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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과열되는 한국 픽업시장…실용과 감성 사이에서 경쟁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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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과열되는 한국 픽업시장…실용과 감성 사이에서 경쟁 본격화

국산이 볼륨을 키우고, 수입이 캐릭터로 파고든다… ‘트럭의 전동화’가 판을 흔든다

육동윤 기자

기사입력 : 2025-12-31 09:05

KGM 무쏘 사진=KG 모빌리티이미지 확대보기
KGM 무쏘 사진=KG 모빌리티
한때 한국 시장에서 픽업트럭은 철저한 비주류였다. 농·임업이나 건설 현장을 위한 ‘일하는 차’로 인식됐고, 승용차 시장의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국산 완성차 브랜드와 글로벌 제조사들이 앞다퉈 신형 픽업을 예고·투입하며, 픽업은 더이상 틈새가 아닌 ‘확장 중인 장르’로 재정의되고 있다.

숫자부터 달라졌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기준 국내 완성차 5사의 픽업 판매량은 2019년 4만2619대에서 2024년 1만3475대까지 줄며 장기 하락세를 탔다. 하지만 2025년 들어 반등 조짐이 뚜렷하다. 올해 1~11월 신규 등록 픽업은 2만3495대로 집계돼, 이미 지난해 연간 판매를 크게 넘어섰다.

줄어든 시장이 다시 달아오른 이유

픽업 시장이 한동안 꺾였던 배경은 단순했다. 선택지가 적었다. 모델이 줄면 수요도 줄었다. 그런데 지금은 ‘신차 효과’가 시장을 흔들고 있다. 출시 주기가 짧아지고, 디자인과 상품성이 SUV 수준으로 끌어올려 지면서 픽업은 “일만 하는 차”에서 “일상도 가능한 차”로 이동했다. 적재 능력만 보던 소비자들이 주행 질감·실내 완성도·브랜드 감성까지 함께 따지는 흐름도 시장을 가열시킨다.

기아 타스만 사진=기아이미지 확대보기
기아 타스만 사진=기아

판매량으로 증명한 국산 픽업의 존재감

국산 픽업은 여전히 한국 시장의 중심축이다. 시장이 위축됐던 시기에도 국내 판매의 대부분은 국산 볼륨 모델이 받쳤다. 픽업이 ‘마니아 전용’이 아니라는 점을 판매량으로 증명한 셈이다. 사업용과 레저용, 패밀리 세컨드카 수요가 겹치면서 국산 픽업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가 됐다. 정비·유지비·전국 서비스망이라는 실용의 3요소는 여전히 구매 결정의 핵심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신형 경쟁자까지 합류하며 국산 픽업의 존재감은 한층 더 커졌다. 초기 계약이 빠르게 쌓이는 신차가 등장하면, “픽업은 안 팔린다”는 고정관념부터 먼저 깨진다.

국내 유일한 수입 디젤 트럭, 포드 레인저 사진=포드이미지 확대보기
국내 유일한 수입 디젤 트럭, 포드 레인저 사진=포드

수입 픽업, ‘실용’보다 ‘정체성’으로 승부

국산 픽업이 가격·서비스 접근성으로 저변을 넓힌다면, 수입 픽업은 확실한 캐릭터로 파고든다. 쉐보레의 콜로라도, 포드의 레인저 같은 차들이 있다. 미국식 중형 픽업 문법을 앞세운 모델은 ‘크기·견인·존재감’ 자체가 상품이다. 글로벌 베스트셀러를 들여온 브랜드는 균형 잡힌 주행 감각과 트림 다양성으로 “픽업도 일상으로”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반면 오프로드 아이콘 성격의 모델은 판매량보다 상징성에 가깝다. 지프의 글래디에이터를 예로 들 수 있다. 실용성보다 브랜드 정체성과 감성적 만족이 구매 이유가 된다.

수입 픽업은 결국 “필요해서”라기보다 “원해서” 선택되는 영역을 넓히며 시장을 다층화한다.

포터 디젤 퇴장 이후, 트럭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변수가 하나 있다. 픽업 시장의 체감 온도는 픽업 자체의 신차 경쟁만으로 올라간 게 아니다. 트럭 전반의 ‘동력원 전환’이 소비자 인식을 흔들고 있다.

현대차는 2024년형 포터 II를 내놓으면서 디젤 대신 LPG 터보 엔진을 적용했고, 디젤은 단종됐다. 2026년형 포터 II 역시 LPG 모델 중심으로 상품성을 보강해 출시했다. 이 흐름은 “트럭=디젤”이라는 오랜 상식을 약화시킨다. 전기 상용차가 늘고, 디젤이 빠지면서 트럭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연료비’에서 ‘총소유비용(TCO)·충전/충전대기·운행패턴’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변화는 픽업 시장에도 영향을 준다. 전통적인 1톤 트럭이 전동화·대체연료로 이동하면, 픽업은 ‘일하는 차’의 일부 기능을 흡수하면서도 SUV처럼 쓰는 생활 영역을 넓힌다. 결과적으로 트럭 시장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고, 픽업이 “특수차”가 아니라 “선택지”로 올라오는 속도가 빨라진다.

테슬라 사이버트럭 사진=테슬라이미지 확대보기
테슬라 사이버트럭 사진=테슬라

픽업을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적재 능력과 견인력이 전부였다. 지금은 다르다. 픽업이 주말 레저용이자 평일 출퇴근 차량으로 쓰이면서, 승용차 수준의 정숙성과 편의 사양이 요구된다. 제조사들이 대형 디스플레이, 운전자 보조 시스템, 고급 소재를 픽업에 적극적으로 올리는 이유다. 픽업이라는 차급이 더 이상 ‘타협의 선택’이 아니라 목적이 분명한 ‘의도된 선택’으로 이동하고 있다.

과열 국면의 결말은 ‘현실’이 가른다

한국 픽업시장은 분명 과열 단계에 진입했다. 국산 브랜드는 판매량과 가격 경쟁력으로 볼륨을 키우고, 수입 브랜드는 개성과 감성으로 틈새를 공략한다. 단기적으로는 신차 효과로 경쟁이 격화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실제 사용성과 유지비, 서비스 경험, 중고차 잔존가치 같은 ‘현실 지표’가 시장 재편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픽업트럭은 이제 단순히 짐을 싣는 차가 아니다.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했는지, 어떤 브랜드의 철학에 기대는지를 드러내는 이동 수단으로 변모하고 있다. 트럭의 전동화가 촉발한 인식 변화 위에서, 한국 픽업시장은 더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다.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dy33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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