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기아 인증중고차 센터 평택 직영점에서 기아 K5가 테스트 주행을 하고 있다. 사진=기아
“중고차는 복불복”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키워드는 ‘인증’이다. 인증중고차(Certified Pre-Owned, CPO)는 단순히 상태가 좋은 중고차를 뜻하지 않는다. 이제 CPO는 각 브랜드가 스스로의 철학과 책임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전략적 도구가 됐다. 같은 인증중고차라도 브랜드마다 접근 방식과 의도가 분명히 다르다.
현대자동차·기아: ‘제조사 책임’을 전면에 내세운 국내 완성차의 실험
현대차와 기아의 인증중고차는 국내 시장 구조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출고 이력과 정비 기록을 모두 보유한 제조사가 직접 중고차를 관리하겠다는 선언은, 기존 중고차 시장의 불신 구조를 뿌리부터 흔드는 시도다. 브랜드는 차량의 과거를 알고 있고, 그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뢰의 주체로 올라선다.
현대차·기아 인증중고차는 ‘중고차를 잘 파는 것’보다 ‘브랜드를 보호하는 것’에 가깝다. 품질 기준을 높게 설정하고, 사고·침수 이력에 극도로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다. 이는 소비자에게 안심을 주는 동시에, 신차 이후의 브랜드 경험을 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다만 그 결과로 상태 좋은 매물이 제조사 플랫폼에 집중되고, 일반 중고 시장의 선택지가 줄어드는 부작용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에게 인증중고차는 새로운 사업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CPO는 브랜드 운영의 기본 요소였다. 벤츠와 BMW의 인증중고차는 신차 판매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공식 서비스센터 점검, 까다로운 인증 기준, 비교적 넉넉한 보증 조건을 통해 중고차임에도 프리미엄 경험을 유지한다.
이들의 전략은 명확하다. 중고차에서도 브랜드의 ‘격’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가격은 일반 매물보다 높지만, 대신 소비자는 불확실성을 덜어낸다. 결과적으로 인증중고차는 ‘합리적인 중고차’라기보다 ‘브랜드가 보증하는 두 번째 선택지’로 기능한다. 이는 중고차 시장에서조차 프리미엄 브랜드 간 서열을 공고히 만드는 효과를 낳고 있다.
[COVER STORY] 제조사·수입차 ‘CPO 전쟁’ 본격화
이미지 확대보기SSCL 인증중고차 센터에 포르쉐 차량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스투트가르트스포츠카
포르쉐: 중고차를 신차처럼 다루는 브랜드, 잔존가치 관리의 정점
포르쉐의 인증중고차는 CPO 전략의 극단에 가깝다. ‘Porsche Approved’는 중고차 유통 확대가 목적이 아니다. 포르쉐에게 인증중고차는 브랜드 가치와 잔존가치를 통제하는 수단이다. 연식과 주행거리 제한, 수백 개 항목의 점검, 신차에 준하는 보증은 중고차의 개념을 희미하게 만든다.
그 결과 포르쉐 인증중고차는 싸지 않다. 오히려 비싸다. 그러나 시장은 이를 받아들인다. 포르쉐 CPO는 ‘중고차’가 아니라 ‘관리된 자산’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상태 좋은 매물이 대부분 공식 네트워크로 흡수되면서 일반 중고 시장은 위축되지만, 브랜드 입장에서는 잔존가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