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가로수길을 느릿하게 흐르는 순간,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의 매혹적인 실루엣과 배기 사운드는 주변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낮게 깔린 차체와 우아한 곡선의 보디라인은 마치 잘 재단된 이탈리아 수트를 입은 듯 품격을 풍긴다. 배기음은 정차 중에도 귓가에 오페라 한 소절을 노래하는 듯하다.
이번에 탄 차는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다. 오랫동안 기다렸다 타는 거라 기대가 컸다. 다만, 일정상 시내 주행이 대다수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차분하고 여유로운 승차감이다. 에어 서스펜션을 적용한 그란카브리오는 컴포트 모드에서 노면의 작은 요철을 말끔히 걸러내며 GT카답게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물론 예상했던 것보다는 그렇다는 말이다.
차체가 크고 무거운 편이지만(차체중량 약 1.95t), 기본 사양의 20/21인치 피렐리 P제로 타이어와 견고한 섀시가 조화를 이루어 도심 속 과속방지턱도 의연하게 넘어선다. 스티어링은 가벼운 편이면서도 정확하게 앞머리를 들이밀어 주차나 유턴에서도 부담이 적다. 변속 감각은 전통적인 GT카처럼 매끄럽다. 8단 자동변속기는 저속에서 충격을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기어를 올린다. 다만 조용함과 연비를 중시한 세팅 덕에, 일반 모드에서는 속도를 조금만 올려도 재빨리 높은 단수로 올라가 버린다.
그 결과 엔진 회전수가 1500rpm 부근으로 뚝 떨어지면서 가속 페달을 깊게 밟지 않는 한 배기음이 살짝 잠잠해진다. 막히는 도로에서 이 범위에 머무를 땐 감미롭던 엔진음이 다소 거친 으르렁거림으로 변한다.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불편할 수도, 두근거리는 설렘이 될 수도 있다. 제로백 3.4초의 퍼포먼스는 후자 쪽에서 발현된다.
스포츠 배기 모드로 놓아도 낮은 회전에선 얌전하게 숨죽이는 편이어서, 도심에서는 이따금 감성 사운드가 아쉽게 느껴질 수 있다. 필요할 땐 패들시프트를 당겨 기어를 낮춰주면 금세 배기 플랩이 열리며 이탈리아 특유의 응답성 있는 쉼표를 찍어준다. 전반적으로 시내 주행에서 그란카브리오는 품위있는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운전자가 원하면 언제든 숨겨둔 목소리를 들려줄 준비가 되어 있다. 전자식 사륜구동은 악천후에 빛을 발할 듯했다. 그란카브리오는 철저히 GT카로 개발됐지만, 와인딩 로드에선 의외로 진지하게 스포츠카 흉내를 낸다.
그란카브리오의 디자인은 한눈에 봐도 클래식한 롱노즈-숏데크 비율을 정의한다. 유려한 곡선의 차체, 그리고 낮게 깔린 프론트 그릴까지, 과거 마세라티의 영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습이다. 전면부의 긴 보닛(코판고, cofango)은 펜더와 통합된 일체형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어 조각품처럼 매끈하고, 소프트탑을 닫았을 때도 루프라인이 쿠페 모델과 흡사하게 흐르는 실루엣은 전통과 미학의 균형감을 보여준다.
특히 패브릭 소재의 소프트톱은 요즘 하드톱 컨버터블이 흔들리는 추세 속에서 오히려 클래식의 멋을 살리는 선택인데, 마세라티는 “부피 큰 금속 지붕을 넣느라 디자인을 망치느니 우아한 천 지붕이 낫다”는 철학을 고수한 셈이다.
실내에 들어서면 이탈리아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고급스러운 소재와 디자인이 펼쳐진다. 대시보드와 시트, 도어 트림 등 손이 닿는 모든 곳에 아낌없이 가죽을 둘러 풍부한 질감을 전하며, 세밀한 스티치와 메탈 장식이 어우러져 “만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시트는 넓고 편안해 장거리 투어에도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신 마세라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12.3인치 메인 스크린과 8.8인치 보조 스크린의 듀얼 디스플레이 형태로 자리잡았다. 공조 조작부터 글로브박스 열기, 심지어 지붕 개폐까지 거의 모든 기능이 터치패널로 통합된 것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시스템의 사용법은 인상적인 이미지를 주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