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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실록 : 체로키뎐] 근본의 품격, 그리고 이별의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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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시승실록 : 체로키뎐] 근본의 품격, 그리고 이별의 여운

양식을 아끼는 지혜와 열흘의 끝자락에 남은 신뢰의 흔적

육동윤 기자

기사입력 : 2026-01-15 08:37

스텔란티스코리아가 제공한 지프 그랜드 체로키를 10일간 장기 시승하며 기록한 ‘시승실록’ 연재다. 하루하루의 주행 장면과 감각을 옛 기록 문체로 남겨, 차량의 성격과 철학을 입체적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이번 회차는 9·10일차 기록으로, 그랜드 체로키의 연비와 파워트레인이 보여준 ‘근본의 내실’과, 열흘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남은 ‘이별의 여운’을 한 편으로 엮었다. 편집자주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AI 편집) 사진=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AI 편집) 사진=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제9장. 근본(根本) — 먹이를 아끼고 힘을 비축하니, 장거리의 명마로다

행군 아흐레째, 이 거대한 강철마와 함께한 도정도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랐다. 오늘은 이 기함이 대륙을 호령하기 위해 소모하는 양식(연비)과, 그 힘의 근간이 되는 심보(파워트레인)의 효율을 차분히 따져보는 날이었다. 명마의 자질을 가늠함에 있어 가장 근본이 되는 일이라 하겠다.

도심의 막힌 길부터 광야의 험로, 그리고 고속의 대로에 이르기까지 수백 리를 쉼 없이 달려왔으니, 이처럼 웅장한 풍채를 지녔으니 응당 먹이를 탐하는 식성이 대단할 것이라 지레짐작하였다. 허나 기록된 수치를 살피니 이는 실로 의외의 절제미를 보여주었다. 정속으로 항해할 때는 숨을 죽여 양식을 아끼고, 힘을 써야 할 때는 아낌없이 쏟아붓되 허투루 낭비하는 법이 없었다.

기함의 심장인 6기통 엔진과 이를 조율하는 8단의 변속기는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춰온 장수와 부관의 관계와도 같았다. 변속의 과정은 비단결처럼 매끄러워 운전자가 그 찰나를 알아채기 어려웠고, 낮은 회전수에서도 묵직한 힘을 끌어내 차체를 밀어 올렸다. 멈춰 설 때는 스스로 숨을 고르며 양식을 아끼는 재주까지 겸비했으니, 고전적인 힘과 현대 기술의 조화가 이토록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또한 먼 길을 달려도 지치지 않는 기함의 지구력은 넉넉한 연료통에서 비롯되었다. 한 번 가득 채우면 웬만한 고을 서너 곳은 거뜬히 지나칠 수 있으니, 잦은 주유로 도정을 멈춰야 할 번거로움이 없었다. 이는 단순한 경제성을 넘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심리적 해방감을 선사하는 근본적인 힘이 됐다.

화려한 기교와 위용 뒤에 숨겨진 이러한 내실을 확인하고 나니, 그랜드 체로키라는 존재가 더욱 듬직하게 다가왔다. 겉만 번드르르한 것이 아니라, 속이 꽉 찬 장수의 기개를 품고 있음을 확인하며 아홉째 날의 붓을 거둔다. 이제 내일이면 이 기함과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 열흘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회포를 풀 차례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AI 편집) 사진=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AI 편집) 사진=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제10장. 회자정리(會者定離) — 이별은 정해졌으나, 그 궤적은 가슴에 남다

열흘의 시간이 화살처럼 흘러, 마침내 이 강철마의 고삐를 놓아야 할 작별의 날이 도래하였다. 세상의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다 하나, 십일간 대륙의 기상을 품고 동고동락한 이 기함과의 이별은 유독 그 여운이 길고도 진했다.

지나온 열흘을 돌이켜보니, 그랜드 체로키는 단순한 탈것이 아니었다. 비바람 몰아치는 도심의 밤에는 나를 지켜주는 견고한 요새였고, 안개 낀 고속의 길 위에서는 앞길을 열어주는 영민한 길잡이였다. 진흙탕 광야에서는 지프 가문의 골격을 증명하는 용맹한 장수였으며, 때로는 가족의 웃음소리를 담아내는 넉넉한 사랑채가 되어주었다.

기함의 안방(시트)에서 내려 마지막으로 그 풍채를 가만히 훑어본다. 처음 마주했을 때의 위압적인 위용은 어느덧 정다운 익숙함으로 바뀌어 있었고,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달려온 길 위의 흔적들은 훈장처럼 차체에 묻어 있었다.

“다시 이 마차를 택하겠는가?”

스스로의 물음에 마음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에 빠른 차는 많고 화려한 차도 넘쳐나나, 이토록 든든한 신뢰와 품격 있는 안락함을 동시에 선사하는 명마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제 고삐를 넘기고 멀어지는 기함의 뒷모습을 보며 비로소 깨닫는다. 그랜드 체로키가 남긴 궤적은 도로 위의 타이어 자국이 아니라, 운전자의 가슴 속에 새겨진 ‘자유’와 ‘자신감’이었음을.

비록 몸은 일상으로 돌아가나, 이 강철마와 함께 호령했던 열흘의 기억은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길 위에서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다.

을사년 겨울, 대륙의 기함을 기록했던 [그랜드 체로키 뎐]의 마지막 장을 여기서 덮는다. 병오년 시작의 길은 여전히 이어지고, 우리의 도정 또한 멈추지 않는다. 훗날 또 다른 인연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조용히 붓을 씻는다.


육동윤 글로벌모빌리티 기자 ydy33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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