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 초, 자동차 업계는 일제히 “내연기관의 종말”을 선언했다. 볼보와 벤틀리는 2030년, 아우디는 2032년, 포드는 유럽 시장에서 2030년까지 모든 승용차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포르쉐 역시 2030년 전체 판매의 80% 이상을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세계 각국의 규제와 친환경 압박이 그 흐름을 밀어붙였고, 제조사들은 마치 ‘누가 먼저 엔진을 버릴 것인가’의 경주에 나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불과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레이스는 멈췄다. 2025년 현재 다수의 브랜드가 목표 시점을 미루거나, 일부는 기약 없는 ‘보류’ 상태에 들어갔다. 시장은 생각만큼 빠르게 전기차로 이동하지 않았다.
“올인은 위험하다” — BMW와 토요타의 다른 선택
대부분의 브랜드가 전기차 전용 시대를 향해 달려갈 때, 두 브랜드만은 다른 길을 택했다.
BMW와 토요타다. 이들은 “전동화는 곧 다양성”이라는 신념을 고수하며, 내연기관·하이브리드·플러그인하이브리드·수소·전기차를 병행하는 다중 전략을 유지해왔다.
BMW는 ‘Power of Choice(선택의 힘)’라는 철학을 앞세워, 소비자에게 연료의 선택권을 남겼다. 회사는 2028년 X5 기반의 수소연료전지차를 출시할 예정이며, 이는 토요타와 공동 개발 중이다. BMW CEO 올리버 집세(Oliver Zipse)는 유럽연합의 2035년 내연기관 금지법에 대해 “기술적으로 편향된 규제는 산업의 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며 이렇게 경고했다.
“전기차만을 유일한 해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막다른 길이다. 유럽의 다양성과 지리적 격차를 고려하면, 하나의 기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다.
BMW는 전동화를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노이에 클라쎄(Neue Klasse)’ 프로젝트에 100억 유로(약 14조8000억 원) 이상을 투자하며, 차세대 전기 SUV iX3, i3 세단, iX5 등 새로운 전기 라인업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직렬 6기통과 V8 엔진을 유로 7 기준에 맞게 다듬으며 내연기관의 명맥을 잇고 있다. BMW의 접근법은 “혁신과 전통의 공존”에 가깝다.
토요타의 메시지 — “엔진은 여전히 유용하다”
토요타 역시 EV 단독 전략을 거부했다. 토요타 유럽의 제품전략 담당 안드레아 칼루치(Andrea Carlucci)는 “우리는 새로운 가솔린 엔진을 전기·하이브리드·수소 연료와 결합 가능한 구조로 설계 중”이라고 밝혔다. 1997년 프리우스로 하이브리드의 서막을 연 토요타는, 여전히 ‘모든 연료를 위한 엔진’을 꿈꾼다. 회사는 마쓰다·스바루와 함께 합성 및 바이오 기반 연료 개발에 투자하고 있으며, 수소를 직접 연소하는 엔진을 실험 중이다. GR 야리스와 GR 코롤라의 프로토타입은 1.6리터 3기통 터보 엔진을 개조해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며, “소리와 감성까지 남긴 전동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토요타 아키오 회장은 지난해 “전기차가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의 30%를 넘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시엔 논란이 컸지만, 최근 시장 흐름을 보면 그의 발언이 현실에 가까웠음이 드러난다.
EV 시장은 성장 중이지만, 속도는 늦춰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신차의 20% 이상이 전기차였다. 글로벌 판매량은 1700만 대를 돌파했고, 2025년에는 2000만 대 이상이 예상된다. 하지만 그 속도를 들여다보면 지역 간 격차가 극명하다. 노르웨이는 신차의 89%가 EV지만, 미국은 9.2%에 그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인프라 문제를 넘어, 구매력·정책·문화의 복합적 결과다.
이런 현실 속에서 BMW와 토요타는 불필요한 ‘전략 수정’이 필요 없었다. 다른 브랜드들이 EV 전환 계획을 철회하거나 내연기관을 되살리는 동안, 이 두 제조사는 처음부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전략의 유연함이 경쟁력으로
포르쉐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전기차 전용으로 기획된 마칸 EV에 가솔린 버전을 추가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다시 투입하고 있으며, 718 박스터·카이맨 시리즈도 내연기관을 부활시킨다. 이는 BMW와 토요타가 피한 ‘비용의 되돌림’이다.
두 브랜드는 처음부터 EV 전용 플랫폼과 내연기관 병행 체계를 동시에 설계해,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균형을 유지했다. BMW는 여전히 직렬 6기통의 사운드를 지키면서 수소연료전지를 실험하고, 토요타는 하이브리드 효율을 높이면서 합성연료의 가능성을 탐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