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국내 시장에서는 흔히 ‘쏘나타’나 ‘그랜저’ 같은 중형 이상급 모델로 인식되지만, 해외 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로 소비자를 만난다. 특히 신흥시장과 중남미·동남아·중동 등에서는 현대차가 ‘소형차의 제국’을 일구고 있다. 각국의 도로 사정과 생활환경, 소득 수준에 맞춰 개발된 ‘현지 전략형’ 모델들이 그 중심에 있다.
브라질에서는 ‘HB20’이 대표적이다. 이 모델은 오직 브라질 소비자만을 위해 설계된 현지 전용 차로, 2012년 데뷔 이후 꾸준히 판매 상위권을 지켜왔다. 1.0L 또는 1.6L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고, 세단과 해치백, SUV형 ‘HB20X’까지 라인업을 확장해 소비자 선택지를 넓혔다. 주요 경쟁자는 피아트의 ‘모비’와 GM의 ‘쉐보레 오닉스’로, 가격과 연비, 실내 공간의 균형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시장에서는 ‘그랜드 i10’이 현대차의 엔트리카 역할을 맡고 있다. 1.0~1.2L급 엔진과 콤팩트한 차체를 바탕으로 저렴한 유지비와 실용성을 앞세운 이 모델은, 현지 젊은층과 렌터카 시장에서 호평을 얻고 있다. 경쟁 모델로는 중국 브랜드 지리의 ‘엠그란드’, 그리고 SAIC 계열 MG의 ‘MG 5’가 있다. 두 모델 모두 합리적인 가격과 고속도로 주행 성능을 갖추고 중동 내 소형 세단 시장에서 현대차와 경쟁 중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아이오닉’이나 ‘코나’가 아니라 ‘스타게이저’와 ‘크레타’가 시장을 이끈다. 하지만 그보다 한 체급 작은 차종으로는 ‘그랜드 i10’과 ‘엑센트(베르나)’ 후속 모델들이 현지 전용 사양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가격 경쟁력이 핵심이다. 다이하츠 ‘아일라’, 스즈키 ‘S-프레소’ 등 일본 브랜드들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이 시장에서 현대차는 디자인과 품질로 승부를 건다.
멕시코, 칠레, 페루 등 남미 여러 나라에서도 현대차는 ‘현지화된 작은 차’를 통해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북미와 유럽에서의 전기차 전략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가격 민감도가 높은 시장에서는 ‘얼마나 저렴하게, 얼마나 실용적으로’가 곧 시장 경쟁력이며, 현대차는 이를 정확히 읽고 전략형 모델을 투입해왔다.
각 시장에 맞춘 플랫폼, 적정 배기량, 현지 공장 생산, 그리고 현지 소비자 취향을 반영한 디자인과 사양까지. 현대차는 대형 SUV와 전기차 중심의 북미·유럽 전략과는 달리, 신흥시장에서는 작지만 강한 모델로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현대차의 세계화’는 결코 하나의 얼굴이 아니다. 각기 다른 시장에 맞춘 다중 전략의 총합이, 그 브랜드를 오늘날 글로벌 메이커로 키운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