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1906년 도요타 사키치가 발명한 원형 방직기가 나고야 산업기술 기념관 입구에 세워져 있다. 사진=육동윤 글로벌 이코노믹 기자
토요타의 발상지인 나고야 시 사코 지역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섬유 공장 건물이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1911년 창립된 토요타 방직(직기 제작) 공장의 사코 공장을 사용한 토요타 산업기술기념관은 1994년 토요타 창업주 도요다 키이치로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개관했다. 철근 콘크리트가 아닌, 메이지·다이쇼 시대의 붉은 벽돌 구조로 지어진 이 건물은 외관을 최대한 보존해 산업유산으로 복원됐으며, 그 처마 아래에 토요타의 탄생부터 오늘날까지의 기술 역사가 담겼다.
오전 일찍 숙소를 출발한 버스에서 내려 한적한 공업지대에 닿자, 입구에 커다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입간판에는 ‘トヨタ産業技術記念館(Toyota Commemorative Museum of Industry and Technology)’라고 한자·영문으로 적혀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짙은 적갈색 벽돌이 그늘을 뚫고 빛나고, 건물 양쪽으로는 일본 국기와 토요타 그룹 깃발이 꽂혀 있었다. 나무 울타리와 같은 낮은 벽을 따라 가까이 다가서면, 동글동글한 지붕과 3개의 풍차 모양 지붕이 연이어지는 모습이 마치 한때 먼 바다를 향하던 증기선 같기도 했다. 정면 계단에 올라서자 1911년부터 80여 년간 방직 공장으로 가동되었던 건축물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높다란 대형 문을 밀고 들어가자, 옅은 기계유 냄새와 함께 구식 공장의 유리창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었다. 사코 공장은 메이지 시대부터 산업의 기반인 방직업을 떠받들었는데, 이 박물관은 그 공장의 터를 활용해 도요타의 창업주들(토요다 사키치·키이치로 부자)이 짊어간 ‘만들기(모노즈쿠리)’ 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공간을 표방한다. 실제로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 기념관을 2007년 근대화 산업유산으로 등재하며, “제조업의 장인정신 역사에 대한 학습의 장”으로 평가했다. 벽돌 기둥 사이로 들어찬 전시관으로 첫 발을 들이자, 머릿속엔 자연스레 토요타의 로고와 함께 ‘끝없는 개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입구 로비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직기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크고 무겁게 생긴 이 기계는 도요타 창업주 사키치가 1906년에 세계 최초로 발명한 것으로,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실타래가 교체되도록 설계된 ‘꿈의 방직기’였다. 마치 거대한 뮤지컬 악기처럼 돌림판이 리드미컬하게 회전했을 것이고, 구동 기어와 베어링에서는 맴도는 굉음과 진동이 느껴졌을 것이다. 120년 전 탄생한 기계라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조금 더 들어가면 부지런한 모터 소리가 들린다. 구석에는 “1명의 작업자가 30∼50대를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홍보된 G형 자동직기 설명패널이 보였다. 실제로 이 G형 자동직기는 1924년 사키치가 완성한 혁신 기계로, 24개의 자동 보호장치를 통해 고속 운전 중에도 실이 끊어지지 않고 연속 직조가 가능했다.
전시장 한쪽에서는 기념관 직원이 G형 자동직기를 직접 시연 중이었다. 엔진이 윙윙 돌며 100여개의 북(shuttle)이 정확한 타이밍에 자리를 잡아가고, 실이 떨어지자마자 검은 천 조각이 자동으로 걸려 기계가 멈췄다. 여기서 실이 끊어지면 기계가 자동 정지해 불량률을 낮추도록 설계했다는 해설이 이어졌다. 100년 전 기술이 눈앞에서 매끄럽게 작동되는 모습에 관람객 모두 숨을 죽였다.
전시실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여러 대의 옛 자동직기가 소란스레 배치돼 있다. 구동축에서 전해오는 미세한 진동이 발끝까지 전해졌고, 쿵쿵 소음이 긴박감을 더했다. 한 대의 목제 손직기가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동안 다른 자동직기는 삐걱이는 실 한 올에도 즉시 기계가 멈추도록 설계돼 있어, 불량 실이 나오면 작업자가 조치를 취할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다. 땀 냄새 대신, 고소하고 새콤한 섬유 냄새가 풍기는 듯해 오래된 공장에 들어선 듯 현실감 마저 느껴졌다.
섬유기계관은 이름 그대로 토요타의 모태인 방직기계 역사를 세밀히 소개한다. 약 100여 대의 방직기 중에서도 G형 자동직기는 대표 전시물로 특히 강조된다. 기자는 실제로 현장 시연을 통해 “실이 떨어지면 새 실통이 자동으로 공급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경험은 ‘토요타의 첫걸음이 바로 이 방직기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직조기의 울림을 뒤로하고 1층 자동차관으로 내려가자 마치 공장 내부 같은 공간이 펼쳐졌다. 1930년대 토요타의 철강 테스트 센터가 원형 그대로 복원되어 있고, 주변에는 1936년형 AA형 최초 승용차와 1955년형 크라운 등 토요타 올드카 20여 대가 전시되어 있다. 시공간을 넘는 듯 유선형 차체를 가까이 보니 당시 엔지니어들이 나무틀에 철판을 두드려 완성한 역사가 떠올랐다. 도요타 자동차 창업자 키이치로는 원래 방직기술자였지만, 영국 출장 중 거리마다 늘어선 자동차 행렬을 보고 ‘가능성’을 확신했다고 한다.
귀국 후 G형 직기 특허를 영국 플랫사에 매각해 마련한 100만 엔으로 자동차 연구에 돌입했는데, 당시의 기념비적 결단이 이 전시의 바탕이다. 자동차관 한편에는 토요타 생산방식을 경험할 수 있는 축소 모형이 마련돼 있다. 기자는 주조·단조·용접·도장·조립 과정을 모형으로 보여주는 컨베이어 시스템을 눈으로 따라가며 감탄했다.
견학을 마치며 돌아보니, 도요타 기념관은 단순한 박물관을 넘어 ‘제조업의 정신’을 기리는 배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요타 관계자는 “이곳은 제조업의 역사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배움의 박물관”이며 “제품 제조의 장인정신 역사에 대한 학습의 장”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전시 전체가 사키치의 발명가 정신과 키이치로의 도전정신, 그리고 ‘끝없이 개선하는 모노즈쿠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견학 중 기자는 기념관 곳곳에 새겨진 “손으로 만드는 값어치”를 발견했다. 오래된 철판에 쾅쾅 망치질하던 초기 자동차 제작 과정에서부터, 단 한 올의 불량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직기 설계까지, 모든 전시에는 ‘정성을 담아 만드는 일’의 가치가 숨 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