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2035년부터 신규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를 금지하려던 당초 계획을 공식적으로 철회하고 완화된 정책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17일(현지시각) 공개된 새로운 규정에 따르면 자동차 제조사들은 2035년 이후에도 내연기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등을 계속 판매할 수 있으며, 2021년 대비 탄소 배출량을 90%만 감축하면 된다.
전동화에 속도를 내온 브랜드들은 이번 규제 완화에 즉각 우려를 표했다. 2030년까지 완전 전동화를 목표로 했던 볼보는 이번 결정이 “유럽의 경쟁력을 수년간 훼손할 위험이 있다”며 비판했다. 볼보 측은 “우리는 10년도 안 되어 완전한 전기차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며 “우리가 할 수 있다면 다른 기업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기아 역시 규제 완화가 막대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마르크 헤드리히 기아 유럽 권역본부장은 지난 8월 “전기차 출시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갑자기 전동화 경로를 멈추게 된다면 엄청난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며 순수 전기차 라인업으로의 전환을 옹호한 바 있다.
반면 대다수의 제조사는 EU의 결정을 ‘실용적’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폭스바겐은 이번 제안을 “경제적으로 건전한 결정”이라고 평가했으며, 르노는 특히 유럽 내 전기차 생산을 장려하는 ‘소형 저가차(Small Affordable Cars) 이니셔티브’에 찬사를 보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올라 켈레니우스 회장과 스텔란티스 등도 2035년 목표가 비현실적임을 지적하며 내연기관 생산 유지를 강력히 주장해 왔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는 “탈탄소화와 경쟁력을 일치시키기 위한 실용적이고 유연한 경로를 향한 첫걸음”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인 토요타는 내연기관 금지에 대해 가장 목소리 높여 반대해온 기업이다. 토요다 아키오 회장은 2024년 “전기차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30%를 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며, 배터리 생산 공정의 탄소 배출량을 고려할 때 전기차 900만 대의 탄소 발자국이 하이브리드 2700만 대와 맞먹는다는 분석을 내놓아 논란과 관심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
앞으로 EU 내에서 활동하는 자동차 기업들은 2035년 이후에도 엔진 차량을 판매할 수 있으나, 남은 10%의 탄소 배출량은 바이오 연료, 합성 연료(e-Fuel), 또는 EU 내에서 생산된 저탄소 철강 사용 등을 통해 반드시 상쇄해야 한다. 이로써 유럽 내에서 내연기관의 완전한 종말 시점은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