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EV) 시장의 춘추전국시대, 새로운 폭풍의 눈이 한반도를 향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중국산 자동차는 상용차나 초저가 틈새시장을 노리는 '가성비'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낡은 편견을 거둘 때가 왔다. 볼보, 폴스타, 로터스를 품고 있는 거대 자동차 그룹 ‘지리(Geely)’의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 '지커(Zeekr)'가 마침내 한국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그들이 한국이라는 깐깐한 무대에 처음으로 올리는 선봉장은 바로 중형 전기 SUV '7X'다. 테슬라가 장악하고 현대차·기아가 굳건히 방어 중인, 가장 치열한 볼륨 마켓(대중 시장) 정중앙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가격표조차 아직 베일에 싸여있지만, 글로벌 무대에서 입증된 7X의 상품성은 벌써부터 국내 경쟁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지커 7X의 무기는 무엇이며, 이 차가 뛰어넘어야 할 막강한 경쟁자들은 누구인지 최기자가 심층 분석했다.
[COVER STORY] '가성비' 꼬리표 뗀 中 프리미엄 역습…지커 7X, 한국 EV 생태계 흔들까
지커 7X는 브랜드의 야심이 고스란히 담긴 패밀리 중형 전기 SUV다. 중국차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잠재울 가장 큰 무기는 바로 '태생'이다. 7X는 볼보, 폴스타 등 프리미엄 브랜드와 공유하는 지리자동차의 첨단 전기차 전용 플랫폼(SEA)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뼈대부터 남다르다는 뜻이다.
이 차의 핵심은 '프리미엄 패밀리카'로서의 완벽한 거주성이다. 전장 4825mm, 휠베이스 2925mm로 넉넉한 공간을 뽑아냈고, 실내는 최고급 나파 가죽과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 비행기 일등석을 연상시키는 전동식 레그레스트 등 호화로운 옵션으로 꽉 채웠다. 성능도 타협하지 않았다. 800V 고전압 시스템을 탑재해 단 10분 만에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경이로운 속도를 자랑한다. 라이다(LiDAR) 센서를 포함한 최첨단 주행 보조 시스템은 글로벌 톱 티어 수준이다. 중국차라는 꼬리표만 떼고 보면, 유럽의 프리미엄 SUV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진짜 실력파'의 등장이다.
[COVER STORY] '가성비' 꼬리표 뗀 中 프리미엄 역습…지커 7X, 한국 EV 생태계 흔들까
지커 7X가 가장 먼저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은 단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 테슬라 모델 Y다. 모델 Y는 전기차의 교과서이자 기준점이다. 압도적인 자율주행 기술(오토파일럿)과 직관적이고 미니멀한 실내, 그리고 전 세계 어디서든 스트레스 없이 꽂을 수 있는 '슈퍼차저' 네트워크는 테슬라만의 범접할 수 없는 강점 중 하나다.
특히, 최근 한국 시장을 강타한 모델 Y RWD(후륜구동, LFP 배터리 탑재 모델)는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으로 보조금을 싹쓸이하며 시장의 룰을 바꿔놓았다. 롱레인지 모델의 넉넉한 주행거리와 퍼포먼스, 그리고 RWD 모델이 주는 극강의 가성비 콤보는 어떤 경쟁자에게도 버거운 상대다. 지커 7X가 한국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려면, 모델 Y의 촘촘한 트림 라인업을 파고들 가격표를 제시해야만 한다.
[COVER STORY] '가성비' 꼬리표 뗀 中 프리미엄 역습…지커 7X, 한국 EV 생태계 흔들까
지커 7X가 '넓은 실내와 편안함'을 무기로 삼는다면, 테슬라는 공간을 대폭 늘린 '모델 Y L'로 응수할 채비를 마쳤다. 휠베이스를 길게 늘리고 3열을 추가해 6인승 구조를 갖춘 이 모델은, 다인원 승차가 필수인 다자녀 가구나 아웃도어 매니아들을 정확히 겨냥한다.
기존 모델 Y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2열 거주성과 좁은 3열 공간을 물리적인 크기 확장으로 해결해 버린 것이다. 오토파일럿과 소프트웨어의 우수성이라는 테슬라의 강점을 그대로 유지한 채 '미니밴급 공간 활용성'까지 갖췄다는 점에서, 프리미엄 패밀리 SUV를 표방하는 지커 7X에게는 가장 뼈아프고 직접적인 위협이 될 전망이다.
[COVER STORY] '가성비' 꼬리표 뗀 中 프리미엄 역습…지커 7X, 한국 EV 생태계 흔들까
안방의 지배자, 현대차 '아이오닉 5'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아이오닉 5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거실'을 구현해냈다. 평평한 바닥과 앞뒤로 움직이는 유니버설 아일랜드 콘솔은 패밀리 SUV로서 궁극의 실용성을 제공한다. 외부로 전력을 끌어다 쓸 수 있는 V2L 기능은 캠핑 등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는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무엇보다 아이오닉 5의 가장 큰 무기는 전국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현대차의 압도적인 AS 인프라다. 신생 수입 브랜드가 가장 고전하는 서비스 네트워크 문제에서 아이오닉 5는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지커 7X가 화려한 옵션으로 유혹하더라도, '혹시 고장 나면 어쩌지?'라는 소비자의 원초적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아이오닉 5의 아성을 넘기 힘들다.
[COVER STORY] '가성비' 꼬리표 뗀 中 프리미엄 역습…지커 7X, 한국 EV 생태계 흔들까
아이오닉 5가 편안한 거실이라면, 기아 'EV6'는 날렵하고 세련된 개인 라운지에 가깝다. 아이오닉 5와 플랫폼을 공유하지만, 지향점은 완전히 다르다. EV6는 한층 스포티한 유선형 디자인과 탄탄한 하체 세팅으로 '운전의 재미'를 갈구하는 드라이버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지커 7X가 가족을 위한 부드러운 승차감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한다면, EV6는 디자인과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젊은 감각의 소비자들을 꽉 잡고 있다. 넓은 공간보다는 감각적인 스타일링과 다이내믹한 주행 성능을 우선순위에 두는 수요층에게 EV6는 흔들림 없는 선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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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시장은 1차전이었던 '얼리어답터' 시대를 지나, 냉정하게 상품성과 가치를 저울질하는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침체기)' 구간에 진입했다. 이 시기에 지커 7X가 한국에 진출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 이상 보조금이나 호기심만으로 차를 사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커 7X는 훌륭한 하드웨어와 볼보의 안전 DNA를 등에 업고 '프리미엄'을 외치고 있다. 과제는 명확하다. 중국산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릴 파격적이면서도 합리적인 가격 정책, 그리고 초반에 신뢰를 굳힐 서비스 네트워크의 구축이다. 앞으로 다크호스가 될 지커의 중형 전기 SUV '7X'. 한국 전기차 시장의 가장 흥미진진한 제 2막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