은 아닌 셈이다.
이 지점에서 런던과 서울은 흥미롭게 비교된다. 런던이 대형 SUV의 크기와 무게를 새 규제 기준으로 검토한다면, 서울은 이미 배출가스 등급을 기준으로 도심 진입 자격을 가르고 있다. 유럽 일부 도시는 “얼마나 크고 무거운가”를 묻고 있고, 서울은 “얼마나 오염을 배출하는가”를 묻고 있는 셈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자동차를 도시의 조건 안에서 다시 관리하려는 방향은 같다.
한국 시장 현실을 보면 이런 논의는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이미 SUV 중심으로 재편됐고, 전기 SUV와 대형 SUV 비중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공간 활용성과 높은 시야, 패밀리카로서의 실용성이 큰 장점이다. 하지만 도시 입장에서는 다른 질문이 생긴다. 오래된 아파트 지하주차장, 좁은 골목길, 학교 앞 이면도로, 기계식 주차장 같은 공간이 점점 커지는 차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여기에 전기차 확산으로 차량 중량까지 늘어나면, 앞으로는 배출가스 외에 크기와 무게 자체도 정책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이 부분은 런던과 파리가 보여주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물론 반론도 있다. 대형 SUV와 미니밴은 가족 이동, 장거리 주행, 레저 수요에서 여전히 강한 실용성을 갖는다. 실제로 더 큰 차가 꼭 필요한 소비자도 적지 않다. 그래서 핵심은 SUV가 선이냐 악이냐가 아니다. 도시는 어디까지를 허용 가능한 자동차로 볼 것인지, 그리고 그 비용을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나눠 부담할 것인지의 문제다. 서울의 5등급차 제한도, 런던의 대형 SUV 추가 요금 검토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결국 자동차 규제는 이제 단순히 내연기관과 전기차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오염을 배출하는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얼마나 많은 공간을 점유하는지, 그리고 도시 안에서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가 함께 기준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서울 사대문 안 5등급 차량 운행 제한은 이미 그 변화가 한국에서도 시작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런던의 SUV 규제 논의는 그래서 해외 토픽이 아니라, 한국 독자에게도 충분히 현실적인 미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