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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열전] “예술과 광기, 하이퍼카 정상에서 맞붙다”...파가니 vs. 코닉세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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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열전] “예술과 광기, 하이퍼카 정상에서 맞붙다”...파가니 vs. 코닉세그

도로 위 1%의 선택… 이탈리아 장인정신과 스웨덴 공학 집념의 충돌

육동윤 기자

기사입력 : 2026-01-30 09:05

파가니 와이라 사진=파가니이미지 확대보기
파가니 와이라 사진=파가니
하이퍼카 시장은 자동차 산업의 변두리가 아니다. 오히려 이곳은 완성차 산업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최전선이다. 연비나 실용성, 판매량 같은 지표는 이 세계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하이퍼카는 기술력의 과시이자 철학의 선언이며, 동시에 극소수 고객을 위한 문화 상품이다. 그 정점에서 늘 비교되는 두 이름이 있다. 이탈리아의 파가니(Pagani)와 스웨덴의 코닉세그(Koenigsegg)다.

두 브랜드는 같은 ‘하이퍼카’라는 범주에 묶이지만, 출발점도 지향점도 전혀 다르다. 파가니는 자동차를 예술 작품으로 바라보고, 코닉세그는 자동차를 공학 실험의 결정체로 정의한다. 이 차이는 디자인과 성능을 넘어, 브랜드가 고객에게 말을 거는 방식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파가니, 르네상스적 이상을 달리는 기계로 만들다

호라시오 파가니는 흔한 자동차 경영자와 거리가 멀다. 그는 엔초 페라리나 페르디난트 포르쉐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더 자주 언급한다. “예술과 과학은 분리될 수 없다”는 그의 신념은 파가니라는 브랜드의 근간이다. 파가니에게 자동차는 산업 제품이 아니라, 장인이 평생을 걸고 완성하는 하나의 조형물이다.

와이라(Huayra)는 그 철학의 결정판이다. 외관은 공기역학적으로 치밀하게 설계됐지만, 차체를 감싸는 곡선은 기능을 넘어 감정을 자극한다. 단순히 바람을 가르기 위한 형상이 아니라, ‘아름답게 움직이는 물체’를 만들기 위한 선이다. 차체 곳곳에 적용된 액티브 에어로 플랩은 공력 성능을 조절하는 동시에, 마치 생명체처럼 차가 숨 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실내에 들어서면 파가니의 세계관은 더욱 선명해진다. 가죽과 알루미늄, 카본이 뒤섞인 공간은 일반적인 슈퍼카의 운전자 중심 설계와 다르다. 계기판과 기어 링크는 노출된 기계 구조를 숨기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 요소가 아니라 “기계는 숨길 필요가 없다”는 선언에 가깝다. 파가니의 실내는 주행 전부터 감상의 대상이 된다.

감성을 위한 엔진, 파가니의 선택

와이라의 심장 역시 숫자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 메르세데스-AMG가 파가니 전용으로 개발한 6.0리터 V12 트윈터보 엔진은 출력 수치보다 감각을 중시한다. 페달을 밟았을 때의 반응, 회전 질감, 배기음의 울림은 ‘빠름’을 넘어 ‘느낌’을 지향한다. 자연흡기에 가까운 응답성을 구현하기 위해 터보 세팅까지 세심하게 조율했다.

파가니에게 최고속도 기록은 목표가 아니다. 와이라가 시속 400km를 넘길 수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속도에 도달하는 과정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각적인가다. 파가니는 하이퍼카를 ‘운전하는 경험’ 자체로 정의한다. 그래서 파가니의 고객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파가니는 소유하는 차가 아니라, 감상하고 체험하는 차다.”

코닉세그 예스코 사진=코닉세그이미지 확대보기
코닉세그 예스코 사진=코닉세그

코닉세그와의 대비, 이미 시작된 철학의 균열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비교 대상이 떠오른다. 같은 시대, 같은 가격대, 같은 하이퍼카 시장에 존재하지만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브랜드, 코닉세그다. 파가니가 예술가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작품이라면, 코닉세그는 엔지니어의 집념으로 태어난 결과물이다. 두 브랜드의 차이는 성능 수치 이전에, ‘자동차를 왜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 시작된다.

코닉세그, “왜 안 되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브랜드

코닉세그를 이해하려면 창립자 크리스티안 본 코닉세그라는 인물부터 짚어야 한다. 그는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의 문법을 거의 존중하지 않는다. 대형 제조사의 유산도, 레이싱 히스토리도 없이 “기존 방식이 비효율적이라면 바꿔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로 회사를 키웠다. 코닉세그의 모든 기술은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왜 변속기는 꼭 필요할까. 왜 캠축으로 밸브를 움직여야 할까. 왜 하이퍼카는 타협을 전제로 설계돼야 할까.

이러한 문제의식은 곧 실차로 구현됐다. 코닉세그 다이렉트 드라이브(KDD)는 변속기라는 개념 자체를 재검토한 결과물이다. 레제라(Regera)에 적용된 이 시스템은 엔진과 구동계를 단일 감속 기어로 연결해 동력 손실을 최소화했다. 변속 충격도, 변속 지연도 없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발상이 실제 도로 위에서 작동하는 순간, 코닉세그는 단순한 하이퍼카 브랜드를 넘어 ‘공학 실험실’로 불리기 시작했다.

숫자가 곧 철학인 자동차

코닉세그의 자동차는 숫자로 말한다. 아게라 RS는 양산차 최고속 기록을 갈아치우며 브랜드를 단숨에 정상에 올려놓았다. 예스코( Jesko )는 다운포스와 고속 안정성을 극단까지 끌어올린 트랙 중심 모델과, 최고속 주행을 염두에 둔 앱솔루트 버전으로 나뉘어 개발됐다. 목표는 명확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를 만드는 것.”

이 과정에서 타협은 없다. 섀시와 차체는 카본 모노코크를 넘어 구조 자체를 경량화했고, 서스펜션과 공력 장치는 모두 수치로 검증된다. 파가니가 ‘아름다운 곡선’을 이야기할 때, 코닉세그는 ‘공기 저항 계수’와 ‘다운포스 수치’를 꺼내 든다. 감성 대신 논리, 미학 대신 결과다.

실내 역시 같은 철학을 따른다. 코닉세그의 실내는 화려하지 않다. 대신 모든 스위치와 디스플레이는 기능 중심으로 배치된다. 노출된 카본 구조와 경량 시트, 전투기를 연상시키는 레이아웃은 ‘이 차는 목적이 분명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장식이 아니라 선언이다.

두 극단이 만들어낸 하이퍼카의 완성형

파가니와 코닉세그는 같은 시장에 있지만 서로를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둘은 하이퍼카 세계가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양극단에 가깝다. 파가니가 없었다면 하이퍼카는 기술 과시용 장비로만 남았을 것이고, 코닉세그가 없었다면 하이퍼카는 과거의 낭만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묘한 공식이 성립한다. 파가니는 컬렉션의 중심에 두고, 코닉세그는 기록을 위해 보유한다는 말이다. 파가니는 감상과 소유의 만족을, 코닉세그는 인간과 기계의 한계를 시험하는 쾌감을 제공한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한지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승자는 없다, 철학만 남는다

이 전쟁에는 결승선이 없다. 파가니는 앞으로도 예술과 감성을 강조할 것이고, 코닉세그는 더 과감한 기술로 기존 상식을 부술 것이다. 전동화 시대가 오더라도 두 브랜드의 방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파가니는 전기차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것이고, 코닉세그는 전기든 내연기관이든 ‘가장 효율적인 해답’을 실험할 것이다.


육동윤 글로벌모빌리티 기자 ydy33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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