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간 재규어의 얼굴이었던 점프하는 리퍼(Leaper)와 유려한 필기체 로고의 실종이었다. 대신 ‘JaGUar’라는 대소문자 혼합 서체가 정중앙에 놓였고, 아래에는 창업자 윌리엄 라이언즈(Sir William Lyons)의 철학이 담긴 문장이 간결하게 자리했다.
“A Jaguar should be a copy of nothing.”
이 문장은 "Copy Nothing"이라는 날카로운 슬로건으로 재탄생했다. 재규어는 더이상 과거의 영광을 모방하거나, 타인의 성공 방식을 따라가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브랜드 디자인 총괄 마이크 심슨은 이번 변화를 ‘Exuberant Modernism(대담한 모더니즘)’이라 명명했다. 영국식 품격이라는 전통적 틀을 과감히 깨고, 예술적 실험성과 직관적인 시각 언어를 전면에 내세운다.
차체 디테일에는 대칭형 ‘J’와 ‘r’ 모노그램이 반복적으로 새겨지고, ‘딜리트 오디너리(Delete Ordinary, 평범함을 거부한다)’를 형상화한 스트라이크스루(Strike-through) 라인이 더해진다. 이 디자인 철학은 차세대 전기 GT ‘타입 00(Type 00)’의 차체 비율부터 향후 전용 스토어 인테리어, 고객 경험 디자인까지 모든 접점에 적용된다.
2024년 말, 재규어는 내연기관 시대와의 결별을 공식화했다. 2026년 첫 순수전기 럭셔리 2도어 GT 쿠페 ‘Type 00’을 시작으로, 모든 라인업을 EV로만 구성한다. Type 00은 길이 4.8m, 휠베이스 2.9m, 100kWh급 배터리, 800V 초급속 충전, 0→100km/h 3.5초를 기록하며 포르쉐 타이칸과 맞붙는다.
리브랜딩 직후 자동차 커뮤니티는 “리퍼를 버린 건 배신”이라는 비판과 “전략적 도박”이라는 평가로 갈렸다. 영국 내 딜러 수를 80곳에서 20곳으로 줄이는 대신, 남은 거점은 ‘전시회 같은’ 경험 공간으로 재편했다. 이는 단기 판매보다 브랜드 가치와 충성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포르쉐가 스포츠성을, 아우디가 효율성을, 루시드가 최장 주행거리를 내세운다면 재규어는 ‘디자인 서사’와 ‘유럽 감성’을 무기로 한다. 롤스로이스·벤틀리·애스턴마틴처럼 ‘판매량보다 수익성’ 전략을 EV 시대에 적용하는 셈이다.
강점은 ‘영국’이라는 문화 자본과 감성 주행의 전통이다. 약점은 축소된 판매 채널과 단일 모델 중심 초기 전략의 한계. 이번 리브랜딩은 로고 교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영국 럭셔리의 헤리티지, 내연기관의 유산,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언어를 결합한 DNA 실험이다. Type 00이 성공한다면 재규어는 다시 ‘전설’로 돌아올 것이고, 실패한다면 존속 여부를 가를 위험한 베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