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스(Lotus)는 “단순화하고, 그다음 가벼움을 더하라(Simplify, then add lightness)”라는 창립자 콜린 채프먼(Colin Chapman)의 철학이 담겨 있다. 75년 동안의 브랜드 역사 속에서 경량화, 민첩성, 운전의 즐거움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되는 로터스의 길은 수많은 자동차 브랜드 중에서도 유독 특별했다.
F1 7회 월드 챔피언십 우승, 혁신적인 모노코크 섀시의 도입, 공기역학 설계의 선구자라는 수식어는 모두 로터스를 가리킨다. 그러나 로터스의 진짜 이야기는 스페셜 에디션 모델 속에 응축돼 있다. F1 황금기를 기념한 한정판부터 전동화 시대를 앞서 보여준 하이브리드 콘셉트까지, 10종의 스페셜 에디션은 단순한 희귀 차가 아니라 브랜드 철학과 기술 진화의 결정체다.
태생부터 ‘경량화’ — 로터스 철학의 시작
로터스의 첫 모델은 1948년 대학생이었던 채프먼이 직접 제작한 ‘마크 I(Mark I)’이었다. 당시 시장의 스포츠카들이 크고 무거운 엔진을 강조하던 것과 달리, 채프먼은 오히려 무게를 줄이는 방식으로 성능을 극대화했다. “무게는 적을수록 좋다”는 그의 철학은 이후 로터스 전 모델에 관통하는 핵심 원칙이 됐다. 경량화는 단순히 소재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채프먼은 모노코크 섀시와 공기역학 설계 같은 혁신을 통해 작은 엔진으로도 압도적인 주행 성능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로터스는 포뮬러 원 무대에서 1960년대와 70년대를 지배하며 7번의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거머쥔다.
로터스 황금기, 전설이 된 스페셜 에디션의 탄생
1970년대는 로터스 역사에서 ‘황금기’라 불린다. 마리오 안드레티, 에머슨 피티팔디 같은 전설적인 드라이버와 함께 팀 로터스는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이 시기의 성과는 스페셜 에디션 모델 속에 그대로 투영됐다.
1978년 F1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기념해 제작된 한정판 모델로, 단 300대만 생산됐다. JPS(John Player Special) 리버리로 불리는 블랙 & 골드 컬러링은 로터스 팬들 사이에서 전설로 남아 있다. 2.0L DOHC 직렬 4기통 엔진(160마력)을 탑재한 이 모델은 단 1톤도 되지 않는 초경량 차체 덕분에 당시 기준으로 0→100km/h 가속 7.0초대를 기록했다. 그때 마케팅 슬로건은 “F1 우승 머신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차”였다. 실제로 많은 오너들은 이 모델을 “도로 위의 F1 머신”이라고 불렀다.
로터스 하면 서킷을 먼저 떠올리지만, 썬빔 웍스 랠리카는 로터스가 험난한 오프로드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한 사례다. 크라이슬러와 협업해 탄생한 이 모델은 일반형 대비 무려 100마력 이상 높은 250마력을 발휘했다. 강화된 안티롤바, 단단한 서스펜션, 경량 차체를 무기로 1981년 WRC 매뉴팩처러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로터스 엔지니어들이 밤을 새워 세팅한 덕에 “흙탕물에서도 빛나는 로터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기아 엘란’으로 유명한 모델의 마지막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약 800대만 한정 생산됐다. 1.6L DOHC 터보 엔진(155마력)을 장착해 0→100km/h 가속 7.1초, 최고속도 215km/h를 기록했다. 특히, 전륜구동 기반에 LSD(차동 제한 장치)를 적용한 점이 특징으로, 동시대 모델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코너링 성능을 자랑했다. 알루미늄 하부 서브 프레임과 짧은 휠베이스 덕분에 “운전자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차”라는 평가를 받았다.
로터스가 전동화의 가능성을 최초로 제시한 모델이다. 전륜에 두 개의 전기 모터를, 후방에는 1.2L 3기통 엔진을 발전기로 활용하는 시리즈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했다. 시스템 총출력은 414마력, 토크는 1000Nm, 0→60mph 가속은 단 4초. 여기에 ‘가상 엔진 사운드 시스템’을 더해 전동화 시대에도 드라이빙 감성을 잃지 않겠다는 로터스의 의지를 드러냈다. “전동화 이후 스포츠카라면 이렇게 달려야 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셈이다.
로터스가 “가벼움”이라는 철학에 얼마나 집착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델이다. 로터스 340R을 기반으로 제작된 이 힐클라임 전용 머신은 1.8L DOHC 엔진(177마력)을 탑재했지만, 윈드스크린과 히터를 제거하고 투명 폴리카보네이트 보디를 적용해 차체 중량을 636kg까지 낮췄다.
“날개 달린 고카트”라는 별명처럼, 엑스포제는 차보다 운전자의 감각을 먼저 시험하는 차량이었다. 불필요한 장식을 모두 덜어내고 오직 ‘운전자의 손끝과 발끝’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철저한 드라이버스 머신. 로터스가 가장 로터스다웠던 순간을 대표한다.
2005년 국제 로터스 클럽 갈라 디너에서 공개된 서킷카는 1956년 로터스 일레븐(Lotus Eleven)에 대한 오마주로 기획된 모델이다. 개방형 구조와 과감한 경량화, 낮게 깔린 차체는 일레븐의 디자인 언어를 현대적으로 계승했으며, 이후 개발된 2-일레븐(2-Eleven)의 시초가 됐다. 서킷카는 로터스 팬들에게 “우리는 우리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던진 상징적인 모델이었다. “트랙에서 출발한 DNA를 도로 위까지 잇겠다”는 브랜드 정신을 재확인한 셈.
50대 한정으로 제작된 미국 전용 모델로, 로터스의 드문 ‘감성적 실험’으로 평가받는다. 토요타에서 공급받은 1.8L DOHC 엔진(189마력)과 6단 수동변속기를 채택해 기본적인 퍼포먼스는 유지하되, 실내에는 투톤 가죽 시트, 아이팟 전용 오디오 시스템, 실버 악센트 그릴 등 당시 북미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취향을 반영한 사양을 추가했다. “트랙 머신”으로서의 로터스와 달리, 이 모델은 “일상에서 즐기는 로터스”라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줬다.
엑시지 컵 430 파이널 에디션은 2000년부터 이어져 온 엑시지(Exige)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한 모델이다. 3.5L V6 슈퍼차저 엔진(436마력)을 탑재해 0→100km/h 가속 3.2초, 공차중량 1110kg, 최대 다운포스 171kg을 기록했다. 이 모델은 단순한 스페셜 에디션을 넘어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상징으로 평가된다. 엑시지가 끝나고 등장한 에미라(Emira)는 로터스의 마지막 내연기관 스포츠카라는 타이틀을 이어받았다.
로터스의 현재 — 전통과 전동화의 공존
로터스는 현재 대전환의 한가운데 서 있다. 한때는 “작고 가벼운 스포츠카”의 대명사였지만, 이제는 전동화와 프리미엄 시장으로의 진출을 선언했다. 그 시작과 끝이 바로 에미라(Emira)다. 로터스의 마지막 내연기관 스포츠카로, 미드십 레이아웃을 유지하며 경량 스포츠카의 정수를 보여주는 모델이다. 이를 기반으로 전동화의 시작을 알리는 모델은 에비야(Evija)다. 2000마력 전기 하이퍼카로 브랜드 역사상 가장 강력한 모델로 알려졌으며 단 130대 한정 생산됐다. 그리고 엘레트레(Eletre)는 본격적인 전동화 시작을 알린다. 로터스 최초의 전동화 SUV로, 성능과 럭셔리를 결합해 중국, 유럽, 한국 시장을 동시에 겨냥한 전략 모델이다. 내연기관에서 전동화로 넘어가는 격변의 시기에 생존을 위해 로터스는 여전히 “운전자를 위한 차”라는 핵심 가치를 고수하고 있다.
로터스는 2028년까지 100% 전동화를 선언했지만, 브랜드 철학은 바뀌지 않는다. “운전자를 위한 차”라는 핵심 가치를 이어가기 위해 로터스는 경량화와 민첩성, 주행 감각 최적화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거기에는 경량 배터리 개발이라는 미션이 주어진다. 고에너지 밀도의 배터리를 적용해 배터리 팩 크기를 줄이고 차체 무게를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다. 또한, 신소재 기술 개발에도 노력해야 한다. 카본 파이버와 알루미늄 합금 등 초경량 소재를 활용한 차체 설계가 핵심이 될 수도 있다. 드라이빙 인터페이스 혁신도 요구된다. 전동화 시대에도 ‘운전의 즐거움’을 보장하기 위한 피드백 중심의 스티어링과 주행 제어 기술 강화가 필요함이다. 전동화는 로터스에 새로운 도전이지만, 운전의 본질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브랜드 가치를 재정의하려는 시도가 로터스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