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의 미국 시장 여정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1949년, 네덜란드 사업가 벤 폰(Ben Pon)이 폭스바겐 타입 1, 즉 '비틀(Beetle)' 두 대를 싣고 뉴욕에 발을 디뎠다. 당시 누구도 몰랐지만, 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작은 차가 폭스바겐과 미국 간의 70년이 넘는 관계를 시작한 것이다. 이 관계는 미국인들이 자동차를 생각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1955년, 폭스바겐 오브 아메리카가 뉴저지에서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불과 1년 만에 5만 대의 비틀이 미국 도로를 달렸다.
당시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은 크기, 크롬 장식, 그리고 V8 엔진의 힘에 집착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비틀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작고, 효율적이며, 이상하게 매력적이었다. 비틀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듯한 아웃사이더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미국은 그 반항적인 매력을 좋아했다.
폭스바겐은 단순히 자동차만 판 것이 아니다. 그들은 태도를 팔았다. 1950년대 후반, 폭스바겐은 광고 대행사 도일 데인 번바흐(Doyle Dane Bernbach)와 손잡았다. 그들은 자동차 광고라는 아이디어 자체를 조롱하기로 결정했다. 이 전략은 업계를 뒤집어 놓은 두 단어를 탄생시켰다. "작게 생각하라(Think Small)."
다른 모든 경쟁사들이 크기와 힘을 외칠 때, 폭스바겐은 짧고, 재치 있으며, 스스로를 잘 아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1960년까지 판매량은 16만7000 대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폭스바겐은 수입차 시장의 32%를 차지하는 거물로 성장했다. 1970년에는 미국의 연간 판매량이 56만9000 대에 달했다. 비틀과 마이크로버스(Microbus)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문화적 필수품으로 변모했다.
비틀은 1972년 포드 모델 T의 판매 기록을 추월하며 전 세계적으로 2150만 대 이상 팔렸다. 이 차는 자유, 반항, 개성을 상징하는, 반체제 시대를 위한 완벽한 자동차였다. 마이크로버스 역시 뒤처지지 않았다. 이는 길고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선택하는 상징적인 차량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1998년, 뉴 비틀(New Beetle)이 등장하며 그 장난기 넘치는 정신을 새로운 세대에 불어넣었다. 오늘날에는 순수 전기차인 ID. 버즈(ID. Buzz)가 그 DNA를 이어받아 EV 시대를 달리고 있다. 이 차는 올해의 북미 유틸리티 차량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는 플러그를 꽂아도 향수는 여전히 강력한 판매 동력임을 증명했다.
이어 등장한 것은 골프(Golf), 즉 미국인들이 처음 알았던 래빗(Rabbit)이었다. 1975년 폭스바겐의 첫 번째 미국 제작 모델로 출시된 이 차는 재미있고 실용적인 해치백이라는 개념을 거의 발명했다. 특히 GTI 모델은 '핫 해치'라는 컬트적인 운동을 만들어냈다. 이 차는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모방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골프는 7세대(Mk7) 모델이 MotorTrend의 올해의 차와 북미 올해의 차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업계 상을 휩쓸 정도로 성공했다.
그리고 1979년에 출시된 제타(Jetta)도 빼놓을 수 없다. 본질적으로는 '수트를 입은 골프' 같은 존재였다. 제타는 좀 더 어른스러운 실용성과 골프와 같은 탄탄한 핸들링을 제공했다. 80년대 초반에는 미국에서 폭스바겐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는 유럽 가격표 없이도 유럽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증거였다.
폭스바겐이 미국에서 보낸 70년의 시간은 자동차 시장 자체의 변화를 반영한다. 작고 단순한 것에서 강력함을 거쳐, 이제는 전기차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비틀이 모든 것을 시작했지만, 이제 ID.4와 ID. 버즈가 더 깨끗하고 조용한 미래를 향한 횃불을 들고 있다. 그들의 사명은 70년 전과 동일하다. 그것은 바로 모두를 위한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다. 단지 이제는 엔진의 포효 대신, 부드러운 전기 모터의 윙윙거리는 흥얼거림이 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