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판매 중인 쉐보레 이쿼녹스 플러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는 스펙상 이상적인 모델로 보인다. 실용적인 크로스오버 차체에 가솔린 엔진과 배터리를 조합해 중국 인증 기준 600마일(약 965km) 이상의 주행거리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너럴 모터스(GM)는 이 모델을 다른 시장에 출시하지 않고 가솔린 모델과 전기차(EV) 모델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동안 메리 바라 GM 회장은 완전 전기차 시대를 '엔드 게임'으로 규정하며 하이브리드 모델 도입에 거리를 두어 왔다. 최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자동차기자협회(APA) 콘퍼런스에 참석한 바라 회장은 미국 내 PHEV 시장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바라 회장은 "우리가 현재 파악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실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를 충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이것이 우리가 하이브리드 및 PHEV 전략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이는 자동차 업계에서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었으나 최고 경영자가 직접 인정한 사례로는 가장 강도 높은 발언이다.
PHEV는 가솔린 엔진과 소형 배터리를 결합해 전기만으로 30~50마일(약 48~80km)을 주행할 수 있어 내연기관과 전기차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사용자가 배터리를 충전하지 않으면 무거운 배터리 무게로 인해 오히려 연료 효율이 떨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실제로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PHEV의 실제 전기 주행 비중은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예상치보다 훨씬 낮았다. 이로 인해 실제 연료 소비량은 공식 라벨에 표시된 수치보다 42~67%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에서도 상황은 비슷해 PHEV가 예상보다 훨씬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한마디로 PHEV의 충전 속도 등 한계로 소비자들의 이용 횟수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뜻이다.
최근 전기차 판매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현대차, 토요타, 볼보 등 경쟁사들은 PHEV를 단기적인 해결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스텔란티스의 경우 규제와 보조금 문제로 PHEV 라인업을 축소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많은 제조사가 이 분야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대용량 배터리에 충전용 가솔린 엔진을 더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결국 사용자가 직접 충전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PHEV와 동일한 사용자 행태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GM은 과거 쉐보레 볼트(Volt)를 통해 PHEV 시장을 개척했으나 현재 미국 내에서는 콜벳 E-Ray 하이브리드 외에 별다른 라인업이 없다. 전기차 전환 속도 조절에 나선 GM은 오는 2027년경 미국 시장에 다시 하이브리드와 PHEV 모델 도입을 검토 중이다.
바라 회장은 하이브리드를 건너뛰고 전기차로 직행했던 과거의 전략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당시 알고 있던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내린 결정이었으며 다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며 자본 배분의 효율성을 우선시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GM이 향후 출시할 하이브리드 모델에서 사용자들에게 '충전의 습관'을 어떻게 교육하고 설득할지가 향후 전동화 전략의 성패를 가를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