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동차 산업이 더 이상 ‘가성비’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되던 시절은 지나갔다. 특히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중국 브랜드의 존재감은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커지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대표 기업이 바로 BYD와 지리(Geely)다. 두 회사는 중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이지만 성장의 방식과 브랜드 철학은 상당히 다르다. BYD가 기술과 생산체계를 내부에서 축적하며 성장한 기업이라면, 지리는 인수합병과 글로벌 협력을 통해 자동차 산업의 네트워크를 확장한 기업에 가깝다.
배터리에서 시작된 BYD, 전기차 시대의 주도권 노린다
BYD는 1994년 중국 선전에서 배터리 기업으로 출발했다. 창업자 왕촨푸(Wang Chuanfu)는 휴대폰용 충전식 배터리를 생산하며 회사를 성장시켰고, 이후 전자부품과 에너지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자동차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03년이다. 당시 중국 자동차 회사 친촨(Qinchuan)을 인수하면서 완성차 산업에 진입했다.
BYD의 성장 스토리는 전기차 시대와 맞물려 있다. 배터리 기업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 핵심 기술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BYD는 배터리, 전기 모터, 전력 반도체까지 핵심 부품 상당수를 자체 생산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른바 ‘수직 계열화’다. 대표 기술로 꼽히는 블레이드 배터리 역시 이러한 전략의 결과다.
이 같은 기술 중심 전략 덕분에 BYD는 전기차 시장에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합친 신에너지차 판매에서 세계 최대 규모를 기록하며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흔들었다. 전통 완성차 기업들이 전동화 전환에 시간을 들이는 사이, BYD는 이미 생산체계와 공급망을 구축해 경쟁력을 확보한 셈이다.
또한 BYD는 스스로를 ‘신에너지 기술 기업’으로 정의한다. 태양광 발전, 에너지 저장 시스템, 전기버스와 철도 교통까지 포함하는 사업 구조를 구축하며 에너지 생태계 전체를 아우르려 한다. 자동차는 그 중심에 있는 플랫폼일 뿐이다.
[브랜드열전] 배터리로 큰 BYD, 인수합병으로 넓힌 지리… 중국차의 오늘을 만든 두 개의 공식
지리의 성장 방식은 BYD와 완전히 다르다. 지리는 1986년 냉장고 부품 사업으로 시작해 1997년 자동차 산업에 진입했다. 중국 최초의 민영 자동차 제조사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지리가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존재감을 키운 결정적 사건은 2010년 포드로부터 볼보자동차를 인수한 일이다. 당시만 해도 중국 기업이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를 인수한다는 사실 자체가 업계의 큰 화제였다. 이후 지리는 볼보를 기반으로 글로벌 기술 역량을 빠르게 흡수했다.
지리의 전략은 단순히 한 브랜드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 브랜드를 묶는 방식이다. 현재 지리 그룹에는 볼보자동차, 폴스타, 로터스, 지커(Zeekr), 링크앤코(Lynk & Co), 스마트 합작사 등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 상용차 기업인 AB볼보 지분 투자와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지분 투자까지 이어지며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처럼 지리는 다양한 브랜드와 기술을 묶는 ‘자동차 그룹형 구조’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프리미엄 브랜드와 대중 브랜드, 전기차 스타트업까지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확보했다. 중국 내수 시장뿐 아니라 유럽과 동남아, 중동 시장까지 진출하며 글로벌 자동차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중국차지만 전혀 다른 성장 공식
BYD와 지리를 비교하면 중국 자동차 산업의 두 가지 성장 모델이 보인다.
BYD는 내부 기술 축적을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다. 배터리와 전동화 기술을 중심으로 자동차 산업의 핵심을 장악하려 한다. 생산부터 부품까지 자체 공급망을 구축해 가격 경쟁력과 기술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했다.
반면 지리는 외부 네트워크 확장을 통해 성장했다. 글로벌 브랜드 인수와 협력을 통해 기술과 브랜드 가치를 동시에 확보했다. 즉, BYD가 기술 중심 기업이라면 지리는 글로벌 자동차 그룹 전략에 가까운 기업이다.
이 차이는 브랜드 이미지에서도 드러난다. BYD는 ‘전기차 기술 기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반면 지리는 소비자에게 지리라는 이름보다 볼보, 폴스타, 로터스 같은 브랜드를 통해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한국 시장에서 만나는 중국차의 두 전략
이 두 회사의 전략은 한국 시장에서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BYD는 이미 전기차 시장을 중심으로 한국 진출을 본격화했다. 특히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전기 SUV와 세단을 통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소형 전기 SUV 아토3(Atto 3)와 같은 모델이 출시되며 전기차 보급형 시장을 노리고 있다. 가격 경쟁력과 배터리 기술을 무기로 삼는 전략이다.
지리는 한국 시장에 직접적인 브랜드로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이미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볼보자동차와 폴스타다. 두 브랜드 모두 지리 그룹의 기술과 플랫폼을 공유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하고 있다. 특히 폴스타는 전기차 브랜드로 한국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즉 BYD가 ‘중국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면, 지리는 글로벌 브랜드 네트워크를 통해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중국차 경쟁의 다음 단계
자동차 산업이 전동화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중국 브랜드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배터리 공급망과 전기차 생산 능력에서 중국 기업들은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했다.
BYD는 전기차 시대의 기술 리더를 목표로 움직이고 있고, 지리는 글로벌 브랜드 연합을 통해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한다.
두 회사의 방향은 다르지만 공통점도 있다. 더이상 중국 내수 시장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 BYD와 지리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플레이어로 등장했다.
중국차의 성장 과정은 낯설기보다 오히려 한국차가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가던 흐름과 닮았다. 후발주자로 출발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웠고, 자국 시장을 기반으로 품질과 상품성을 끌어올리며 해외로 보폭을 넓혀왔다는 점에서다. 한때 현대차그룹이 ‘가성비 좋은 차’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브랜드’로 도약했듯, BYD와 지리 역시 이제는 비슷한 궤도에 올라탄 모습이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남아 있다. 판매량 확대만으로 세계 정상에 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것은 품질 신뢰, 기술 완성도,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험 축적, 그리고 소비자에게 각인되는 브랜드 가치다. 그런 점에서 BYD와 지리는 더이상 저렴한 중국차 브랜드가 아니다. 이들이 앞으로 현대차그룹처럼 세계 자동차 시장의 최상단을 위협하는 존재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이제 관심은 ‘가능하냐’가 아니라 ‘언제 현실이 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