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AMG가 전동화 전략의 최전선을 책임질 새로운 수장을 확정했다. 포르쉐 타이칸 개발 핵심 인물로 꼽히는 스테판 베크바흐(Stefan Weckbach)가 2026년 7월 1일부로 AMG CEO에 취임하며, 동시에 메르세데스-벤츠 최상위 차종 조직인 TEV(Top End Vehicle) 그룹 총괄까지 맡는다. AMG가 “전기 고성능 DNA”를 완성할 절대적 경험치를 외부에서 수혈했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는 단순한 교체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베크바흐는 2023년 폭스바겐그룹 전략부문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포르쉐에서 수년간 상품기획과 모델 개발을 총괄하며 타이칸 프로젝트를 초기 기획 단계부터 양산 체계, 글로벌 런칭까지 일관되게 관여한 인물이다. 올해 공개된 카이엔 일렉트릭 개발 과정에도 깊숙이 참여한 만큼, “고성능 전기차를 실제로 시장에서 증명한 경험을 가진 경영자”라는 점이 AMG가 그를 선택한 가장 직접적인 배경으로 해석된다.
현재 AMG는 포르쉐 타이칸을 정조준한 순수 전동화 전용 4도어 고성능 세단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기존 EQ 라인업 파생이 아닌 독자 아키텍처 기반의 전동화 플래그십 프로젝트로, 베크바흐가 가장 잘 이해하는 영역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전동화 최상위 수익 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플래그십 전기 SUV 또한 병행 개발 중이며, 글로벌 시장에서 고성능 EV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하려는 AMG의 방향성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소형 AMG 라인업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 CLA, GLA, GLB 등 볼륨 모델이 본격적으로 하이브리드와 EV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AMG가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온 배기 감성, 토크 표현, 사운드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가 베크바흐의 주요 과제로 떠오른다. 단순한 전동화가 아닌 “AMG 뱃지를 달 만한 감성 유지”라는 조건이 그에게 부여된 셈이다.
브랜드 내부에서 가장 큰 숙제로 꼽혀온 C63 S E 퍼포먼스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4기통 PHEV 시스템은 기술적으론 진보적이지만 시장 반응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소비자들이 AMG에 기대한 사운드와 감성의 중심이 6기통과 8기통에 있었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확인한 프로젝트였다. 2026년 페이스리프트 시점에는 직렬 6기통 복귀 가능성이 거론되며, AMG가 “전동화와 정통성 복원”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부에서는 새로운 플랫플레인 크랭크 V8 개발설까지 흘러나오며, AMG 팬덤의 무게 중심을 다시 조정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베크바흐 취임 전까지는 현 AMG 수장 미하엘 시베(Michael Schiebe)가 임시 체제를 유지한다. 그러나 향후 AMG가 맞닥뜨릴 과제는 단순 관리 수준을 넘어선다. 고성능 EV 시장 재편 경쟁, TEV 그룹의 수익 모델 확장, 전기 시대 AMG 아이덴티티 재정립까지 모든 핵심 축이 베크바흐 취임 이후 본격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할 전망이다.
AMG는 지금 엔진에서 모터로 전환하는 단계를 넘어, “전기 시대에도 AMG는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그 자체를 다시 쓰는 국면에 진입했다. 타이칸을 만든 인물이 이제 AMG 전동화 라인업을 책임진다는 사실은 단순한 인사 이동이 아니라, 고성능 EV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가장 직접적인 시그널이다. 포르쉐가 개척한 전기 퍼포먼스 공식을 AMG가 어떻게 해석하고 넘어설 것인지, 전동화 시대 고성능 브랜드 경쟁의 다음 장면이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