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권위라는 말이 있다면, 이 차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레인지로버라는 이름이 주는 아우라가 있다. 그 위에 ‘스포츠’라는 뱃지를 붙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SUV, 올 뉴 레인지로버 스포츠 P550e 다이내믹 HSE가 이번에 시승한 차다.
이 차로 말할 거 같으면 전동화 시대에도 럭셔리 오프로더가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거 같다. 탁월한 퍼포먼스와 정교한 감각, 그리고 럭셔리 브랜드가 고집해온 품격이 조화롭게 엮인 작품이다.
디자인은 언제나 그렇듯 심플하다. 수평적 요소를 강조한 실루엣은 레인지로버의 아이덴티티를 분명하게 살려낸다. 날렵한 슬림 LED 헤드램프와 짧은 오버행, 그리고 스텔스 그릴은 강인하면서도 정제된 인상이다. 몰딩과 피니시를 거의 제거한 매끈한 차체 라인은 공기역학적 성능을 위한 선택, 동시에 ‘모던 럭셔리’라는 브랜드 철학을 구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실내는 ‘가장 조용한 사치’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최고급 세미 애닐린 가죽과 브러시드 메탈, 유광 블랙 패널이 조화를 이룬 인테리어는 군더더기 없는 배치와 탁월한 질감으로 시각과 촉각을 모두 만족시킨다.
센터콘솔에는 냉장 보관함이 숨어 있고, 실내 공기 정화 플러스 시스템이 미세먼지 걱정을 덜어준다. 마치 잘 설계된 라운지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다.
다이내믹 에어 서스펜션은 도로 환경에 따라 서스펜션 압력을 실시간으로 조정하며, ‘전환형 볼륨 에어 스프링’은 부드러움과 강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주행 중 노면의 변화가 이토록 자연스럽게 필터링되는 차는 흔치 않다.
이 차의 진짜 매력은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알게 된다. 3.0리터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과 160kW 전기 모터가 결합된 P550e 파워트레인은 시스템 출력 550마력, 최대토크 81.6kg·m라는 수치를 뽑아낸다. 전장 5m에 가까운 대형 SUV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h까지 4.9초면 충분하다.
배터리는 38.2kWh 용량의 리튬이온 셀을 탑재했다. 국내 기준 전기만으로 주행이 80km까지 가능하다. 50kW DC 급속 충전으로 1시간 이내에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일상 주행에서 전기차처럼 쓰고, 고속 주행에서는 스포츠카처럼 달릴 수 있다.
여기에 48V eARC 기반의 다이내믹 리스폰스 프로 시스템이 더해져 차량의 롤링을 정교하게 억제한다. 코너링 시 차체가 스스로 균형을 잡아나가는 느낌이다. 리어 휠까지 조향하는 올 휠 스티어링은 도심 주행에서는 민첩하게, 고속에서는 안정감을 더한다. 회전반경이 짧은 것도 인상적이다.
이중접합 유리 등으로 소음 차단 성능도 탁월하다. 여기에 19개의 메리디안 3D 서라운드 스피커가 어우러지면,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경험’이 된다.
중앙에 자리한 13.1인치 커브드 글래스 터치스크린은 PIVI Pro 시스템을 통해 대부분의 조작을 직관적으로 가능하게 만든다. 두 번의 터치로 기능 대부분을 사용할 수 있으며, T맵도 기본 내장돼 있다. 다만,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전장에서는 아직 높은 신뢰도가 쌓일 정도는 아니다. 시승 동안에도 버그가 조금씩 발견되기는 했다.
가격은 1억7717만원. 만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이 차의 품격과 성능, 그리고 존재감을 생각한다면 선뜻 지갑을 열 만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가끔은 하차감이 가치를 결정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육기자의 으랏차차] 왕좌를 향한 자신감, 올 뉴 레인지로버 스포츠 P550e 다이내믹 H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