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도로 위를 지배하는 것은 압도적인 크기의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과 픽업트럭이지만, 자동차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은 크기가 아닌 효율성과 독창성으로 승부한 작은 차들이 장식했다.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경제적 필요와 기술적 도전에 응답하여 각 브랜드의 개성이 담긴 가장 작은 모델들을 선보였다.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한 시대의 문화와 생활 방식을 반영하는 미니멀리즘의 걸작들을 알아본다.
경제적 격변기가 낳은 '마이크로카' 전성시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자원이 부족하고 대중에게 저렴한 개인 이동 수단이 절실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스쿠터 엔진을 활용한 초소형 자동차, 즉 마이크로카(Microcar)의 전성기를 열었다.
항공기 제조사였던 BMW는 전후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1950년대 초, BMW는 이탈리아 이소(Iso)의 라이선스를 얻어 이세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세타는 버블카(Bubble Car)라는 별명처럼 둥근 모양을 가졌으며, 냉장고처럼 차량 앞문이 통째로 열리는 독특한 구조가 특징이었다. 작은 단기통 오토바이 엔진을 사용했지만, 전후 경제 회복기에 대중의 발이 되어주며 BMW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7년에 출시된 피아트 500 누오바는 이탈리아의 경제 기적과 '돌체 비타(La Dolce Vita, 달콤한 인생)'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전작인 토폴리노(Topolino)의 뒤를 이어 저렴하고 실용적인 소형차의 기준을 제시했다. 배기량은 500cc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좁은 골목길을 누비는 귀여운 디자인과 효율성으로 이탈리아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필 엔지니어링(Peel Engineering)이라는 영국의 작은 제조사에서 만든 이 차는 '가장 작은 양산차'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어 있다. 단 한 사람과 장바구니 하나를 위한 크기로 설계되었다. 가벼운 무게 덕분에 후면 손잡이를 이용해 운전자가 직접 차를 끌어 이동시킬 수 있을 정도로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줬다.
규격이 만든 혁신, 일본의 '경차' 유산
일본은 세금 및 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독자적인 경차 규격(Kei Car) 시스템 덕분에 일찍부터 초소형 자동차 개발에 집중했다. 이는 일본 제조사들이 작지만 혁신적인 모델을 끊임없이 내놓는 계기가 되었다.
혼다가 오토바이 제조사를 넘어 자동차 제조사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해준 모델이다. 1967년에 출시된 N360은 360cc급 공랭식 2기통 엔진을 사용했다.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주행 성능과 품질을 인정받으며, 이후 혼다의 간판 모델인 시빅(Civic) 개발의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