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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차는 노키아의 길을 걷고 있다".. 벤츠·폭스바겐 옥죄는 '오만함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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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차는 노키아의 길을 걷고 있다".. 벤츠·폭스바겐 옥죄는 '오만함의 대가'

시티매거진 진단.. 글로벌 경쟁 심화·전략적 오판·고비용 구조로 '벼랑 끝'

이정태 기자

기사입력 : 2025-10-2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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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명성, 정밀함, 완벽한 엔지니어링의 대명사였던 독일 자동차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19일(현지 시각) 시티매거진은 메르세데스-벤츠와 폭스바겐 등 독일의 거물들이 과거 시장의 왕이었던 노키아(Nokia)가 걸었던 몰락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냉혹한 경고가 나온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경쟁 심화, 전략적 오판, 고비용 구조가 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주요인이다. 과연 이 자동차 제국을 구할 수 있을까?

오만함이 낳은 '전기차 해일' 간과


독일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경쟁에 대한 오만함에서 시작됐다.

2015년, 폭스바겐 수장이었던 마티아스 뮐러는 테슬라를 조롱했다. 그는 "테슬라는 연간 8만 대를 팔고 50억 달러의 손실을 낸다"고 비웃었다. 당시 폭스바겐은 1100만 대를 팔아 130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이 발언은 오늘날 씁쓸한 농담처럼 들린다.

그해 폭스바겐은 디젤게이트 스캔들에 휘말렸다. 막대한 벌금과 명성을 잃었다. 그 사이 테슬라는 전기차 혁명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오늘날 테슬라의 시장 가치는 독일의 모든 자동차 대기업을 합친 것보다 높다. 폭스바겐은 이제 꼬리를 쫓아가기에 급급하다.

역사는 반복된다. 1970년대 미국 자동차 거물들이 일본 차를 "값싼 쓰레기"라고 무시했던 것처럼 말이다. 1950년대 포드 2세가 유럽 소형차를 과소평가했을 때 폭스바겐 비틀(Beetle)이 미국 시장을 장악했다. 이제 독일은 중국의 BYD와 같은 제조사들이 저렴하고 기술적으로 진보된 전기차로 추월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벤츠의 '터보 보너스'와 고비용 탈출


럭셔리의 상징 메르세데스-벤츠는 지금 구조조정(Clean-up)을 단행 중이다. CEO 올라 칼레니우스(Ola Källenius)가 주도하는 이 계획은 2027년까지 50억 유로(약 8조 3000억 원)를 절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중 10억 유로(약 1조 6600억 원)는 인건비 절감에서 나올 예정이다.

회사는 자발적 정리해고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4000명 이상의 직원이 이미 회사를 떠났다. 55년 근속한 팀 리더는 작별 인사로 최대 50만 유로(약 8억 3000만 원)를 받을 수도 있다. 이는 '터보 보너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배가 가라앉는 동안 '과체중'을 제거하려는 필사적인 시도로 보인다.

이는 독일의 고비용 생산 모델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메르세데스는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반면, 인건비가 70% 더 저렴한 헝가리 케치케메트 공장을 확장하고 있다. 한때 독일 정밀도의 상징이던 럭셔리 S-클래스와 EQS 모델이 이제 헝가리에서 생산된다. 이것은 유연성일까, 아니면 고국으로부터의 조용한 후퇴일까?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공장이미지 확대보기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공장


독일 산업 전반을 덮치는 '일자리 쓰나미'


메르세데스-벤츠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일 자동차 산업은 지난 2년 동안 5만5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잃었다. 보쉬(Bosch), 폭스바겐, ZF 등 거대 기업들 역시 수만 명 규모의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이것은 단순한 해고의 물결이 아니다.

주요 시장인 중국에서는 독일 브랜드들이 BYD 같은 현지 제조업체와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과한 관세 위협도 부담이다. 전기차 전환에 대한 잘못된 전략까지 더해져 위기를 심화시켰다. 메르세데스는 결국 순수 전기차 올인 전략을 포기했다. 이제 내연기관 현대화에도 다시 투자하고 있다. 마치 제자리에서 자신의 꼬리를 쫓는 것처럼 보인다.

노키아를 죽인 '경직된 문화'의 덫


독일 자동차 산업의 근본적인 문제는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기업 문화에 있다.

관리직은 능력보다 충성도를 기준으로 채워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로 인해 혁신과 적응성이 부족하다.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를 기억해야 한다. 경직되고 내성적인 기업 문화가 변화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한때 세계를 놀라게 했던 독일의 정확성은 이제 족쇄가 되었다. 역선택(Adverse selection)은 경영진을 낳았다. 이들은 급변하는 시장에 대처하기에는 너무 느렸다.

독일 자동차 산업은 현재 기로에 서 있다. 생산지 이전과 정리해고는 단기적인 처방일 뿐이다. 비전 부족과 경직된 문화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는 어둡다. 적응하지 못하면 소멸한다. 노키아의 교훈은 독일차에게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정태 글로벌모빌리티 기자 jtlee@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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