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더 일렉트릭 C-클래스(왼쪽), 더 올 뉴 A6(오른쪽) 두 차종이 20일(현지시간) 서울에서 같은 날 출시를 알렸다. 사진=각사
같은 날 열린 메르세데스-벤츠와 아우디의 신차 행사는 얼핏 보면 전혀 다른 장면이었다. 벤츠는 서울에서 C-클래스 첫 전동화 모델을 세계 최초로 공개하며 ‘쇼’를 만들었고, 아우디는 대표 세단 A6를 한국 시장에 선보이며 비교적 익숙한 형식의 출시 행사를 치렀다. 그러나 겉모습이 달랐을 뿐, 두 브랜드가 한국에 던진 속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 한국은 이들이 반드시 붙잡아야 할 몇 안 되는 시장이자, 더는 일방적으로 가치를 설명하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평가받아야 하는 무대가 됐기 때문이다.
[기자수첩] 서울은 화려했지만, 독일 프리미엄의 속내는 다급
이미지 확대보기더 뉴 일렉트릭 C-클래스 월드프리미어 출시 현장, 사진=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벤츠 쪽이 훨씬 화려했다. 서울에서 C-클래스의 첫 전기차를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한 것은 분명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브랜드 역사상 한국에서 연 첫 월드 프리미어였고, 올라 칼레니우스를 포함한 핵심 경영진과 해외 기자단까지 대거 불러모았다. 한때는 독일 본사가 정한 질서를 각 시장이 받아들이는 그림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서울을 찾아와 먼저 보여주고 설명해야 하는 장면이 됐다. 반면 아우디의 A6 출시는 외형적으로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절제된 형식 속에는 오히려 더 현실적인 메시지가 숨어 있었다. 보여주기보다, 다시 회복하겠다는 의지 말이다.
두 브랜드의 이런 온도 차는 지금 처한 위치의 차이이기도 하다. 메르세데스-벤츠 승용차 부문은 2025년 글로벌 판매가 180만1291대로 전년 대비 9% 줄었고, 순수 전기차 판매도 16만8823대로 9% 감소했다. 아우디 그룹의 2025년 인도대수도 164만4429대로 2.8% 줄었다. 아우디 브랜드만 따져도 162만3551대로 감소세였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더 이상 “프리미엄이니까 팔린다”는 공식만으로 버티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이름만으로 우러름을 받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대로 한국은 달랐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기준 2025년 수입 승용차 신규등록은 30만7377대로 전년보다 16.7% 늘었다. 점유율도 20%를 처음 넘어섰다. 그 중심에 프리미엄급 수입차가 자리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한국에서 6만8467대를 등록했고, 아우디도 1만1001대를 기록했다. 세계 시장에서는 판매 둔화와 구조조정, 수익성 압박에 시달리는데, 한국은 오히려 수입차 시장이 커졌다. 두 브랜드가 한국을 유난히 공들여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전처럼 한국이 브랜드를 좇는 시장이 아니라, 브랜드가 한국의 반응을 먼저 살피는 시장이 된 셈이다.
[기자수첩] 서울은 화려했지만, 독일 프리미엄의 속내는 다급
이미지 확대보기아우디 A6 출시 현장, 스티브 클로티 아우디 코리아 사장, 마르코 슈베르트 아우디 AG 이사회 멤버, 세일즈·마케팅 총괄, 게르놋 될너 아우디 AG 이사회 의장, 회장. 사진=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두 브랜드는 행사장에서 나란히 ‘로컬 협업’을 말했다. 아우디는 한국 시장의 높은 디지털 수용성을 거론하며 로컬 기업과의 협업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벤츠 역시 한국 파트너와의 협력 확대를 같은 날 더 분명하게 보여줬다. 실제로 삼성SDI와 다년간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차세대 배터리 기술 공동개발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겠다고 밝혔다.
이 대목을 단순한 ‘한국 시장 존중’으로 읽으면 절반만 본 셈이다. 이들이 말하는 로컬 협업의 이면에는 한국 소비자에게 잘 보이겠다는 홍보 차원을 넘어, 한국의 속도와 기술력을 빌려오겠다는 현실적 계산도 깔려 있다. 배터리는 한국이 강하고, 디지털 경험과 연결성에 대한 소비자 기대치는 한국이 유난히 높다. 프리미엄 브랜드 입장에선 한국이 잘 팔리는 시장인 동시에, 기술과 서비스 감각을 검증받는 고난도 시험장이다. 결국 ‘협업’은 친근한 표현일 뿐, 더 정확히 말하면 생존을 위한 현지화 압박에 가깝다. 독일 프리미엄이 기준을 제시하고 한국이 따라가던 구도에서, 이제는 한국의 기술과 소비자 감각을 참고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흔들리는 구도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두 행사를 마냥 ‘한국 시장 위상 강화’라는 훈훈한 이야기로만 읽기는 어렵다. 오히려 더 본질적인 장면은 따로 있다. 벤츠는 화려한 무대로 여전히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인상을 심으려 했고, 아우디는 A6라는 정통 세단을 앞세워 흔들린 중심을 다시 세우려 했다. 하나는 리더의 불안감이 만든 무대였고, 다른 하나는 추격자의 절박함이 묻어나는 행사였다. 둘 다 여유로워서 나온 연출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공통점은, 이제 한국 소비자 앞에서는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는 데 있다.
왜 이렇게까지 다급할까를 생각해볼 수 있다. 경쟁 구도가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는 서로만 견제하지 않는다. 테슬라는 전동화를 더 이상 ‘미래’가 아니라 대중적 상품으로 만들어 버렸고, 현대차·기아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내연기관 전 영역에서 빠르게 상품성과 브랜드 신뢰를 끌어올리고 있다. 토요타는 하이브리드라는 가장 현실적인 전동화 해법을 오래전부터 시장에 안착시켰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강점이었던 기술, 효율, 브랜드 가치가 한꺼번에 공격받는 구도다. 다시 말해, 독일차라는 이유만으로 선망을 보장받던 시대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벤츠에 기대를 거는 시선도 이해된다. 전동화 시대에도 무대를 만들 줄 알고, 브랜드를 이야기로 포장하는 힘이 여전히 있다. 아우디에 기대를 거는 시선도 틀리지 않다. 괜한 수사보다 핵심 모델로 다시 시작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날만큼은, 두 브랜드 모두 미래를 자신 있게 설명했다기보다 미래를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더 강하게 남겼다. 한때는 소비자가 브랜드를 올려다봤다면, 이제는 브랜드가 한국 시장의 반응을 더 민감하게 읽는 쪽에 가까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같은 날의 두 행사는 신차 공개를 넘어 독일 프리미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는 생각이다. 이미 여러 이슈에 시달렸던 벤츠코리아는 화려했지만 그만큼 부담이 커 보였고, 맥이 빠졌던 아우디는 담담했지만 그만큼 사정이 잘 읽혔다. 한국은 분명 매력적인 시장이다. 그러나 한국 시장을 중시한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소비자들이 보고 싶은 것은 행사 규모가 아니라, 누가 더 설득력 있게 다음 10년의 답을 내놓느냐다. 그 질문 앞에서 벤츠도, 아우디도 아직은 완전히 안심시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