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EV)가 자동차 산업의 미래로 자리 잡은 지는 이미 오래다. 각국 정부는 탄소중립을 앞세워 내연기관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 완성차 업체들은 전동화 전환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내연기관차는 곧 사라질 것”이라는 단순한 전망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다. 기술, 시장, 소비자 인식, 그리고 가격 구조까지 고려하면 미래 모빌리티 사회는 예상보다 훨씬 복합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전동화의 확산은 분명한 흐름이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 비중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며, 유럽과 중국, 미국 일부 주를 중심으로 전동화 전환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한국 역시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과 충전 인프라 구축을 통해 전동화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제조사들은 배터리 기술 개선과 원가 절감을 통해 전기차의 가격을 낮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가 곧바로 내연기관차를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전기차는 충전 시간, 주행거리, 배터리 수명, 중고차 가치, 화재 위험 등 여러 현실적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배터리 원자재 가격 변동과 지정학적 리스크는 전기차 가격 안정화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편리함”과 “경제성”이라는 관점에서 전기차가 모든 상황에서 최적의 선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변화는 가격 구조에서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비싸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중저가 전기차 라인업이 늘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반면, 환경 규제 강화와 배출가스 기준 상향으로 인해 내연기관차 개발과 생산 비용은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고성능 엔진, 복잡해진 배기가스 저감 장치, 소량 생산 체계는 내연기관차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미래에는 ‘내연기관차가 더 비싼 차’가 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전기차는 대중화된 이동 수단이 되고, 내연기관차는 감성과 희소성을 갖춘 프리미엄 상품으로 남는 구조다. 과거 디젤 차량이 연비와 효율성을 무기로 가솔린을 위협하며 시장을 뒤흔들었던 시기처럼, 기술 패러다임의 전환은 자동차의 위상과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
실제로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은 여전히 V8, V12 엔진을 유지하거나, 합성연료(e-fuel)와 같은 대체 에너지 기술을 통해 내연기관의 명맥을 잇겠다는 전략을 내놓고 있다.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경험’과 ‘상징성’을 파는 시장에서는 전동화가 모든 답이 되지 않는다. 엔진 소리, 변속 감각, 기계적 질감은 여전히 일부 소비자에게 강력한 매력 요소다.
또 하나의 변수는 기술 불확실성이다. 전기차가 현재의 주류 기술로 자리 잡았지만, 배터리 외에도 수소, 합성연료, 차세대 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대체 에너지가 동시에 연구되고 있다. 만약 전기차의 구조적 한계가 더 부각되거나, 배터리 원자재 공급 문제가 심화된다면 시장의 무게중심은 다시 다른 방향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미래 모빌리티 사회는 ‘전기차의 독주’보다는 ‘다층적 공존’에 가까울 전망이다. 전기차는 대중 교통수단이자 합리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고, 내연기관차는 희소성과 감성을 앞세운 고급 상품이 된다. 이동 수단이 아니라 ‘취향과 자산’의 영역으로 자동차가 재편되는 것이다.
자동차는 더 이상 단순한 탈것이 아니다. 어떤 동력을 쓰느냐는 곧 소비자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상징이 되고 있다. 전동화 시대는 분명히 도래하고 있지만, 엔진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미래의 도로 위에는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모빌리티가 함께 공존하는 풍경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