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산다는 건 결국 ‘언제 팔까’를 함께 고민하는 일이다. 미리 팔 때를 계산해서 산다는 말이다. 신차 때의 반짝거림은 잠시, 3년·5년 뒤 중고차 시세표에 이름이 얼마나 남느냐가 진짜 실력이다. 국내 시장에서도 감가율로 본 브랜드 경쟁력은 명확히 드러난다. 아래 내용은 국내 주요 중고차 플랫폼(엔카·KB차차차·카이즈유 등)의 최근 통계와 자동차 업계 관계자 의견을 종합한 것이다.
가치 유지율 상위 5개 모델...“묵직한 이름, 튼튼한 가치”
현대 그랜저 하이브리드 : 3년 감가율 약 25%
‘국민 준대형 세단’은 이름값만큼이나 중고가치도 높다. 2022년식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3년이 지나도 신차가의 75%를 유지한다. 하이브리드 특유의 연비 효율과 낮은 유지비가 ‘가족차’ 수요를 꾸준히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형 출시 후에도 구형 모델의 디자인 완성도가 높아, “오히려 이게 더 예쁘다”는 평도 있다.
‘준대형 세단의 새 얼굴’ K8은 출시 초반엔 호불호가 갈렸지만, 시간이 지나자 “안 팔릴 이유가 없다”는 차가 됐다. 3년 보유 후 매각 시 신차가의 73% 수준을 돌려받을 수 있다. 현대 그랜저보다 젊은 디자인, 부드러운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그리고 잦은 법인 수요가 K8의 가치를 방어한다.
대형 SUV 중에서는 드물게 중고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럭셔리 SUV라는 포지션, 강한 브랜드 이미지, 법인 수요가 결합돼 “고가 SUV 중 가장 무난한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디젤 모델보다는 가솔린 3.5T 모델의 거래가 활발하며, “5년 뒤에도 GV80은 GV80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격 안정성이 탄탄하다.
국민 SUV는 역시 중고차 시장의 왕이다. 특히 하이브리드 모델은 수요가 폭발적이다. 전동화 전환기의 과도기 모델답게 연비, 세금, 정숙성에서 장점을 모두 챙겼다. 신차 대기기간이 길었던 영향으로 중고차 거래가 오히려 활발했다. 하이브리드 SUV의 ‘시가총액 1위’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국산 프리미엄 세단의 기준이 된 G80은 3년이 지나도 신차가의 70%를 유지한다. 고급 세단 중에서 이 정도면 ‘기적’이다. 수입차보다 관리비가 저렴하고, 잔존가치가 높은 2.5 가솔린과 3.5 터보 모델이 인기다. 한 딜러의 표현처럼, “G80은 벤츠 E클래스보다 덜 떨어지고, 더 많이 팔린다.”
'회장님 차'의 운명은 언제나 같다. 가격은 높고, 수요는 제한적이다. G90은 출시가가 1억을 넘지만, 5년이 지나면 4천만 원대 중반으로 떨어진다. 대형 플래그십 세단은 원래 감가율이 높은 편이다. 그래도 “이만큼 편한 대형 세단은 없다”는 평가 덕에 거래는 꾸준하다.
전기차 붐의 선두주자였지만, 급격한 경쟁 심화의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중고 시세는 테슬라 등 일부 브랜드를 제외하고 전기차 시장 전체의 감가 리스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국산 전기차 중에서는 가장 높은 잔존가치를 유지하며, 충전 인프라 포화와 보조금 변화라는 난관 속에서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다.
“5년 뒤 웃는 차는 결국 신뢰다”
결국 자동차의 가치란 브랜드 신뢰, 유지비, 시장 수요가 만든다. 국산차 시장에서는 하이브리드와 프리미엄 SUV의 가치 방어력이 두드러지고, 반대로 대형 세단과 전기차는 급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감가 리스크가 커졌다. 결국 “팔릴 때도 잘 팔리고, 팔고 나서도 덜 후회되는 차. 그런 차가 진짜 좋은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