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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열전] '한 지붕 두 가족'의 50년 드라마: 현대와 기아, 라이벌에서 글로벌 쌍두마차로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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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열전] '한 지붕 두 가족'의 50년 드라마: 현대와 기아, 라이벌에서 글로벌 쌍두마차로 진화

IMF 위기 속 합병부터 E-GMP 공동 개발까지
경쟁과 협력으로 세계 2위 자동차 그룹 일군 '형제 경영'의 비밀

육동윤 기자

기사입력 : 2025-10-30 10:55

현대차·기아 양재 사옥 전경 사진=현대자동차그룹이미지 확대보기
현대차·기아 양재 사옥 전경 사진=현대자동차그룹
한 지붕 두 가족. 한국 자동차 산업의 쌍두마차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관계를 일컫는 이 말에는 오묘한 경쟁과 협력의 역사가 담겨 있다. 현대와 기아, 서로에게 가장 큰 자극이자 든든한 파트너였던 두 브랜드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치열하게 맞붙으며 함께 성장해왔다. 같은 그룹에 속하면서도 절대 안주하지 않고 경쟁을 이어온 그들의 이야기는, 형제간 라이벌리가 어떻게 기업의 동반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드라마다.

현대차그룹 서울 양재동 본사 쌍둥이 빌딩. 왼쪽 건물에 현대자동차 로고가, 오른쪽 건물에 기아자동차 로고가 걸려 있다. 한 그룹 안에 나란히 서 있지만 각기 다른 이름을 단 이 건물들은, 같은 지붕 아래서도 서로 경쟁하는 현대차와 기아의 독특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60년대 후반,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대한민국에서 현대자동차는 첫 발을 내딛었다. 1967년 정주영 창업주는 현대건설에서 얻은 노하우와 열정으로 현대자동차주식회사를 설립하며 한국 자동차 산업의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설립 이듬해 울산 공장을 완공한 현대차는 포드와의 기술 제휴로 코티나를 조립 생산하며 시작해, 1975년에는 국내 기술진이 개발한 첫 고유 모델 ‘포니’를 선보이며 국민차 시대를 열었다. ‘현대’라는 이름 그대로 “현대적인”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출발한 현대차는, 실용성과 내구성을 앞세워 국내 최대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해 나갔다.

한편 현대보다 스무 살 형님 격인 기아자동차의 뿌리는 일제강점기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4년 김철호 창업주가 경성정공으로 세운 작은 철공소에서 출발한 기아는, 한국 최초의 국산 자전거를 만들며 이름을 알렸다.

1952년 사명을 기아산업으로 바꾸고 삼천리자전거를 출시한 이후, 기아는 오토바이와 삼륜차, 트럭 등을 생산하며 기반을 다졌다. 1970년대 들어서는 일본 마쓰다와 제휴해 소형 승용차 ‘브리사’를 국내 최초로 선보였고, 1980년대부터는 ‘프라이드’와 ‘세피아’, SUV ‘스포티지’ 등으로 승용차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아시아에서 일어선다”는 뜻의 사명을 지닌 기아는, 보다 젊고 도전적인 이미지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며 현대차에 맞서는 경쟁자로 부상했다.

쏘나타 출시 40주년 기념, 1988년식 스텔라 전시 모델 사진=현대자동차이미지 확대보기
쏘나타 출시 40주년 기념, 1988년식 스텔라 전시 모델 사진=현대자동차

라이벌의 질주: 경쟁 속에 빛난 두 별

1980~90년대 한국 자동차 시장은 현대, 기아를 비롯한 토종 업체들이 각축을 벌인 무대였다. 현대차는 국산차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국민차’로 불린 쏘나타,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 등의 히트 모델을 배출했다. 반면 기아차는 프라이드(소형차)와 스포티지(SUV) 등을 앞세워 틈새를 파고들며 존재감을 키웠다. 특히 1990년대 중반에는 기아의 스포티지가 국내 최초의 도심형 SUV 열풍을 일으키고, 중형 세단 크레도스와 콩코드로 현대 그랜저, 쏘나타 등에 도전하는 등 현대에 도전장을 내민 사례도 적지 않았다. 두 기업은 연구개발 면에서는 각각 일본, 미국 업체들과 손잡으며 기술 축적에 힘썼는데, 현대차는 미쓰비시와 제휴해 엔진을 개발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고, 기아차는 마쓰다·포드와의 협력을 통해 디자인과 기술을 끌어왔다. 이처럼 각기 다른 길을 걸으며 정면 승부를 펼치던 현대와 기아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를 자극하며 한국 자동차 산업 전체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두 기업의 명암은 엇갈렸다. 현대자동차는 1990년대 중후반 엑셀, 쏘나타 등을 앞세워 북미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대규모 수출로 몸집을 키웠지만 품질 논란 등의 시련도 겪었다. 기아자동차는 한때 내수 점유율 2위까지 올라설 정도로 성장했으나, 무리한 사업 확장과 자동차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으며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됐다. 1997년 기아그룹은 마침내 유동성 위기에 봉착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에 이르렀고, 당시 재계 서열 8위에 28개의 계열사를 거느렸던 거대 기업집단이 줄줄이 부도처리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1997년 7월 15일, 기아는 외환위기의 광풍 속에 부도유예협약(워크아웃) 적용 대상이 되며 사실상 파산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국내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던 두 별 중 하나가 어둠에 잠식되어가던 순간이었다.

IMF 폭풍과 재편: 형제가 된 라이벌

1997년 말 대한민국을 강타한 IMF 외환위기는 자동차 산업 구조 개편의 분수령이 됐다. 쌍용차(KG 모빌리티 전신)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대우그룹이 휘청였으며,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마저 좌초되는 등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가장 극적인 변화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운명적인 합류였다. 기아차 인수를 둘러싸고 국내외 여러 기업들이 물밑 경쟁을 벌였다. 당시 기아의 지분을 일부 보유하고 있던 미국 포드사가 관심을 보였고, 삼성그룹도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1998년 가을에 진행된 국제 입찰에서 결국 현대자동차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현대는 기아를 품에 안는 데 성공했다. 1998년 12월 현대차는 경영 위기에 빠진 기아차 지분 약 30%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으며, 이듬해 1999년 기아차와 그 계열사들이 현대그룹에 공식 편입됐다.

기아 창립 55년 만에 맞이한 새 주인은 다름 아닌 최대의 경쟁자였던 현대차였고, 라이벌이었던 두 기업은 그렇게 하나의 가족이 됐다. 현대의 기아 인수는 당시 한국 산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대자동차로서는 생산 규모와 제품 포트폴리오를 대폭 확대하여 양적 도약을 이룰 발판을 마련했고, 기아자동차는 극적인 생환과 재기의 기회를 얻었다. 이후 현대그룹은 자동차 부문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2000년 9월 ‘현대자동차그룹’이 공식 출범했는데, 여기서 현대와 기아는 각각 독립 법인으로 남은 채 한 지붕 두 가족의 특이한 동거를 시작했다. 현대차는 형님 회사로서 지분 33.8%를 쥐고 기아를 거느린 대주주가 되었지만, 법적으로는 서로 별개의 기업인 상태가 유지됐다. 이질적인 두 브랜드를 한 울타리에 묶은 현대차그룹은 이후 한국 자동차 산업을 새롭게 견인하는 거대한 축으로 떠올랐다.

전 기아 디자인 총괄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 K7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기아이미지 확대보기
전 기아 디자인 총괄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 K7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기아

같은 그룹, 다른 길: 역할 분담과 브랜드 정체성

현대차그룹 내부에서 현대와 기아는 형제지간처럼 긴밀히 협력하면서도 분명한 역할 분담과 색채 차별화를 꾀해왔다. 연구개발(R&D) 부문에서는 두 회사가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였다. 경기도 화성 남양기술연구소를 양사가 공동으로 활용하여 차량 플랫폼과 핵심 기술을 함께 개발하고 개발비를 분담함으로써, 규모의 경제 효과를 극대화했다. 실제로 남양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은 형식상 현대차 직원으로 되어 있어, 기아차가 현대차에 R&D 용역을 위탁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이렇게 기술과 부품은 공유하며 협력한 덕분에 현대차와 기아차는 효율적으로 신차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반면 생산과 판매에 있어서는 철저한 분리 경영 원칙이 적용됐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서로 별도 법인이므로, 공장 가동과 영업 활동은 독자적으로 이루어진다. 국내에서는 양사가 각자 공장을 운영해 상대 브랜드 차량을 생산하지 않고(예외적으로 미국 공장에서 현대차 SUV를 기아가 위탁생산한 사례가 있지만 매우 드물다), 노사 협상 역시 별개로 진행된다. 특히, 영업 부문에서는 경쟁사와 다름없는 냉랭함마저 감돈다. 현대차의 국내영업본부와 기아의 국내영업본부는 서울에서도 아예 다른 곳에 위치해 있는데, 현대차는 양재동 본사에, 기아는 강남 압구정동 사옥에 터를 잡았다.

영업 기밀을 지키고 공정한 경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같은 그룹사임에도 판매 조직을 분리한 것이다. 서로 한솥밥을 먹는 사이처럼 보이지만, 영업 현장에서 현대와 기아는 가장 경계하는 최대의 라이벌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그룹 내 역할 분담은 각 브랜드의 정체성 확립과도 맞물려 있다. 현대자동차는 그룹의 맏형답게 메인스트림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강조해왔다. 대중적 인기차종인 아반떼, 쏘나타, 싼타페 등을 통해 중산층 패밀리카 시장을 주도하며, “신뢰성과 실용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디자인 철학에서도 현대차는 비교적 품격 있고 무난한 노선을 추구하여, 폭넓은 연령층과 보수적인 취향의 고객들을 아우르는 전략을 취했다. 한편 기아자동차는 현대보다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전면에 내걸었다.

2000년대 후반 독일 출신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해 디자인 혁신을 꾀한 이후, 스포티지, K시리즈(K5, K7 등)에서 파격적인 스타일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21년에는 아예 사명에서 ‘자동차’를 떼어내고 새 로고와 슬로건을 발표하며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했는데, 이를 통해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변신 의지를 담는 동시에 혁신적이고 감성적인 디자인으로 젊은 세대를 공략하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했다. ‘Movement that inspires’라는 영문 슬로건이 상징하듯, 기아는 보다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브랜드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현대차그룹은 브랜드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현대와 기아의 역할을 구분 짓고 상호 보완하도록 설계했다. 현대차가 폭넓은 대중 시장을 커버하는 중심축이라면, 기아는 디자인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그 틈새를 파고드는 세컨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예를 들어 현대차가 2015년 고급차 전문 브랜드 제네시스를 별도로 출범시켜 럭셔리 시장을 공략하는 동안, 기아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준고급 세단 K9을 자체 브랜드로 내놓아 대중 브랜드 내에서의 최고급 이미지를 담당하는 방식을 택했다. SUV 라인업에서도 현대차는 팰리세이드, 투싼 등 주력 모델로 미국·유럽 등 주요 시장을 노리고, 기아는 텔루라이드(북미 전용 대형 SUV), 셀토스(인도 등 신흥시장 맞춤형 소형 SUV)처럼 지역별 특화 모델을 투입하며 차별화된 전략을 펼쳤다. 이렇듯 현대와 기아는 그룹 내 중복을 최소화하면서도 각자의 강점을 극대화하여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이루고자 했다.

미국 전용 판매 모델 기아 텔루라이드 사진=기아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전용 판매 모델 기아 텔루라이드 사진=기아

도로 위의 난타전: 한배를 탄 형제의 경쟁 사례

같은 그룹 식구라고 해서 양보나 온정 따위는 없다. 특히 내수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차는 서로의 가장 껄끄러운 경쟁자다. 판매 현장에서는 “상대에게 지는 순간 내 자리도 위태롭다”는 배수진이 당연시될 정도로, 두 회사 영업사원들이 느끼는 경쟁 압박은 치열하다. 실제로 현대와 기아의 국내 차급별 판매 경쟁을 들여다보면, 소형차부터 대형차, RV와 SUV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세그먼트에서 서로가 서로의 최대 라이벌로 맞부딪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차 아반떼와 기아 K3(준중형), 현대 쏘나타와 기아 K5(중형), 싼타페와 쏘렌토(SUV), 스타리아와 카니발(MPV) 등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쌍들이 줄을 잇는다. 그만큼 양사가 피할 수 없는 자존심 대결을 벌이는 시장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얘기다.

이 경쟁은 때로는 날카로운 신경전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2015년 기아가 신형 K5를 출시하면서 “두 개의 얼굴, 다섯 개의 심장”이라는 슬로건으로 이중 페이스리프트 디자인과 다양한 엔진을 내세운 캠페인을 벌이자, 경쟁 차종인 현대 쏘나타는 곧바로 “일곱 개의 심장”이라는 문구를 앞세워 맞불 광고를 내놓았다. 기아가 엔진 5종을 자랑하자 현대가 7종으로 응수한 것이다. 또 2014년 기아가 올 뉴 쏘렌토 발표 행사를 자사 글로벌 품질센터에서 열어 제품의 우수한 품질을 강조하자, 이는 직전에 발생한 현대 싼타페의 물 새는 사고를 은근히 환기하며 현대차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해석도 나왔다.

서로를 견제하기 위한 이런 재치 있는 공방은 언론의 화제가 되었고, 소비자들에겐 즐거운 볼거리로 회자한다. 경쟁사들이 “현대-기아 내부 싸움 구경만 해도 재밌다”고 농담할 정도로, 두 형제의 한치도 물러섬 없는 마케팅 경쟁은 국내 자동차 시장의 단골 풍경이 됐다.

제품 포지셔닝 면에서도 두 브랜드의 밀고 당기기는 흥미롭다. 기아차는 한때 신형 K5가 쏘나타를 디자인으로 앞섰다는 평가를 받으며 “쏘나타의 그늘을 벗어난” 성공을 노렸지만, 현대차가 금세 쏘나타 신모델이나 제네시스 G70 같은 상급 차종을 투입하면 다시 판도가 뒤집히곤 했다. 예컨대 기아의 플래그십 대형세단 K9은 야심 차게 출시됐지만, 같은 그룹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 EQ900(G90)의 벽을 넘지 못해 판매가 미미했다.

또한, 스포츠 세단 스팅어가 젊은 층의 기대를 모았으나, 출시 몇 달 뒤 현대차그룹이 제네시스 G70을 내놓자 관심이 급속히 식어버린 사례도 있었다.

SUV 부문에서도 스포티지 vs 투싼, 쏘렌토 vs 싼타페 등 혈전을 이어가고 있는데, 기아만의 독자 라인업으로 남아 있던 모하비조차 머지않아 제네시스의 대형 SUV 출현으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될 전망이었다. 이렇듯 현대차와 기아차는 매 단계 서로를 추격하고 견제하며, 때로는 한쪽이 다른 쪽 그늘에 가리는 아쉬움도 남기는 복잡한 경쟁 구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상호 경쟁 덕분에 양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품질을 개선하며, 결과적으로 더 나은 자동차를 시장에 내놓게 되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에게는 이로운 건강한 ‘경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대 아이오닉 5 N 사진=현대자동차이미지 확대보기
현대 아이오닉 5 N 사진=현대자동차

글로벌 무대, 따로 또 같이 날다

국내에서 티격태격하던 형제들은 글로벌 시장에 나가서는 같은 배를 탄 동료로서 서로의 성장을 도왔다. 현대차는 2000년대 초반 품질 혁신과 파격적인 보증 정책(10년/10만 마일 보증 등)을 통해 해외 신뢰도를 끌어올렸고, 동시에 기아차 역시 현대와의 공동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서 품질 향상을 이뤄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기아차의 해외 판매는 “현대차의 그늘”을 벗어나 독자적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미국 시장에서 스포티지·쏘렌토가 소형·중형 SUV로 인기를 얻고 유럽 시장에서는 씨드와 스포티지가 현지 취향에 맞는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는 현대-기아가 플랫폼과 부품을 공유하면서도 디자인과 주행 감각을 달리 해 각기 다른 소비자층을 공략한 결과였다.

현대차가 북미에서 쏘나타로 중형 세단 돌풍을 일으킬 때, 기아차는 포르테(K3)와 옵티마(K5)로 젊은층과 가성비를 중시하는 층을 공략하며 상호보완적으로 시장을 개척했다. 두 브랜드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현대=신뢰, 기아=스타일”이라는 각인 효과를 통해 한국 자동차의 전체 파이를 키우는 데 기여한 것이다.

특히 친환경차와 신기술 분야에서 현대와 기아의 공조는 세계 시장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대 들어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를 개발해 현대 아이오닉5와 기아 EV6, EV9 등에 적용시켰는데, 이는 두 브랜드가 공동의 기술 토대 위에서 서로 다른 개성을 입힌 전기차를 내놓을 수 있게 했다.

이를테면 현대의 아이오닉5가 레트로 미래지향 디자인으로 기술 혁신 이미지를 강조했다면, 기아 EV6는 스포티한 크로스오버 스타일로 젊고 다이내믹한 감성을 어필했다. 또 대형 전기 SUV 시장에서는 현대가 아이오닉9 콘셉트로 보트 디자인을 접목한 여유로운 스타일을 선보이고, 기아는 EV9 양산형으로 각진 모험가적 디자인과 최첨단 전자장비를 강조함으로써 차별화된 접근을 취하고 있다.

수소차나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서도 두 회사는 연구 성과를 공유하면서도 브랜드별로 적합한 적용 모델을 달리해 시너지와 다양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이런 전략 덕분에 현대차와 기아차는 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폭스바겐 등에 맞설 강자로 함께 부상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글로벌 동반 승승장구는 수치로도 입증된다. 두 회사는 2010년대 중반 이후 합산 판매량 기준으로 GM, 포드를 제치고 세계 5위권 완성차 그룹으로 올라섰으며, 2020년대에 들어서는 르노-닛산연합과 스텔란티스를 추월해 글로벌 3위 자리에까지 도달했다. 실제로 2024년 현대차와 기아차는 전 세계 시장에서 총 723만 대를 판매하여 토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세계 3위 자동차 그룹의 위상을 유지했다. 현재는 폭스바겐을 누르고 2위에 오르는 쾌거를 거뒀다.

현대와 기아가 합심하여 달성한 이 놀라운 기록은, 25년 전 같은 가족이 되었을 때만 해도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던 결과다. 글로벌 무대에서 현대차의 튼튼한 신뢰 구축과 기아차의 트렌디한 이미지 제고 전략이 함께 먹혀들면서, 두 브랜드는 이제 “한국 자동차의 쌍두마차”를 넘어 세계 자동차 업계의 쌍두마차로 우뚝 서 있다.

기아 EV9 GT-line 사진=기아이미지 확대보기
기아 EV9 GT-line 사진=기아

같은 피, 다른 꿈: 형제 브랜드의 동행

돌이켜보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사연은 마치 한편의 가족 드라마와 같다. 산업화 시대의 태동기부터 IMF 위기의 격랑, 글로벌 시장 진출의 모험과 영광까지 굴곡진 역사의 고비마다 형제의 인연이 교차했다. 피를 나눈 형제처럼 한 집안에 살지만 성격은 정반대인 두 브랜드는, 때로는 치열하게 다투고 경쟁하면서도 결국 서로의 성장에 힘을 보태왔다. 현대차가 없었다면 기아차는 IMF 때 사라졌을지 모른다. 기아차가 없었다면 현대차는 지금처럼 다채로운 색깔을 갖추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렇게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 속에서 현대와 기아는 함께 세계 무대에 나아갈 날개를 얻었다.

두 회사의 임직원들은 지금도 서로를 “가장 얄미운 존재이자 가장 든든한 동료”라고 말한다. 경쟁을 통해 더 좋은 차를 만들어내고, 협력을 통해 더 넓은 시장으로 나아가는 공진화(共進化) 전략은 현대차-기아차 특유의 강점이다.

한 그룹 안에서 혁신의 아이디어와 품질 노하우를 공유하되, 각자의 브랜드 철학으로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이 선순환 구조는, 세계 어느 자동차 기업도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현대차그룹만의 자산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같은 플랫폼에서 나온 현대차와 기아차가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며 경쟁해준 덕분에, 더 나은 품질과 서비스의 혜택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형보다 나은 아우, 아우를 뛰어넘는 형.” 앞으로도 현대차와 기아차의 라이벌 스토리는 진화할 것이다. 전기차, 자율주행차 시대로 접어들며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고 있지만, 두 형제는 여전히 서로를 최고의 벤치마크 삼아 함께 전진하고 있다. 결승선을 향해 경주하면서도 서로를 격려하는 마라토너처럼, 현대와 기아는 경쟁하며 동반 성장해온 특별한 파트너다. 한눈에 보기에는 다투기만 하는 앙숙 같지만, 알고 보면 둘만이 통하는 돈독한 형제애가 그들 사이에 흐르고 있다. 같은 집에서 자라난 두 브랜드 현대와 기아가 펼쳐갈 다음 장(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분명한 것은, 그들이 라이벌로서 서로를 몰아붙이는 한,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 또한 더 밝게 빛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육동윤 글로벌모빌리티 기자 ydy33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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