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를 타고 이런 운전을 해도 되는 걸까? 서울 도심을 빠져나와 와인딩이 시작되자 카이엔 GTS는 본색을 드러낸다. 처음엔 '조금 빠른 SUV'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주행모드를 스포츠 플러스로 바꾸면 다른 세계에 있는 물건이 된다. SUV라는 형식을 빌렸을 뿐, 그 안에 담긴 본질은 '진짜 포르쉐', 조금 과장하자면 ‘진짜 드라이빙 머신’이 된다.
도로에 처음 올라섰을 때의 인상은 고요함보다는 긴장감이다. 시동 걸자마자 울리는 V8 배기음은 낮고 깊다. 엔진은 4.0리터 V8 트윈터보다. 최고출력 500마력, 최대토크 67.3kg·m. 숫자만 보면 카이엔 터보보단 낮지만, GTS는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다. 회전계가 3000rpm을 넘기면 엔진 사운드는 변한다. 차분한 토크에서 고회전 엔진의 울부짖음으로. 억눌려 있던 스로틀 반응은 풀려나듯, 매끄러우면서도 날카롭게 변했다.
기어는 8단 자동. 변속은 빠르지만, 마냥 부드럽지는 않다. 의도적으로 약간의 기계감을 남긴 듯한 느낌이다. 특히 다운시프트에서 들려오는 ‘뻐억’ 하는 배기음은 마치 스포츠카를 타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뒷좌석에는 탑승자가 있었지만, 가속을 시작한 순간 그런 건 의식되지 않는다. 엔진을 고회전으로 밀어붙이고, 코너에서는 패들시프트로 수동 변속을 즐길 수 있다. ‘SUV도 이런 맛이 있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코너에 들어서면 GTS는 차체 크기를 잊게 만든다. 저중심 세팅, 단단한 에어 서스펜션, 그리고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가 기본으로 제공하는 PASM(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의 조합은 묵직하면서도 빠르게 반응한다. 2톤이 넘는 차체가 코너에서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중심을 유지할 때, 가장 놀라운 건 그 움직임이 불안하지 않다는 점이다.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만 정확하게 반응하고, 딱 거기서 그친다. 지나치게 민감하지도 않고, 과하게 관여하지도 않는다. 포르쉐라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감각이다.
브레이크는 GTS만의 또 하나의 자부심이다. 처음엔 다소 무겁고 둔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고속주행에서의 리니어함은 감탄 그 자체다. 페달 깊이에 따라 정확하게 제동력이 조절되고, 반복적인 고속 감속 상황에서도 밀림 없이 신뢰를 준다.
실내로 들어가 보면, 시승차는 GTS 전용 시트와 알칸타라 마감재가 적용돼 있었다. 블랙 인테리어에 레드 스티치, 붉은 안전벨트는 시각적으로 ‘GTS’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센터 콘솔과 디지털 클러스터는 최근 포르쉐 전반의 인터페이스와 동일하지만, 조작감은 여전히 물리적인 느낌이 남아 있다. 조수석까지 적용된 두 개의 디스플레이도 변화 중 하나다. 스티어링 휠 좌측의 드라이브 모드 다이얼은 간단한 조작으로 스포츠 플러스까지 변환할 수 있어 직관적이다.
다만 연비는 타협이 불가능하다. 시내 주행에서 평균 5.5km/L, 와인딩 포함 주행에서는 4km/L대도 나왔다. 물론 이 차를 선택하는 데 있어 연비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다. 기본 가격은 약 1억7000만 원부터 시작되며, 시승차 기준 옵션이 더해지면 2억 원은 가볍게 넘긴다.
시승 후 생각한 건, ‘정제된 폭력성’? 포르쉐 카이엔 GTS는 감성적으로 다듬어진 스포츠카의 논리와, 실용적으로 설계된 SUV의 필요가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차를 이해하게 된다. 빠르다고 좋은 게 아니고, 비싸다고 감동적인 것도 아니며, 예뻐서 끌리는 것도 아니다. 카이엔 GTS는 그 모든 편견을 지우고, 운전자가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운전 그 자체'의 SUV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