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랠리 챔피언십(World Rally Championship, WRC)은 포장도로, 비포장도로, 눈, 얼음 등 극한의 환경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세계 최고 권위의 자동차 경주이다. 일반 서킷 레이스와 달리 넓은 지역의 다양한 노면에서 진행되기에 그 경기 방식과 규칙이 독특하다.
WRC 경기는 크게 기록 경쟁이 펼쳐지는 스페셜 스테이지(Special Stage, SS)와 일반도로를 이용해 SS 간을 이동하는 로드 섹션(Road Section)으로 구성된다. SS는 실제로 기록 경쟁이 펼쳐지는 통제된 구간이다. 랠리카들은 이 구간에서 전속력으로 주행하며 시간을 다툰다. 한 랠리당 수십 개의 SS 기록을 합산한 시간이 가장 짧은 드라이버가 최종 우승을 차지한다. 반면, 로드 섹션은 SS 사이를 이동하는 일반도로 구간이다. 랠리카는 이 구간에서 일반 교통 법규를 준수해야 하며, 정해진 시간 내에 다음 체크 포인트(Time Control, TC)에 도착하는 시간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지연되거나 너무 빨리 도착하면 시간 페널티가 부과된다.
랠리 경기는 운전석의 드라이버(Driver)와 조수석의 코드라이버(Co-driver)가 한 팀을 이룬다. 코드라이버는 단순한 내비게이터를 넘어선다. 그들은 경기 전 코스를 미리 주행하며 도로의 상세 정보를 기록한 페이스 노트(Pace Notes)를 작성한다. 경기 중 코드라이버는 인터컴(Intercom)을 통해 코너의 각도, 거리, 노면 상태, 위험 요소 등을 실시간으로 읽어주며 드라이버가 극한의 속도로 코스를 예측하고 차량을 제어하도록 돕는다. 이 페이스 노트의 정확성과 전달력이 랠리 승패를 가르는 핵심이다.
차량 정비 및 관리도 엄격한 규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서비스 파크(Service Park)는 랠리 기간 중 차량 정비 및 수리, 급유, 타이어 교체가 허용되는 유일한 장소다. 드라이버는 지정된 시간 내에 모든 정비 작업을 완료해야 하며, 서비스 파크 외에서 정비를 시도하면 무거운 페널티가 부과된다. 반면, 파크 페르메(Parc Fermé)는 차량의 조작을 막기 위해 팀의 정비나 외부의 접근이 완전히 금지되는 봉인 구역이다.
랠리의 마지막 날, 마지막 SS 중 하나는 파워 스테이지(Power Stage)로 지정되기도 한다. 이 스테이지는 우승 기록 경쟁과 별도로, 가장 빠른 5명의 드라이버에게 추가 챔피언십 포인트가 주어져 경기 종료 시점까지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현재 WRC의 최상위 클래스는 Rally1 규정 차량이며, 고성능 사륜구동 방식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결합돼 순간적인 추가 출력을 활용한다. WRC는 단순한 속도 경쟁을 넘어 시간 관리, 차량 관리, 코드라이버와의 완벽한 팀워크가 요구되는 극한의 복합 모터스포츠이다.
WRC 2025년 시즌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도입한 최상위 클래스를 중심으로 치열한 승부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WRC는 참가 차량의 기술 규격과 드라이버의 자격에 따라 클래스가 세분화된다. WRC의 최고 클래스는 랠리원(Rally1)이다. 이 차량은 1.6리터 터보 엔진과 전기 모터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사용하며, 현대자동차의 'i20 N 랠리원 하이브리드(Hybrid)', 토요타의 'GR 야리스(Yaris) 랠리원 하이브리드' 등이 대표적이다. 랠리원이 드라이버 및 제조사 챔피언십 포인트 경쟁의 핵심 무대라면, 그 아래 단계인 WRC2, WRC3는 주로 아마추어 스타 바굴 및 개인 참가자들이 경주하는 클래스다.
다시 경기로 돌아와 2025년 10월 현재 WRC 챔피언십은 올해 경기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며 타이틀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제조사 부문에서는 토요타 가주 레이싱 WRT가 513점으로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현대 쉘 모비스 WRT가 413점으로 그 뒤를 추격하고 있다. 오트 타낙 등 소속 드라이버의 활약에 힘입어 현대자동차는 제조사 타이틀 획득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드라이버 부문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현재 엘핀 에반스(토요타)가 198점으로 선두이지만, 칼레 로반페라(토요타)(191점), 현역 최강 세바스티앙 오지에(토요타)(189점)가 불과 10점 이내의 초접전 양상을 보이며 챔피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특히 일부 라운드에만 출전했음에도 4승을 거둔 오지에는 여전히 강력한 우승 후보다. 오트 타낙(현대) 역시 180점으로 4위에 포진해 있어, 남은 라운드의 결과에 따라 최종 챔피언이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남은 경기는 유럽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펼쳐진다. 특히, 이번 WRC 랠리 재팬은 시즌의 최종 라운드 중 하나로서 드라이버와 제조사 모두에게 챔피언십 타이틀을 결정지을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