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과 맺은 '대규모 무역 협정'이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고 23일(현지 시각) 외신이 보도했다. 당초 모든 외국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했던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산 자동차 및 부품에 대해 관세율을 15%로 낮추기로 백악관이 이날 확인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는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한 부품을 사용하는 미국 기업 생산 차량이 오히려 완전 해외 생산 차량보다 높은 관세에 직면할 수 있다는 뜻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일본과의 합의는 유럽연합(EU) 등 다른 주요 무역 파트너들과의 자동차 관세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복잡하게 얽힌 북미 자동차 공급망 때문에 자국 산업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 경고해온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정책 위원회(AAPC)의 매트 블런트 회장(포드, 제너럴 모터스, 스텔란티스 등 미국 기업 대변)은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미일 협정의 세부 사항을 계속 검토해야 한다"면서도, "미국산 비중이 높은 북미 생산 차량보다 미국산 비중이 거의 없는 일본산 수입품에 더 낮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미국 산업과 노동자들에게 좋지 않은 거래"라고 꼬집었다. 백악관은 이에 대한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23일 블룸버그 TV에서 "일본에 대한 자동차 관세 인하 결정이 일본의 새로운 투자 제안 덕분이며 다른 국가들이 이를 모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 자동차 산업 로비스트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이미 EU 등 주요 자동차 산업국들과 비슷한 수준의 거래를 추진해왔다고 전했다. 또한 EU 외교관 4명은 익명을 전제로, EU가 일본 협상을 반영해 자동차를 포함한 기본 관세 15% 합의를 놓고 미국과 협상 중임을 확인했다. 이 자동차 산업 로비스트는 일본과의 협정을 "미국 자동차의 또 다른 포기"라고 비판했다.
관세 역풍 맞은 美 '빅3'.. 유럽 자동차 업계에도 먹구름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가 미국 내 자동차 생산 증대에 기여할 것이라 주장했지만, 북미 자동차 공급망의 통합적 특성 때문에 자국 자동차 제조업체들 역시 관세로 인해 타격을 입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무역 협정을 재협상한 이후 멕시코와 캐나다에 자동차 제조 및 부품 공급을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고통을 일부 완화하기 위해 백악관은 향후 2년간 특정 북미산 자동차 판매 가치의 일부에 대한 복잡한 리베이트 제도를 제안했으나,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 '빅3' 자동차 기업 중 하나인 제너럴 모터스(GM)는 지난 화요일 관세로 인해 2분기 이익이 10억 달러(약 1조3700억 원) 감소했다고 발표했으며, 다음 분기에는 훨씬 더 큰 손실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크라이슬러와 지프를 소유한 스텔란티스도 이번 주 초 2025년 상반기에 27억 달러(약 3조7000억 원) 손실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역시 23일 관세 등의 영향으로 또다시 저조한 수익성과 매출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규제 신용 수익 감소, 차량 인도 감소, "고정 비용 흡수 감소 및 관세 인상으로 부분적으로 상쇄된 혼합 및 원자재 감소"로 인해 분기 수익성이 감소했다는 게 테슬라 측의 설명이다.
다른 주요 무역 파트너들이 자국 자동차 제조업체에 대한 더 나은 관세율 협상에 성공한다면 이러한 손실은 더욱 감당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23일 일본 자동차 회사인 토요타와 혼다의 주가가 거래 소식에 급등했으며,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의 주가도 비슷한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에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자동차 관세는 몇 달 동안 EU와 무역 협상에서도 걸림돌이 되어왔다. 독일은 대규모 자동차 제조 부문에 대한 예외를 얻기 위해 27개 회원국이 트럼프에게 큰 양보를 하도록 강력히 압박했다. 폭스바겐, BMW, 메르세데스 등 독일 자동차 기업들을 대표하는 독일 자동차 협회(VDA) 힐데가르트 뮐러 회장은 "우리 회사 비용은 이미 수십억 달러에 달하며 그 금액은 매일 증가하고 있다"며 "이전에 기능했던 공급망에 대한 피해는 엄청나며 더 이상 증가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4월과 5월에 미국으로의 수출이 두 자릿수 감소했다고 보고했으며, 스웨덴 자동차 회사인 볼보는 미국에서 일부 자동차 판매를 중단해야 했다.
지난봄 자동차 관세를 부과한 후 행정부는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에게 다른 무역 협상에서 '협상 카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시켰다고, 당시 백악관과 디트로이트 '빅3' 자동차 회사 간의 논의에 정통한 한 관계자가 폴리티코에 익명으로 전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산 자동차 10만 대에 한해 자동차 및 부품 관세를 10%로 낮추는 예외적인 영국 협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5월 8일 협상 조건을 발표하며 다른 나라들을 위해 "나는 자동차에 대한 거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롤스로이스와 같은 영국 자동차 브랜드에 대해서는 "매우 특별한 자동차이며 매우 제한된 수량"이라며 "수백만 대의 자동차를 만드는 거대 자동차 회사 중 하나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랜드로버와 같은 일부 영국 브랜드가 미국 SUV와 경쟁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무역 협상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익명을 전제로 한 백악관 관리는 23일에도 비슷한 발언을 하며 트럼프가 더 많은 국가에 대한 자동차 관세를 낮추는 데 동의할 것이라는 전망을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협상이다"라며 일본 기업들이 약속한 5500억 달러(약 754조 원)이 넘는 투자를 일본이 비교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일본에서는 난감한 상황에 놓인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관세보다 투자를 우선시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며 이번 협정을 환영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두 자릿수 관세율이 여전히 일본 제품에 타격을 준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결과에 대해 덜 낙관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 일본 경제산업성 차관인 테라자와 타츠야는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15%를 적용하면 일본은 목표로 했던 것을 얻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