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피요르드 앞마당에 르노 필랑트가 세워져 있다. 사진=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
자동차가 더이상 출고와 동시에 완성되는 기계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통해 계속 발전하는 플랫폼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달 3일 서울 용산구 피요르드에서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가 단독으로 르노코리아·SKT·티맵과 함께 SDV의 현주소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했다. 플래그십 모델 ‘필랑트’를 둘러싼 본 기술 세미나는 과거 오디오 조작에 머물렀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가 이제는 대화형 AI와 차량 최적화 내비게이션, 전기차 특화 경로 안내, 향후 ADAS 연계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번 기술 세미나의 핵심은 르노 필랑트에 탑재된 ‘티맵 오토’와 SK텔레콤의 LLM 기반 ‘에이닷 오토’였다. 차 안 소프트웨어 기술이 실제 주행 환경에서 어느 수준까지 왔는지를 검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김경수 협회 운영위원장은 “기존 시승 위주 취재를 넘어 기업과 직접 소통하고 기술적 인사이트를 깊게 나누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車, 이제 스스로 진화…필랑트가 보여준 ‘차 안 AI’의 현재
이미지 확대보기김소희 티맵모빌리티 오토사업팀장이 르노 필랑트에 적용된 티맵 제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
이날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차량용 내비게이션과 AI가 더이상 별개 기능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운전자가 목적지를 입력하면 길만 안내하던 시대를 지나, 왜 특정 경로를 추천했는지 설명하고 운전 상황에 맞는 정보를 더 직관적으로 제공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소희 티맵모빌리티 오토사업팀장은 “기존에는 티맵과 누구 오토가 정형화된 답을 하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 LLM이 결합되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까지 설명하는 방향으로 고도화할 수 있다”며 “현재 그 부분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는 차량용 내비게이션이 스마트폰 화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 팀장은 차량 탑재형 티맵의 차별점에 대해 “길 안내 자체도 중요하지만, 주행 환경에서 사용자의 인터랙션을 최소화하고 최적화하는 게 가장 큰 차별점”이라며 “모바일과 심리스하게 연동되는 것도 장점이지만, 차량에서는 목적지를 경유하는 과정이나 정보 확인, 음성 기반 조작 편의성 등에서 더 직관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존 티맵 오토가 모바일과 유사한 UI에 가까웠다면 필랑트는 비주얼 요소를 강화하고, 목적지를 검색할 때 관련 정보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차별화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르노코리아 역시 차량 내장형 서비스의 의미를 단순 편의성에서 찾지 않았다. 르노 측은 “전기차 경로 안내 같은 특화 기능이 가능해지고, 스마트폰은 스크린 확장에 제한적인 부분이 있는데 차량 탑재형 시스템은 이런 부분을 통합해 자율주행이나 AI에 맞는 제품을 기획하고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자동차 안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는 스마트폰 앱의 연장선이 아니라, 차량 센서와 주행 데이터, 대화형 인터페이스가 결합된 별도의 생태계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에이닷 오토는 이 같은 변화를 더 분명하게 보여줬다.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AI를 차 안에 들여오는 것이 목표지만, 르노와 SK텔레콤은 기술 과시보다 ‘선을 넘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었다. 최병휘 SK텔레콤 에이닷 오토 담당 매니저는 세미나에서 “사용자가 명확한 의도가 없을 때 AI가 먼저 개입하면 편리함보다 오히려 피곤함, 또는 불편함을 느낀다는 피드백이 상당히 컸다”며 “사용자가 호출할 때 응답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UX를 설계했다”고 말했다. AI가 먼저 나서기보다, 운전자가 필요할 때 정확하게 반응하는 동승자 역할에 더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 배경에는 차량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이 있다. 스마트폰이나 PC에서는 AI가 다소 과하게 개입해도 불편함 정도로 끝날 수 있지만, 자동차는 안전과 직결된다. 르노코리아 측은 “자동주차 기능을 음성으로 활성화하는 것 자체는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지만, 예를 들어 뒷좌석 아이가 장난으로 ‘자동주차해줘’라고 말해 차량이 반응하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특히 주행 제어의 경우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AI가 발전할수록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겠지만, 그만큼 더 엄격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보안과 개인정보 문제도 주요 쟁점이었다. 차 안에서 음성 대화가 오가고, 목적지와 이동 이력이 쌓이는 만큼 이용자 입장에서는 정보 유출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최병휘 매니저는 “내부 서버에 관련 데이터를 저장하더라도 음성 대화나 내역은 비식별화해 보관하고 있으며, 대응에 필요한 수준만 보관한 뒤 방침에 따라 폐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 정책과 보안 관련 대책을 준수하고 있어 보안 이슈는 없으며, 개인정보 처리방침과 약관 등을 통해 사용자에게 안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AI가 사용자의 성향을 지나치게 학습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선을 그었다. SK텔레콤 측은 “현재의 에이닷 오토는 사용자의 발화 패턴을 학습하지는 않는다”며 “다만 AI 제안 기능을 위해 티맵과 함께 출발지나 목적지 등을 학습하는 부분은 있지만, 발화나 동작 자체를 학습해 무언가를 하는 수준은 아직 적용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 단계의 차량용 AI는 ‘나를 너무 잘 아는 비서’보다 ‘필요한 맥락을 이해하는 조력자’에 더 가깝다는 얘기다.
티맵의 길안내 경쟁력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이용자가 많으면 오히려 같은 길로 몰려 정체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김소희 팀장은 “많은 사용자가 티맵을 쓰기 때문에 오히려 실시간 교통정보를 더 많이 수집할 수 있고, 알고리즘에 따라 경로를 분산하는 로직도 적용돼 있다”며 “모두가 같은 길을 같은 목적지로 간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장 많은 사용자가 이용하는 서비스라는 점 자체가 어느 정도 정확한 길안내를 제공하고 있다는 증명”이라고 말했다.
차량 탑재형 티맵은 향후 더 입체적인 정보 제공으로 진화할 전망이다. 김 팀장은 “차세대 3D 맵 플랫폼을 중심으로 ADAS 정보와 AI를 결합한 새로운 인포테인먼트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며 “내년 상반기쯤이면 3D 맵 기반으로 차선 단위 경로 안내는 물론, 사고 정보 등을 보다 정확한 위치에 매핑해 직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솔루션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단순히 길을 찾는 도구를 넘어, 차량과 도로 상황을 함께 읽어주는 인터페이스로 확장되는 셈이다.
글로벌 확장 가능성도 언급됐다. 르노 측은 “현재 한국이 가장 선두적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남미 등 일부 수출 지역은 아직 커넥티비티 수준이 우리나라만큼 올라와 있지 않지만, 시장 상황과 현지 인프라 수준을 고려해 향후 현지에 맞는 내비게이션과 음성 서비스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럽에서는 이미 구글 오토모티브 기반 서비스가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지역별 시장 상황에 맞춘 전략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날 세미나는 결국 자동차 산업이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준 자리였다. 버튼 몇 개를 없애고 화면 몇 장을 더 넣는 것이 디지털 전환의 본질이 아니라, 운전자가 덜 만지고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더 자연스럽게 차와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이다. 이다일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장은 “자동차 관련 정보가 넘치다 보니 소비자가 정확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며 “전문가들이 냉정하게 평가한 팩트 위주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AI의 미래는 화려한 기능 경쟁에만 있지 않다. 운전 중 조작을 줄이고, 필요한 정보를 더 자연스럽게 전달하며, 안전과 편의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얼마나 정교하게 발전하느냐가 관건이다. 필랑트를 통해 드러난 현재의 수준은 완전한 자율 비서의 단계는 아니지만, 적어도 자동차가 기계에서 플랫폼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이미 들어섰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