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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열전] 자동차의 전통을 보여주는 푸조와 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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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열전] 자동차의 전통을 보여주는 푸조와 르노

프랑스의 도로를 누비는 두 전설적인 자동차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육동윤 기자

기사입력 : 2025-11-04 22:43

신형 푸조 308SW 사진=푸조이미지 확대보기
신형 푸조 308SW 사진=푸조
파리의 아침, 세느강변을 달리는 녹색 택시 한 대와, 도심을 지나는 은빛 SUV 한 대가 스쳐 지나간다. 이 장면에서 낯익은 두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앞발을 든 사자 엠블럼의 푸조(Peugeot)와 다이아몬드 형상의 르노(Renault)다. 이들 두 브랜드는 100년 넘는 전통과 프랑스인의 자긍심을 담은 상징과도 같다.

1810년 철강 회사로 출발한 푸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회사 중 하나로, 1889년 아르망 푸조가 증기 삼륜차를 만든 이래 자동차 제조에 매진해 왔다. 한편, 1899년 루이·마르셀·페르낭 삼형제가 설립한 르노는 초창기 택시 제조로 명성을 쌓아 1909년 파리 택시의 3분의 2, 런던 택시의 절반이 르노 차량일 정도로 유럽 시장을 장악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르노 택시들이 ‘마른 택시(Taxi de la Marne)’로 병력을 수송해 유명세를 얻었고, 1913년에는 연간 1만 대 이상을 생산하는 유럽 최대 자동차업체로 성장했다.

프랑스 자동차 산업은 곧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격동의 길을 걸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푸조와 르노의 행보는 극명히 엇갈렸다. 루이 르노는 독일의 지시에 따라 전차와 군용 트럭을 생산하며 협력의 죄목을 뒤집어써야 했고, 그 결과 해방 후 ‘매국노’라는 오명을 남겼다. 반면 푸조는 독일 명령을 거부하고 공장을 스스로 폭파한 뒤 레지스탕스에 합류했다. 이 ‘저항의 결단’으로 푸조는 프랑스 국민에게 ‘애국자(빤히 푸조)’로 기억되며 오히려 이미지가 높아졌다. 이처럼 비극과 영웅담이 뒤섞인 역사를 바탕으로, 푸조와 르노는 프랑스 자동차의 전통을 빛내왔다.

1949 르노 4CV 사진=르노이미지 확대보기
1949 르노 4CV 사진=르노

브랜드 철학과 차별성

푸조와 르노는 각기 다른 브랜드 철학과 이미지를 지닌다. 푸조는 “Allure, Emotion, Excellence”(매력·감성·우수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이를 ‘Power of Allure’라는 브랜드 약속으로 표현한다. 앞발 든 사자 엠블럼은 벨포르(Belfort) 지역의 상징이자 ‘강인함·유연성·속도’를 의미하며, 이는 푸조의 디자인과 주행 감성에도 반영돼 있다.

전통적으로 스포츠카와 랠리 경주를 통해 쌓은 ‘열정적 드라이빙’ 이미지는, 최근에는 감각적인 디자인과 첨단 기술로 승화되고 있다. 푸조는 전 세계 130여 개국에 진출해 2022년 기준 105만대 이상의 차량을 판매한 글로벌 브랜드로, 2025년까지 모든 승용·소형 상용 모델을 전동화하여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르노의 브랜드 슬로건은 “Renault, Passion for Life”(인생을 향한 열정)로, 이것은 자동차를 통해 삶을 풍요롭게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철학을 담는다.

르노는 실용성과 혁신을 동시에 추구해 왔다. 1960년대 대중형 4CV와 1970년대 소형 4를 통해 서민적인 국민차 이미지를 확립했으며, 1980년대 미니밴 에스파스(Espace)로 새로운 가족용 차 시장을 개척했다.

현재 르노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친환경 기술을 강조하는 실용주의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로고(‘로장주’)는 1925년부터 사용된 상징이며, 2021년 새 디자인을 발표하며 현대적 이미지를 강화했다.

신형 푸조 e-208 사진=푸조이미지 확대보기
신형 푸조 e-208 사진=푸조

모델 라인업과 전동화 전략

두 브랜드 모두 폭넓은 차량 라인업과 전동화 전략으로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푸조의 승용차는 소형 208, 준중형 308·508, 중형 SUV 2008·3008·5008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 모델은 대부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나 전기차 버전으로도 제공되며, e-208, e-2008 등 순수 전기차도 선보였다. 승객용 외에도 파트너(Partner), 익스퍼트(Expert), 박서(Boxer) 같은 상용 밴에도 e-버전이 있다. 브랜드 측은 2025년까지 모든 차량(승용+상용)을 전기차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곧 푸조의 12개 전기차 모델(승용 9종, 상용 3종)을 의미한다.

또한 ‘E-LION 프로젝트’를 통해 2038년까지 탄소중립을 추구하고 있으며, 브랜드 하이엔드 모델로 WEC 르망24시 경주용 하이퍼카 9X8(전동 하이브리드)을 개발하는 등 모터스포츠 정신도 유지 중이다.

르노 역시 전동화에 적극적이다. 2012년 첫 ZOE 이후 지금까지 약 35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하며 8개 이상의 전기차 모델을 운영해 왔고, 클리오·캡쳐·뉴메간·아르카나(Clio·Captur·New Mégane·Arkana) 등 주력 차량에 E-TECH 하이브리드/플러그인 기술을 적용했다. 2022년부터는 출시되는 모든 신차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버전을 포함시키기로 했으며, 이를 통해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CO₂ 배출을 50% 감소, 유럽 시장에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2021년 출범한 전기차 전문 계열사 앰페어(Ampere)를 통해, 세닉 E-테크, 메간 E-테크, 르노 5 E-테크, 르노 4 E-테크, 전기 트윙고 등 미래 모델 7종을 2031년까지 순차 출시할 계획이다.

르노 4 E-테크 사진=르노이미지 확대보기
르노 4 E-테크 사진=르노

글로벌 시장과 경쟁 구도

글로벌 시장에서 푸조와 르노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때로 협력하기도 한다. 푸조는 스텔란티스(Stellantis) 그룹 소속으로 유럽,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130여 개국에 진출해 있다. 르노 그룹도 130여 개국에 약 17만 명의 직원을 두고 있고, 닛산·미쓰비시와의 얼라이언스를 통해 아시아·북미 시장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유럽 완성차 시장에서 양사는 메르세데스, 폭스바겐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선두권을 다투는 중이다. 최근에는 급성장하는 중국산 소형 전기차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2025년부터 양사가 유럽연합에 일본의 경차(kei-car) 같은 소형차 규격 도입을 공동 요청하며, 유럽형 ‘e-카(e-car)’ 육성을 촉구하고 있다. 이처럼 시장 경쟁 속에서도 프랑스 산업계를 대표하는 두 회사는 공통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며 협력하고 있다.

푸조 204 사진=푸조이미지 확대보기
푸조 204 사진=푸조

프랑스 산업과 국민 정서의 상징

푸조와 르노는 브랜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프랑스인들에게 푸조는 “애국자의 차”로, 르노는 “국민차”로 기억된다. 전쟁과 혁신의 역사 속에, 푸조의 사자는 강인함과 자유를, 르노의 다이아몬드는 전진과 실용을 의미해 왔다. 한때 파리에 푸조 택시가 넘쳐났고, 농촌과 도시를 누볐던 르노 4는 소박한 일상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두 회사는 프랑스 내수경제를 견인하는 중요한 고용주이며, 고유의 디자인과 기술로 ‘메이드 인 프랑스’ 자동차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결국, 푸조와 르노는 서로 다른 색깔과 전략으로 경쟁하면서도 공존해 왔으며, 프랑스 자동차 산업의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로써 인식되어진다.


육동윤 글로벌모빌리티 기자 ydy33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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