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1987년식 BMW 320i, 해당 브랜드 차량을 수입했던 코오롱상사가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한 모델이다. 사진=보배드림
2020년대의 한국은 연간 약 25만 대 이상이 팔리는 아시아 최대 수입차 시장 중 하나다. 고속도로 곳곳엔 벤츠, BMW, 아우디, 테슬라가 넘치고, 심지어 쉐보레나 르노 일부 모델도 실상은 수입차다. 하지만 이 익숙한 풍경의 시작은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불과 30여 년 전, 외제차는 존재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그 세계의 문을 연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한국 수입차 시장의 역사는 심플한 차량 도입의 연대기가 아니다. 무역과 통상, 제도와 소비 인식, 그리고 기업인들의 신념이 얽힌 복합적인 변화의 과정이었다. 이 시리즈는 각 시대를 이끈 대표들과 그 배경을 따라가며, 수입차 제국의 흥망성쇠를 입체적으로 기록한다. 그 시작에서는 브랜드보다 먼저 시장을 설계한 개척자들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수입차의 문이 처음 열린 해, 1987년
1987년은 한국 수입차 시장에 있어 원년이자 전환점이다. 이 해 정부는 처음으로 외제 승용차 수입을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단 배기량 2.0리터 이상 차량에 한하며, 수입 주체는 무역상사로 한정됐다. 그리하여 같은 해, 코오롱상사가 BMW를, 효성물산이 메르세데스-벤츠를 각각 들여오며 수입차 시장의 초석이 놓였다.
그 시작은 미약했다. 한남동에 마련된 BMW의 소규모 쇼룸은 공식 전시장이라기보단 수입 유통의 ‘데모 공간’에 가까웠다. 부품 수급도 난항이었고, 정비는 사설 업체에 맡겨야 했다. 그럼에도 코오롱상사의 이규호 상무는 “고급차 시장은 반드시 열린다”며 부품 공수, 차량 인증, VIP 고객 관리 등 하나하나를 직접 챙겼다.
같은 시기 효성물산이 수입하던 벤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 청담동의 임시 전시 공간을 마련했고 S클래스 몇 대가 전시됐다. 정비는 별도 위탁 업체와의 제휴로 간신히 이뤄졌다. 당시 벤츠 수입을 실무에서 이끈 효성물산 자동차팀은 수입신고서 작성, 세관 대응, 가격 조율까지 일일이 해가며 ‘차량 한 대 들여오기’의 의미를 현실로 만들었다.
▷ 이 시기 글로벌 시장은? — 고급차 글로벌화와 일본의 질주
1980년대 후반은 세계 자동차 산업이 ‘고급화’와 ‘글로벌화’라는 두 축으로 전환하던 시기다. 독일 프리미엄 3사는 미국과 일본 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확장 중이었고, 일본 브랜드는 렉서스(1989), 인피니티(1989), 아큐라(1986) 등 고급 브랜드를 론칭하며 미국 시장을 휩쓸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은 ‘뒤늦은 수입 개방국’으로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브랜드가 아닌 상사가 움직이던 시절 1987–1994
당시 수입차 시장은 브랜드가 아닌 국내 무역상사 주도로 운영됐다. BMW의 코오롱상사, 벤츠의 효성물산 외에도 폭스바겐, 푸조, 볼보 등 몇몇 브랜드도 시도적으로 들어 왔지만, 대중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동차라기보단 ‘관세 대상 품목’, ‘외교용 차량’, 혹은 ‘회장님의 차’로 존재했다.
이 시기의 수입차는 대당 1억 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부가세, 특소세, 교육세까지 붙으며 차량을 사는 게 아니라 ‘허락받은 소비’를 사는 것에 가까웠다. 게다가 보험료는 높고, 정비는 난망했다. 그럼에도 상사들은 소수의 VIP 고객을 관리하며 시장을 확장해갔다. 이 시절은 ‘브랜드 전략’보다는 ‘수입 가능성’을 중심으로 시장이 굴러갔던, 수입차 태동기의 생존기였다.
법인 설립, 브랜드가 직접 움직이다 1995–2004
수입차 시장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건 1995년이었다. BMW가 그해 7월, 본사의 자본으로 한국에 ‘BMW코리아’를 설립한 것이다. 이는 단순 유통을 넘어 ‘브랜드가 직접 들어와 영업을 통제한다’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벤츠(2002), 아우디·폭스바겐(2004), 볼보(1998) 등이 차례로 법인을 설립하며 시장은 ‘상사 시대’에서 ‘브랜드 시대’로 전환됐다.
이 시기 BMW는 전국 딜러망 구축, 부품 물류센터 설립, 서비스센터 확대 등 인프라 투자를 본격화했고, 벤츠 역시 기존 효성과의 유통 관계를 정리하며 본사 직할 체제를 도입했다. 볼보는 대우자동차를 거쳐 직판 체제로 전환했고, 아우디폭스바겐은 당시 대표 체제 아래 ‘체험형 수입차 마케팅’을 도입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 이 시기 글로벌 시장은? — 유럽차의 미국 재도전, SUV·디젤 부상
1990년대 후반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도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다. 독일차는 미국 내 점유율 회복을 위해 정비 인프라와 딜러 품질 향상에 집중했고, 동시에 유럽 시장에선 디젤차가 주류로 떠올랐다. SUV의 등장도 이 시기부터 본격화됐다. 이 같은 흐름은 뒤늦게 수입차 시장을 형성하던 한국에서도 ‘정비 인프라 확충’과 ‘프리미엄 SUV 도입’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시점까지 한국 수입차 시장은 제도와 구조의 변화가 중심이었다. 브랜드는 막 들어왔고, 법인은 이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브랜드의 얼굴’은 없었다. 김효준(전 BMW코리아 대표), 하랄드 베렌트(전 벤츠코리아 대표), 도미니크 보쉬(전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대표) 등 인물들은 아직 무대 밖에 있었다. 그 변화가 시작된 건 2000년대 중반이다.
수입차 법인이 한국에 자리를 잡고, 브랜드가 직접 시장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그 브랜드의 ‘얼굴’은 바로 회사의 대표가 됐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는 이른바 '수입차 시장 상실의 시대'였다. 소비자들이 차보다 먼저 브랜드 대표의 이름을 기억했고, 미디어와 업계가 그들을 수입차 시장의 중심인물로 다뤘던 영웅담이 넘치는 시기였다. 이들은 단순한 법인장이 아니라 전략과 판매, 브랜드 이미지, 소비자 경험을 통제하는 실질적인 수입차 산업의 권력이었다.
BMW코리아의 김효준,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의 하랄트 베렌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트레버 힐, FCA코리아의 파블로 로쏘 등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한국 시장을 이해했고, 성장시켰다. 때로는 위기를 맞았고 그들의 결정은 한 브랜드의 흥망을 넘어, 수입차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김효준과 BMW의 전성기
2000년 BMW코리아의 수장으로 떠오른 김효준 대표는 수입차 시장이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르기 전부터 인프라 구축에 집중했다. 전국 딜러망을 조직하고, 전문화된 서비스센터를 확장했으며, 소비자 중심의 브랜드 체험 전략을 도입했다. 영종도에 BMW 드라이빙 센터를 유치한 것도 그의 작품이었다. 그는 단순한 법인 대표를 넘어, 수입차 산업 전반을 이해하고 리드한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이끄는 동안 BMW는 연간 판매 1만 대를 넘어섰고, 2009년에는 누적 판매 10만 대를 기록했다. 2015년까지 7년 연속 수입차 판매 1위를 지키며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김 대표는 이후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회장직을 맡기까지 했다. 업계의 조율자 역할을 톡톡히 하며 한국 수입차 시장 급성장을 견인했다.
이 시기 글로벌 시장에서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전 세계 점유율 확대가 본격화됐다. 미국 시장에서 디젤 기술을 내세운 전략이 일부 성과를 보였고, 유럽에서는 브랜드별 전동화 로드맵이 점차 수면 위로 떠 오르기 시작했다. BMW는 이피션트 다이내믹스(EfficientDynamics)라는 기술 전략을 통해 친환경 프리미엄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벤츠코리아의 정교한 반격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애초부터 한국인 대표 체제는 지양했다. 2002년 법인 설립 첫 해에는 현지 시장 이해를 반영하기 위해 아시아 경영 어소시에이트 프로그램으로 벤츠에 입사했던 김지섭 부사장을 공동 대표 체제로 사업 운영을 시작했다. 이후 2005년부터는 딜러망 정비와 유통 구조 개편에 나섰고, 당시 공동 대표였던 하랄트 베렌트(Harald Berent)를 중심으로 체제가 구체화됐다. 베렌트는 서비스 품질을 대폭 개선하고, 딜러사의 고객 응대와 리포트 체계를 통합하며 브랜드의 일관된 경험을 구축했다. 특히 디자인 측면에서 젊어진 E-클래스와 C-클래스는 과거 ‘회장님 차’라는 이미지를 걷어내고 젊은 고객층까지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2016년, 메르세데스-벤츠는 BMW를 제치고 수입차 시장에서 연간 판매 1위에 올랐다. 이후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대표 체제를 거쳐 토마스 클라인 대표 시기에 이르기까지, 그 기반은 여전히 플라트너 시절의 전략 위에 놓여 있었다.
국제적으로는 벤츠가 EQ 전동화 브랜드를 기획 단계에서 다듬어 왔으며, 마티아스 바이틀(Mathias Vaitl)은 마이바흐를 통한 럭셔리 제품 라인업 구축 전략으로 실적을 끌어 올리고 있다. 그동안 아시아 시장에서 특히 한국은 고급차 소비 확산의 테스트베드로 평가받았고, 벤츠는 한국을 ‘디자인 변화’의 반응지로 주목했다.
아우디와 폭스바겐, 성장과 추락
2000년대 중반,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한국 시장에서 두 브랜드 모두 빠르게 성장세를 탔다. 아우디의 트레버 힐 대표는 A4와 A6를 전면에 내세워 '프리미엄이지만 접근 가능한' 브랜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고, 폭스바겐의 골프와 티구안은 실용성과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판매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독일차는 비싸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수입차의 대중화를 이끈 브랜드가 바로 이들이었다.
그러나 2015년, 디젤게이트라는 전례 없는 글로벌 스캔들이 한국에서도 터졌다. 환경부는 폭스바겐 일부 모델에 대해 인증 취소 및 판매 금지 조치를 내렸고, 브랜드 전체의 신뢰도가 무너졌다. 이후 대표직에 오른 르네 코네베아그는 브랜드 회복을 위해 리콜 대응, 인증 재확보, 제품 라인업 재정비에 나섰지만, 한동안 판매 중단 상태가 지속되며, 시장 영향력을 크게 잃었다.
디젤게이트는 전 세계적으로 디젤차에 대한 불신을 야기했고, 유럽을 중심으로 친환경 전환 가속화의 계기가 됐다.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전동화 브랜드(E-tron, ID 시리즈)를 앞세우기 시작했고, 이 전략은 훗날 한국에서도 재진입 전략으로 이어진다.
늦었지만 가장 안정적인 성장, 볼보 정착기
이 가운데 볼보자동차코리아는 1998년 법인을 설립하며 일찍이 브랜드 직판 체제를 갖춘 사례다. 초창기에는 국내 자동차 업계 인사 출신인 이만식 대표와 이향림 대표 등이 볼보의 국내 시장 안착을 위해 기반을 다졌다. 당시 수입차 시장이 독일차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볼보는 ‘안전’과 ‘실용성’을 앞세워 조용히 점유율을 높여갔다.
2000년대 후반까지 상대적으로 조용한 행보를 보였던 볼보는, 2014년 이윤모 대표 체제에 들어서며 성장세에 가속이 붙었다. BMW코리아 등에서 경력을 쌓은 이 대표는 체계적인 세일즈 전략과 고객 경험 강화 정책을 통해 브랜드 체질을 전면 개편했다. 전국 서비스 네트워크 확장, 정찰제 정책 도입, SUV 중심 라인업 확대 등은 볼보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 기반이 됐다. 2017년 약 6000대 수준이던 연간 판매는 2023년 1만7000대를 넘어섰고, 볼보는 수입차 ‘톱5’ 브랜드 반열에 올랐다.
디지털 서비스 부문에서도 혁신이 이어졌다. 국내 내비게이션 브랜드인 TMAP과의 협업을 통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현지화, 5년/10만km 무상보증, 15년 OTA 업데이트 제공 등은 수입차 브랜드 가운데서도 이례적인 정책이었다. 이윤모 대표는 브랜드 대표가 단순한 영업 총책이 아니라, 고객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브랜드 설계자’임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미국 브랜드의 고군분투
독일차가 시장을 장악하던 시기, FCA코리아는 지프, 크라이슬러, 피아트 등 복수 브랜드를 묶은 전략으로 한국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특히, 파블로 로쏘 대표는 딜러 중심 유통망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지프 브랜드를 중심으로 정체성을 재정비했다. 독일 SUV가 프리미엄의 연장선이라면, 지프는 정통 오프로더 감성에 초점을 맞췄고 이는 젊은층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다.
크라이슬러는 300C를 앞세워 대형 수입 세단 시장에 잠시 존재감을 보였고, 피아트는 피아트500(친퀘첸토)을 중심으로 도심형 소형차 시장을 공략했지만 결국 철수를 결정하며 브랜드 간 성과 차이를 드러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FCA가 피아트-크라이슬러 합병 이후 브랜드 구조를 정비하고, 2014년 이후 지프 중심 수익 모델을 구축하던 시기였다. 한국 시장에서도 이 전략은 그대로 반영됐다.
미국 브랜드 중 포드(Ford)는 이미 1996년 5월 29일 ‘포드 모터 컴퍼니 오브 코리아’를 설립하며 공식 진출했다. 본사 주도 체재로 수입이 전개돼 대표의 공식적인 노출이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며 기울어가던 브랜드를 포드코리아에서 영업 & 마케팅 임원으로 있던 정재희 대표가 총책을 맡으며 부활시킨다. 그는 국내 수입차 시장의 대중화와 안정적 성장을 이끈 1세대 경영자로 평가되며, 2012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회장을 6년간 역임하며 수입차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포드 대표 재임 중에는 ‘가성비 높은 미국차’ 이미지를 구축하고, 익스플로러, 토러스, 링컨 세단 등을 성공적으로 출시했다. 특히 1997년 국내 수입차 점유율 1위 달성, 2009~2018년 판매 성장 견인까지, 실적 측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한편, 2019년에는 익스플로러 후진제동보조 오류에 대해 고객에게 공식사과하며, 보상 절차를 신속히 진행, 책임 경영의 모범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지금은, 2024년부터 데이비드 제프리 체제로 브랜드 부활을 알렸고 익스플로러 등 SUV 재출시 및 전시장·서비스센터 운영 담당, 법인의 관리 책임을 수행하고 있다.
일본 브랜드의 조용한 침공
한편 일본계 브랜드들은 독일차 중심의 프리미엄 시장이 형성되는 동안, 실용성과 품질을 무기로 자신들만의 위치를 지키려 했다. 이 가운데 렉서스는 2001년부터 판매가 됐고 브랜드 론칭을 이끌었던 인물이 바로 타케무라 노부유키(Nobuyuki Takemura)였다. 그는 조용하고 정제된 브랜드 전략을 강화했다. 그리고 “고급은 조용해야 한다”는 철학 아래, 렉서스 하이브리드 모델을 앞세워 독일차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그가 한국에 부임했던 2000년대 중반, RX와 ES는 조용한 승차감과 내구성을 앞세워 독자적인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강남 쏘나타’의 별칭이 붙게 된 것도 이 시기다.
독일 프리미엄 자동차에서처럼 대표 체제가 비슷하게 흘러갔다. 혼다코리아는 2004년부터 한국인 체제의 정우영 대표가 맡게 됐다. 어코드, CR-V, 오딧세이 등 북미 시장에서 성공한 모델들을 기반으로 한국 소비자에게 ‘합리적 선택’을 제시하고자 했다. 당시 혼다는 공격적인 판촉보다는 실용성과 정비 신뢰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접근했고, 이는 패밀리카 시장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닛산코리아는 타케히코 키키우치 대표 체제에서 알티마와 맥시마, 무라노 등의 모델을 수입하며 ‘프리미엄을 닮은 미국형 대안’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했지만, 독일차 대비 뚜렷한 차별성을 구축하지 못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혼재돼 있었고, 소비자와의 접점도 부족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들 일본 브랜드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분명한 존재감을 남겼지만, 하이브리드나 북미 감성만으로는 디젤 중심의 유럽차 흐름을 압도하긴 어려웠다. 결국 닛산과 인피니티는 2020년대 초 국내 시장 철수를 결정했고, 렉서스와 혼다만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일본 브랜드들이 여전히 북미에서 강세를 보였고, 토요타는 하이브리드 기술력과 생산 효율성 측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서는 브랜드 본사의 주도 전략보다 각 대표들의 감각과 운신 폭이 브랜드의 존속 여부를 좌우했던 시기였다.
2020년대 초반, 한국 수입차 시장은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시발점은 테슬라였다. 전기차라는 새로운 동력원이 아니라, ‘브랜드 없이도 팔리는 시스템’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시장을 바꾸었다. 다시 말하면 대표가 없는 체재다.
OTA, 온라인 직판, 충성도 높은 커뮤니티 중심의 판매 전략은 과거 수입차 브랜드가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 온 딜러망·전시장·서비스 중심 질서를 무너뜨렸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처럼 기존의 중심축이었던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들조차 테슬라가 가져온 판을 쫓아가기 바빴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 한국 수입차 시장은 테슬라 이후의 두 번째 균열을 맞고 있다. 바로 중국 브랜드의 본격적인 진출이다.
BYD가 여는 두 번째 균열
2023년부터 국내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BYD는 단순한 중국 전기차 브랜드가 아니다. 배터리 생산, 완성차 설계, 반도체 자체조달, 자율주행 알고리즘까지 모두 독자 시스템으로 구축된 글로벌 기술 기업이다. 테슬라가 시장의 규칙을 바꾸었다면, BYD는 그 규칙을 비용과 규모로 압도할 준비가 된 플레이어다.
BYD는 단순히 ‘싼 전기차’를 들여오려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수입차 브랜드가 피하고자 했던 ‘가성비’의 세계를 전면에 내세운다. 디자인, 출력, 주행거리, 옵션 구성까지 모두 국산 전기차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며, 수입차라는 정체성 자체를 다시 정의하고 있다.
그 최전선에 선 인물은 조인철 BYD 오토 코리아 대표다. BMW코리아에서 경영전략·세일즈·전동화 프로젝트를 두루 경험한 그는, 이제는 '브랜드보다 시스템이 우선인' 구조 속에서 한국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BYD는 기존 수입차처럼 대표가 전면에 나서지 않지만, 시스템 안에서 ‘시장 정착’을 설계하는 실무형 리더십이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ZEEKR, 새로운 방식의 프리미엄
또 다른 변수는 지커(ZEEKR)다. 지커는 볼보와 폴스타의 모회사인 지리(GEELY)의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다. 본격적인 국내 출범을 앞두고 있으며, 브랜드 운영을 맡을 대표로 전 아우디코리아 임현기 대표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커는 ‘전기차 브랜드의 새로운 경험’을 판다. OTA를 넘어선 커넥티드 생태계, 구독 중심의 서비스 패키지, 커뮤니티 기반 고객 관리 등, 프리미엄이라는 개념 자체를 전통 자동차 산업의 문법에서 끌어내려는 시도다.
임현기 대표는 아우디코리아 재직 시절 브랜드 이미지 회복과 상품 운영을 총괄하며 실무 전략에 강점을 보였던 인물로, 지커의 국내 안착은 기존 수입차 구조에 또 다른 균열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구조 조정
그 사이 기존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급변하는 구조에 적응하느라 바쁘다. BMW와 벤츠는 전동화 전용 라인업과 OTA 시스템을 확대하는 한편, 브랜드 체험공간이나 A/S 시스템은 오히려 축소하고 있다.
대표들의 역할도 달라졌다. 과거처럼 브랜드 철학을 대중에 전하는 리더십은 줄어들고, 본사의 글로벌 전략을 현지에 ‘적용’하고 ‘조율’하는 실행자형 리더십이 중심이 되고 있다. BMW코리아, 벤츠코리아,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모두 대표가 교체됐지만, 그 인물들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아졌다.
이제 소비자에게 수입차 브랜드란, 대표의 철학이 담긴 고급차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잘 되는, 앱이 편리한, 가격이 합리적인 글로벌 기기에 더 가깝다.
변해가는 구조, 흔들리는 정의
이제 한국의 수입차 시장은 전통 브랜드와 신생 전기차 브랜드, 그리고 중국계 브랜드가 각기 다른 논리로 움직이는 다중 구조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 과거에는 유럽 중심의 프리미엄이 전체 시장을 견인했다면, 지금은 가격, 소프트웨어, 전동화 기술, 심지어 구독 경험까지 기준이 다양해졌다.
수입차 시장은 분명히 다시 쓰이고 있다. 전통 브랜드의 장기 독주는 끝났고, 테슬라와 BYD, 지커 등 새로운 질서의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있다. 프리미엄의 정의는 변하고 있고, 전시장이 줄어드는 만큼, OTA가 늘어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수입차 시장을 브랜드가 아닌, ‘구조’로 바라봐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누가 대표인가보다, 어떤 전략을 설계하고 실행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시대의 시작점에, 지금의 ‘흔들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