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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조용한 반격, 혼다의 전기화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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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조용한 반격, 혼다의 전기화 역습

ASIMO의 유전자부터 F1 하이브리드, 그리고 하늘을 나는 EV까지

육동윤 기자

기사입력 : 2025-07-18 08:01

혼다 프롤로그 사진=혼다이미지 확대보기
혼다 프롤로그 사진=혼다
“혼다는 느리지만, 한 번 내놓으면 다 바꾼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조금 더 긴 호흡이 필요하다. 엔진의 왕국이자 바이크의 제왕, 그리고 로봇의 선구자였던 혼다는 지금 전기차 시대를 맞아 다소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움직이고 있다. 혼다의 전기화 전략은 배터리, 로봇, 항공, 그리고 모터스포츠까지 연결돼 있다. 이 다면적인 전략이야말로, 지금 이 브랜드를 다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혼다는 2040년까지 글로벌 승용 라인업의 100% 전동화를 목표로 한다. 계획은 세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GM과의 협업이다. 얼티엄 배터리와 플랫폼을 공유해 북미 시장에 ‘프롤로그(Prologue)’와 ‘ZDX’를 선보인다. 이들 모델은 혼다 브랜드로는 생소한 전기 SUV지만, 가격과 충전 효율, 실내 공간 활용에서 이미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고 있다.

혼다 전동화 플랫폼 사진=혼다이미지 확대보기
혼다 전동화 플랫폼 사진=혼다

두 번째 단계는 혼다 자체의 전기차 플랫폼 ‘e:nArchitecture’다. 2026년 출시 예정인 이 플랫폼은 800V 고전압 충전 시스템과 고체전지 호환성을 갖춘 것이 핵심이다. 혼다는 현재 도쿄 R&D센터에 430억 엔을 투입해 차세대 4680 규격 원통형 전지와 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구축 중이다. 세 번째 단계는 본격적인 양산 체제로의 전환이다. 2030년까지 연간 200만 대 전기차를 생산하고, 배터리 내제화율을 50%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 목표다.

이 같은 계획은 중국과 인도에서도 동시에 진행된다. 중국에서는 ‘e:N’ 시리즈 10종이 광치 혼다(广汽本田, Guangqi Honda)를 통해 출시되며, 인도에선 3만 달러 미만의 경형 EV를 준비 중이다. 브랜드는 글로벌 하지만, 전략은 지역 맞춤형이다.

2025 비자 캐시 앱 레이싱 불스 F1 팀 VCARB 02(Visa Cash App Racing Bulls F1 Team VCARB 02) 사진=혼다이미지 확대보기
2025 비자 캐시 앱 레이싱 불스 F1 팀 VCARB 02(Visa Cash App Racing Bulls F1 Team VCARB 02) 사진=혼다

혼다의 전동화 전략은 모터스포츠와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F1이다. 2021년 레드불의 파워 유닛 공급사로 드라이버 챔피언을 이끈 혼다는 이후 잠시 철수했다가, 2026년부터 ‘혼다 레드불 파워트레인’이라는 이름으로 복귀를 선언했다. 1.6리터 V6 하이브리드 엔진에 350kW 전기 모터가 결합되는 차세대 파워트레인이다.

혼다는 이 레이스 데이터를 양산차에 적극 활용한다. 예컨대 회생제동 로직, 배터리 열관리 시스템, 고전압 인버터의 반응속도 등은 모두 F1 기술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MotoGP에선 HRC가 21회의 제조사 챔피언을 거머쥐었고, 미국의 인디카 시리즈에서는 하이브리드 터보 엔진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혼다의 모터스포츠는 기술 개발의 첨병이다. 모든 실험은 서킷에서 먼저 일어나고, 그 결과는 공도 위에서 구현된다.

혼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 사진=혼다이미지 확대보기
혼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 사진=혼다

혼다는 로봇에서도 전설 같은 존재다. 2000년대 초반 공개된 인간형 로봇 ‘ASIMO’는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이후 ASIMO는 프로젝트 종료 수순을 밟았지만, 그 기술은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 혼다는 이를 바탕으로 세 가지 로봇 라인업을 가다듬고 있다. 하나는 사람처럼 걷고 물건을 나르는 휴머노이드 로봇이고, 또 하나는 XR 헤드셋으로 조작하는 원격 정비용 로봇, 그리고 마지막은 퍼스널 모빌리티로 쓰이는 전동 스툴이다. 이들 모두는 자율주행, 동작 예측, 균형제어 기술이 접목되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 기술들이 자동차에도 동일하게 쓰인다는 것이다. 즉, 혼다의 자율주행 알고리즘과 센서 융합 기술은 로봇에서 자동차로, 다시 모빌리티 전체로 확장된다.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가 로봇이 된 셈이다.

혼다 eVOLT 사진=혼다이미지 확대보기
혼다 eVOLT 사진=혼다

혼다는 ‘도로 위’ 전기차에서 멈추지 않는다. 하늘을 나는 모빌리티, 즉 eVTOL(전동 수직이착륙기)과 UAM(Urban Air Mobility) 분야에서도 주목받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21년 CES에서 최초로 공개한 eVTOL 콘셉트는 복합 동력체 기반이다. 배터리와 터빈 제너레이터가 함께 탑재돼, 비행시간은 100km 이상으로 기존 eVTOL보다 두 배 이상 길다. 혼다는 이 기술을 상용화 대상으로 개발 중이며, 미국 내 FAA(연방항공청) 인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에 혼다는 로켓 기술도 보유 중이다. 일본 내에서 위성 발사용 로켓 개발을 병행하며, 향후 소형 위성 플랫폼까지 확장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치고 있다.

여기서도 전기와 자율 기술이 접목된다. 조종사 없는 무인비행, 자동 착륙 기술, 배터리 충전 및 관리 솔루션 등이 혼다의 기존 모빌리티 자산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단순한 비행기가 아니라, 이동의 확장으로 기능하는 혼다식 접근법이다.

한국 시장에서 혼다는 아직까지 전기차의 존재감이 크지 않다. 2024년 기준 국내에서 판매 중인 전기차는 사실상 없고, 대부분 하이브리드 모델 위주다. 하지만 혼다는 조만간 국내에도 EV 모델을 본격 투입할 계획이다. 기대되는 모델로는 북미형 SUV 전기차 ‘프로로그’와 일본 경차 규격을 따르는 ‘N-Van EV’가 있다. 여기에 자체 e:n Architecture 기반 모델과 이륜 전기 모빌리티까지 선보일 가능성이 있다.

혼다 PCX 일렉트릭 사진=혼다이미지 확대보기
혼다 PCX 일렉트릭 사진=혼다

특히 이륜차 시장에서 혼다는 여전히 강세다. PCX 일렉트릭과 EM1 e: 등의 모델이 해외 시장에서 판매 중이며, 전기 배터리 스와핑(교환) 네트워크도 일본과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확산 중이다. 혼다의 이러한 전략이 한국 이륜차 시장과 어떻게 맞물릴지 주목된다.

혼다는 가끔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만 봤을 때다. 내부 기술 축적 속도, 융합 수준, 그리고 미래에 대한 투자와 실행력을 보면, 혼다는 꽤나 공격적인 브랜드다. 단지 ‘섹시하게’ 포장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은 로봇으로 걷는 법을 익히고, 모터스포츠로 달리는 법을 완성한 뒤, 이제 하늘을 나는 기술까지 연결하고 있다. 혼다의 전기차 전략은 이 모든 것의 총합이다. 오늘 도로 위의 모습만 보고 그들의 미래를 단정짓기엔, 혼다는 아직도 너무 많은 무기를 숨기고 있다.


육동윤 글로벌모빌리티 기자 ydy33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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