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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실록 : 체로키뎐] 노을의 위로, 골목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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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실록 : 체로키뎐] 노을의 위로, 골목의 지혜

‘라운지’가 되는 대형 SUV…낙조 속 정숙함과 눈비 내린 골목에서 드러난 세밀한 술책

육동윤 기자

기사입력 : 2026-01-08 10:10

스텔란티스코리아가 제공한 지프 그랜드 체로키를 10일간 장기 시승하며 기록한 ‘시승실록’ 연재다. 단발성 시승기 대신, 하루의 장면과 감각을 옛 기록 문체로 남겨 차량의 성격을 입체적으로 담고자 했다. 이번 회차는 7·8일차 기록으로, 노을 아래에서 드러난 그랜드 체로키의 ‘정서적 가치’와 좁은 골목·미끄러운 비탈길에서 확인한 ‘세밀한 기술’을 한 편으로 엮었다. 편집자주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AI 편집 이미지) 사진=스텔란티스코리아이미지 확대보기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AI 편집 이미지) 사진=스텔란티스코리아

제7장. 낙조묵상(落照默상) — 노을 아래 머무니 마음이 이리도 평온한가

행군 이레째 되는 날, 고된 일과를 마치고 성문(城門)을 나설 무렵 서산마루에는 붉은 노을이 타오르고 있었다. 어제 광야에서 사투를 벌이던 기개는 잠시 접어두고, 오늘은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고요한 라운지가 되어 나를 맞이하니 그 변모가 가히 무쌍하다.

기함의 내실에 몸을 깊숙이 파묻자, 하루의 피로가 켜켜이 쌓인 어깨 위로 따스한 온기가 스며든다. 스티어링 휠 열선을 가동하니 차가웠던 손바닥이 이내 온화해지고, 팔레르모 가죽 시트는 마치 오랜 벗의 품처럼 안락하게 나를 감싸 안는다. 붉게 물든 낙조가 전면 유리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와 실내의 리얼 우드 트림을 비출 때, 그 나뭇결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시각적 풍요로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

막히는 도심의 길 위에서 가다 서기를 반복함에도 조급함이 일지 않는 것은, 이 공간이 주는 심리적 격조 덕분이다. 창밖의 소음은 여전히 완벽히 차단되어 있고, 매킨토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나직한 현악의 선율은 차 안을 하나의 독립된 소우주로 만든다. 앰비언트 라이트가 은은하게 실내를 밝히기 시작하면, 그랜드 체로키는 이동 수단을 넘어 사색과 묵상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노을이 지고 어둠이 깔릴 때쯤, 기함의 헤드램프가 길 위를 부드럽게 밝히며 귀가 길을 인도한다. 화려하고 번잡한 세상 속에서 오로지 나만의 속도와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이 기함이 선사하는 가장 우아한 사치가 아닐 수 없다.

거대한 체구 속에 이토록 섬세한 위로를 품고 있음에 감복하며, 평온한 마음으로 일곱째 날의 기록을 맺는다. 내일은 눈길과 좁은 골목이라는 또 다른 시련 앞에, 이 거구가 어떤 세밀한 지혜로 헤쳐 나가는지를 살피려 한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인테리어 (AI 편집 이미지) 사진=스텔란티스코리아이미지 확대보기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인테리어 (AI 편집 이미지) 사진=스텔란티스코리아

제8장. 세밀(細密) — 좁은 길의 지혜, 큰 몸으로 바늘귀를 통과하다

행군 여드레째,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흩날리며 길바닥이 살얼음판처럼 변모하였다. 오늘은 이 거대한 강철마를 몰고 성안의 비좁은 골목과 가파른 비탈길을 마주하였으니, 이는 흡사 거구의 장수가 좁은 골방에서 검무(劍舞)를 추는 것과 같이 어려운 시험이라 하겠다.

기함의 풍채가 워낙 웅장하여 처음에는 좁은 길목에 들어서는 것이 저어되었으나, 이내 기함이 발휘하는 '세밀한 술책'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방에 배치된 밝은 눈(360도 서라운드 뷰)이 기함 주변의 형세를 한 치의 오차 없이 거울(디스플레이)에 비춰주니, 운전자는 마치 공중에서 자신의 발걸음을 내려다보듯 여유롭게 길을 읽을 수 있었다. 담벼락에 바짝 붙은 장애물이나 보이지 않는 곳의 돌부리조차 이 영민한 감지기 앞에서는 숨을 곳이 없었다.

더욱 기특한 것은 그 조향(操向)의 유연함이다. 몸집이 크면 둔할 것이라는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스티어링 휠을 돌릴 때마다 기함의 앞머리는 영특한 사냥개처럼 기민하게 방향을 틀었다. 좁은 회차 구간에서도 단번에 몸을 돌려 빠져나가니, 그 유연함은 가히 거구의 몸 속에 깃든 무용수의 몸놀림이라 할 만했다.

또한 진눈깨비로 미끄러운 비탈길을 오를 때, 사륜구동 시스템은 어느 한 바퀴도 허투루 굴리지 않고 지면을 끈덕지게 움켜쥐었다. 바퀴가 헛돌려는 찰나의 순간마다 힘을 조율하여 차체를 밀어 올리니, 운전자의 손바닥에는 식은땀 대신 평온함이 고였다. 사이드미러에 서린 습기를 빠르게 걷어내는 열선의 재주 또한 사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배려였다.

큰 몸집을 가졌으되 그 쓰임은 바늘 끝처럼 세밀하고, 강한 힘을 가졌으되 그 움직임은 비단처럼 부드러웠다. 이렇듯 대(大)와 소(小)를 자유자재로 다스리는 기함의 지혜에 감복하며 여덟째 날의 기록을 마친다. 내일은 이 열흘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기 전, 이 명마가 소모하는 양식과 그 효율의 근본을 따져보는 '근본'의 기록을 남기려 한다.


육동윤 글로벌모빌리티 기자 ydy33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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