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라는 이름을 들으면 본능적으로 거친 오프로드를 떠올리게 된다. 모래언덕과 바위길, 그리고 흙먼지 속을 뚫고 나가는 사륜구동의 상징. ‘낭만’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지프 어벤저(Jeep Avenger)는 조금 다르다. 전기 모터를 품고 도심 속으로 내려온, ‘새로운 시대의 지프’다.
지프의 첫 순수 전기 SUV 어벤저는 이미 유럽에서 10만 건이 넘는 계약을 기록한 ‘핫 아이템’이다. 유럽 도심에 최적화된 4.08m의 컴팩트한 차체와 전동화된 주행 질감, 그리고 지프 특유의 탄탄한 주행 밸런스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국내에는 ‘론지튜드(5290만원)’와 ‘알티튜드(5640만원)’ 두 가지 트림으로 출시됐다. 보조금 적용 시 4천만 원대 초반까지 낮아지는 실구매가는 ‘지프를 갖고 싶었던 이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다.
시승차를 받고 느낀 점. 차체는 작지만 200mm의 지상고 덕분에 일반 도심 SUV보다 한 뼘 높은 시야다. 615mm의 시트 포지션은 의외로 ‘지프 레니게이드’를 타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심에서는 조향감이 민첩하고, 브레이크 답력도 전기차 특유의 인공적인 느낌 없이 자연스럽다. 회전 반경은 단 10.5m. 골목길에서 유턴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하지만, 이 차의 진짜 매력은 비포장도로에 들어설 때다. 셀렉-터레인(Selec-Terrain) 모드를 ‘머드’로 바꾸는 순간, 작은 차체가 믿기 힘든 트랙션을 보여준다. 미끄러운 자갈길에서도 전륜 모터가 부드럽게 접지력을 유지하며 끈질기게 전진했다. “지프의 낭만은 여전하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다.
어벤저의 심장은 54kWh 리튬이온 배터리와 115kW(약 156마력)의 전기모터다. 최고 토크 270Nm는 스펙상으로는 평범하지만, 도심 주행에서는 이 정도 출력이 오히려 안정감을 준다. 0→100km/h 가속은 9초 초반대. 폭발적인 성능은 아니지만, 도심형 전기 SUV로서는 충분히 경쾌하다. 1회 충전으로 292km를 달릴 수 있고, 급속충전으로는 24분 만에 20→80% 충전이 가능하다. 충전 인프라가 많은 도심 생활자에게는 부담 없는 수치다. 회생제동은 3단계로 조절되며, ‘B모드’에서는 거의 원페달 주행이 가능하다. 다만 완전히 정지할 때 약간의 버벅임이 느껴졌지만,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컨트롤할 수 있다.
전면부의 세븐 슬롯 그릴과 X자 테일램프는 ‘지프 DNA’를 잊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전면 중앙에 숨겨진 ‘나침반 이스터에그(Compass Easter Egg)’는 어벤저가 태어난 이탈리아 토리노를 가리킨다. 특히, 상위 트림 알티튜드는 블랙 루프 투톤 컬러가 기본이며, 신규 색상인 ‘레이크(에메랄드)’는 유럽 감성이 물씬 풍긴다. 지프답게 ‘컬러 맛집’다운 존재감이 강하다.
유커넥트(Uconnect) 5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반응이 빠르고, 무선 애플 카플레이·안드로이드 오토 모두 지원한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충전 상태를 확인하고 예약 충전도 가능하다.
지프 어벤저는 ‘지프의 DNA를 지닌 첫 전기차’라는 숙제를 멋지게 풀어냈다.
도심형 SUV답게 작고 경쾌하지만, 진입각 20°, 이탈각 32°라는 수치는 ‘전기차로서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여기에 합리적인 가격, 귀여운 디자인, 그리고 도심 속에서도 여전히 느껴지는 지프의 야성까지. 전동화 시대에도 지프는 여전히 ‘자유의 상징’이다. 다만 이제는 기름 냄새 대신 전기의 힘으로 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