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전성시대에 SUV 천하. 요즘 한국 자동차 시장 풍경은 명확하다. 모두가 전기 SUV만 찾는 듯한 이때, 인기와 담쌓고 외롭게 달리는 차들이 있다. 현대·기아의 강세 속에서 외국계 해치백, 왜건, 미니밴, 세단, 스포츠카 등이 도로의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대중에겐 왕따 차량(?) 취급받지만, 이번 커버스토리에 귀한 차들을 모셨다. 인기 없어서 더 특별한 다섯 언더독 차들의 웃픈 매력을 소개한다.
독일 해치백의 자존심 – 폭스바겐 골프
한국에서는 해치백이 “무덤” 소리를 들을 만큼 인기가 없다. SUV 선호로 인해 국산 해치백 현대 i30와 벨로스터가 결국 단종되고, 쉐보레 아베오와 르노 클리오마저 자취를 감췄다. 이런 척박한 땅에서 폭스바겐 골프는 꿋꿋이 버티는 희귀종이다. 글로벌 50년 역사의 아이콘인 골프도 한국에선 연 1200여 대 판매에 머물며 틈새 마니아층만 확보하고 있다. 가장 핵심은 “골프에 골프백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다. 하지만, 골프 GTI 같은 핫해치의 짜릿한 거동과 탄탄한 주행감은 아는 사람만 안다. 왜건의
왜건은 짐 많이 실리는 실용차지만, 한국에선 역시 “왜건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인기가 없다. 제네시스도 G70으로 시도했다 실패했으니 말 다했다. 그런 와중에 홀로 살아남아 꾸준히 팔리는 유일한 왜건이 있다. 바로 볼보 V60 크로스컨트리다. 세단과 SUV 사이 어딘가 위치한 이 북유럽 왜건은 낮고 긴 차체로 우아한 디자인과 안락한 승차감을 자랑한다. 모델체인지 없이 6년째 같은 얼굴이지만, 매년 평균 1000대 정도는 팔리며 그나마 비주류에서 주류를 자처한다. 짐차라는 편견을 달고 살지만, 세련된 스칸디나비아 감성, 안전 철학, 그리고 캠핑·차박족이 환호하는 넉넉한 적재공간(2열 폴딩 시 1441ℓ!)이 V60만의 매력 포인트다.
국내 미니밴 시장은 사실상 기아 카니발의 독무대다. 다른 제조사들은 하나둘 철수하고, “미니밴=카니발” 공식이 굳어진 상황. 그런데 토요타는 아랑곳 않고 시에나 하이브리드 미니밴을 들여왔다. 많이 팔리는 건 아니지만, 시에나는 국내 최초 하이브리드 미니밴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2.5L 가솔린+전기 모터 조합 덕에 공인 연비 14.5km/ℓ의 효율을 뽐내기도 한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승차감, 8인 가족도 거뜬한 3열 공간, 하이브리드 특유의 정숙함까지 “알 사람은 아는” 미덕이 한가득이다. 왕년의 세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전 세계 세단 시장을 주름잡던 혼다 어코드. 하지만 한국에선 최근 존재감이 미미했다. SUV 강세와 국산 세단에 밀려 판매가 뚝 떨어졌다. 신형 어코드는 세련된 디자인에 2모터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으로 힘과 효율 모두 잡은 중형 세단이다. 심지어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가 뽑은 ‘2024 올해의 하이브리드 세단’으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인기가 없는 이유를 찾기는 힘들다. 가격대가 쏘나타급인데 브랜드 인지도는 예전만 못하고, 일본차 불매 여파도 한몫했을 것이다. 다만, 정숙한 승차감, 탄탄한 내구성은 여전하니 “알뜰한 신사” 독자들이라면 한 번 눈여겨볼 만한 올드팬의 귀환이다.
마지막 주인공은 미국산 머슬카의 대명사, 포드 머스탱이다. 스포츠카라면 모두의 로망이지만, 한국 도로에선 보기 힘든 멸종위기종이다. 신형 7세대 머스탱이 2024년 9년 만에 등장했을 때 마니아들은 열광했지만, 대중적인 판매는 ‘역시나’였다. 지난해 판매량은 고작 240대에 그쳤다. 두 자릿수였던 해도 있으니 그나마 선방했달까. 왜 이렇게 안 팔리냐 묻는다면, 현실은 냉정하다. 문 두 짝짜리 쿠페에 거대한 V8 엔진(GT 모델 5.0ℓ 493마력!)이라니, 기름값 걱정·뒷좌석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머스탱은 스타일과 재미로 승부한다. 긴 보닛과 근육질 디자인, 굶주린 맹수처럼 포효하는 배기음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60년간 단 한 번도 단종 없이 전 세계 1000만 대 이상 판매된 머슬카 전설의 위용은 숫자와 무관하다. 한국의 20대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몇 안 되는 미국차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대중에겐 외면받아도, 도로 위 시선을 독차지하는 머스탱의 질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기차와 SUV에 모두가 열광하는 시대지만, 이처럼 대중의 관심 밖에서도 자기만의 길을 가는 차들이 있다. 해치백, 왜건, 미니밴, 세단, 스포츠카까지… 비인기 세그먼트라 손가락질받아도 각자의 매력을 포기하지 않는 그런 차. 이런 풍경은 미래 자율주행 시대가 되더라도 남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