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를 열면 차가 얼른 자세를 낮춘다. 탑승해서 또 문을 닫으면 차가 서둘러 뛸 준비 자세를 갖춘다. 운전자의 생명을 스마트하게 붙들어주는 안전벨트 프리텐셔너를 연상시키는 편리한 기능이다. 서스펜션 높낮이를 빠르게 조절하는 이 기능은 이번 신형 포르쉐부터 적용됐다. 이 브랜드도 이런 재주가 있다니. 그것도 포르쉐 파나메라나 되니까 가능한 일이다. 이번 시승 모델은 파나메라 터보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파나메라는 언제나 두 세계를 잇는 다리였다. 한쪽은 장거리 여행을 품격 있게 즐기려는 오너 드라이버들의 세계, 다른 한쪽은 911의 포효를 그리워하는 순수한 드라이빙 애호가들의 세계다. 디자인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고, 성능에서도 그 요소들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디자인에서는 변화가 크게 느껴진다. 원래 안 바뀌기로 이름난 브랜드임에도 이번 신형 파나메라는 쉽게 구분이 될 정도로 외관이 많이 달라졌다. 이전 세대보다 한층 정제된 인상. 캐릭터 라인이 좀 더 공격적이다. 라인이 더 선명해졌고 곡선보다는 직선의 미학이 따른다는 뜻이다. 전면부에는 4포인트 LED 매트릭스 헤드라이트가 적용됐다. 에어 인테이크도 커졌다.
측면에서는 리어 휀더로 갈수록 부풀어오르는 근육질의 라인이 볼륨감을 더 가져간다. 후면에서는 전폭을 가로지르는 라이트 스트립과 액티브 리어 스포일러가 시선을 붙잡는다. 21인치 전용 휠과 레드 브레이크 캘리퍼는 ‘터보 하이브리드’만의 존재감을 강조한다.
내부는 디지털화가 많이 이뤄졌다. 감성적인 브랜드 차에서는 별로 반갑지 않으나 일상을 위한 파나메라라면 이해는 간다. 계기판은 12.6인치 풀 디지털 클러스터지만, 중앙에는 여전히 포르쉐 전통의 아날로그 회전계가 자리한다. 센터페시아에는 12.3인치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와 정돈된 터치 패널이 배치돼 있다. 포르쉐 커넥트, 무선 애플 카플레이, OTA 업데이트, 최신형 보이스 어시스턴트 등 기술적 편의성은 최고 수준이다. 시트는 부드러운 나파 가죽에 알칸타라와 카본 파이버가 조화를 이루고, 스티치 하나하나가 정교하다. 트렁크 용량은 기본 500리터 수준으로, 4도어 스포츠 세단치고는 충분하지만, 4명 풀 탑승 시 장거리 여행이면 적재 공간이 살짝 빠듯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이브리드라고 해서 공간을 크게 손해 보는 일은 없다.
달리기를 시작하면 낮고 깊은 배기음이 마음을 진정시킨다. 4.0리터 V8 트윈터보 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해 시스템 총출력 약 680마력, 최대토크 94.8kg·m를 발휘한다. 0→100km/h 가속은 3.2초, 최고속도는 315km/h에 달한다. 약 20~25km 순수 전기 주행이 가능해 도심 저속 주행 시에는 정숙성과 효율성도 갖춘다. 전기모터가 개입하는 초반 가속은 즉각적이고 매끄럽다. 엔진이 개입하는 순간 특유의 V8 사운드가 더해져 ‘두 개의 심장’이 주는 이중적인 쾌감을 선사한다. 외계인을 갈아먹었다는 데, 기술적인 부분은 사실 흠 잡을 데가 없다.
독일 프리미엄 차들의 매력은 사실 코너링에서 드러난다. 이번에는 한층 더 세련됐다. 차체가 더 안정적이다. 노면의 그립력이 출중하다. 4D 섀시 컨트롤, 전자식 액티브 롤 스태빌라이제이션, 토크 벡터링 플러스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덕분이라고 한다. 에어 서스펜션은 도로 상태에 따라 실시간으로 감쇠력을 조절하며,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는 차고를 낮춰 더욱 날카로운 반응을 만들어낸다. 에어 서스펜션 덕분에 좋아지는 건 승하차 때도 있다.
조향은 날카롭지만 예민하진 않고, 브레이크 페달은 초기 반응부터 끝까지 일정한 제동감을 제공한다. 도심에서는 부드럽게, 고속도로에서는 안정적으로, 와인딩 로드에서는 과감하게 성격을 바꾸는 능력은 이 차의 하이라이트다.
포르쉐 파나메라 터보 E-하이브리드의 경쟁 상대는 단순히 ‘럭셔리 세단’ 카테고리에만 있지 않다. 벤틀리 플라잉 스퍼 V8은 한층 고급스러운 소재와 장인정신으로 무장했지만, 운전 재미에서는 파나메라에 한 수 뒤진다는 생각이다. BMW M8 그란쿠페는 폭발적인 직선 가속과 날카로운 핸들링을 제공하지만, 뒷좌석의 안락함과 실내 마감 품질에서는 파나메라가 우세. 메르세데스-AMG GT 4-도어는 비슷한 출력과 주행 감각을 자랑하지만, 포르쉐 특유의 정밀한 스티어링 피드백과 코너링 밸런스는 따라오기 어렵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