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은 지금 과도기 한가운데 서 있다. 브랜드들은 앞다투어 전동화 속도와 퍼포먼스를 과시하며 미래 서사를 쌓아가지만, 정작 운전자에게 필요한 건 더 단순한 질문일 수 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짧은 마트 이동, 주말 고속도로 주행까지 합쳐 생각하면 과연 “극적인 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이번에 만난 2026년형 혼다 어코드는 바로 그 지점에서 말을 건다. 잘 달리고, 잘 서고, 덜 피곤하고, 조용히 옆에 있어주는 차. 대단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장점이 드러나는 차. 어코드는 오랜 세월 이 ‘무난함의 미학’을 가장 정교하게 다듬어온 세단이다.
외관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말 그대로 조용한 자신감이다. 전면 그릴이 살짝 넓어진 덕분에 인상은 더 단단해졌지만, 표정은 과장되지 않는다. 측면에서 이어지는 라인은 캐릭터를 강조하기보다 균형을 우선시했고, 루프에서 트렁크로 이어지는 곡선은 숙련된 디자인팀이 “세단이란 원래 이런 것이다”라고 설명하듯 자연스럽게 마무리된다. 요란함 대신 시간의 흐름을 견딜 수 있는 정통성을 선택한 셈이다. 굳이 새로움을 과시하지 않아도, 오랜 세월 시장에서 품질과 실용으로 인정받아온 모델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였다.
실내는 혼다가 전통적으로 강점을 보여온 영역이다. 착좌감은 장거리 주행을 고려한 쿠션과 지지력의 절묘한 균형을 보여주고, 스티어링과 센터 콘솔은 손과 팔이 자연스럽게 정렬되는 위치에 놓였다. 버튼 구성도 혼란을 주지 않는다. 필요한 조작은 손이 먼저 알고, 눈이 뒤따라 확인한다. 전자식 인터페이스는 지나치게 수다스럽지 않다. 디지털 그래픽과 피지컬 버튼을 절충해 정보 전달 방식이 명확하다. 탑승자는 배운 듯 말듯 편안하게 차와 연결되고, 차는 그 리듬을 방해하지 않는다. 사운드 역시 마찬가지다. 요란한 저음을 부풀리지 않고, 음색을 자연스럽게 정돈해 실내 정숙성과 일관된 감각적 톤을 유지했다.
주행에서 어코드의 성격은 더 선명해진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모터와 엔진 간 전환 과정이 거의 감지되지 않을 만큼 이질감이 없다. 토요타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전환이라고 할까.
스티어링은 놀라울 만큼 평온하지만 정확하고, 과도한 노면 정보 전달이나 인위적인 보정의 흔적이 없다. 달리는 동안 운전자가 차를 ‘다루는’ 느낌보다는 차와 ‘함께 움직인다’는 감각이 강하게 들어온다. 도심에서의 저속 주행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고속에서는 직진 안정성이 단단히 유지된다. 과감한 코너 진입에서도 차체는 조용하고 일관된 자세를 유지한다. 무언가를 과시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믿을 수 있는 움직임이다.
서스펜션은 혼다가 가장 오랜 시간 다듬어온 영역이다. 충격 흡수는 둥글고 부드럽다. SUV처럼 높게 떠 있지 않고, 스포츠 세단처럼 바닥을 움켜쥐려 하지도 않는다. 도로와 타이어 사이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에너지를 억지로 ‘부각’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정리해낸다. 장거리 주행 시 피로가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코드는 운전자의 몸을 긴장시키지 않고, 불필요한 감각을 제거하며, 도로와 인간 사이에서 완충재처럼 작동한다.
이 차는 시승 내내 자신을 과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승이 끝날 때쯤 가장 또렷하게 남는 문장은 하나였다. “무난함은 때때로 가장 큰 장점이 된다.” 자동차 시장에서 ‘무난하다’는 표현은 종종 칭찬과 거리가 먼 단어였다. 그러나 어코드가 보여준 무난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화려함을 덜어내고 필요한 기능만 남기며, 모든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 매일 반복되는 운전이라는 노동을 편안한 루틴으로 복원하는 능력, 그것이 어코드의 본질이다.
SUV 열풍 속에서 세단은 점점 존재감을 잃어가는 듯하지만, 어코드는 그 조용한 중심에서 다시 설 자리를 만든다. 운전자가 차와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차의 존재감을 과도하게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 기술적 진보와 사용자 경험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 이 차는 그 음성적 만족을 가장 정교하게 구현한다.
자동차가 점점 더 ‘콘텐츠’가 되고 있는 시대에, 어코드는 다시 운전이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 속도보다 흐름, 자극보다 안정, 감각적 충돌보다 생활의 호흡을 중시하는 세단. 그래서 이 말은 결코 평범한 문장이 아니다. “무난한 게 가장 좋을 때가 있다.” 혼다 어코드는 지금, 바로 그 순간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