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델은 조용히 사라지지만, 어떤 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존재감이 오히려 커진다. 시대를 앞서갔거나, 특별한 주행 감성을 남겼거나, 희소성과 디자인으로 기억된 모델들은 ‘단종’ 이후 오히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대표적인 예가 혼다 S2000이다. 1999년부터 2009년까지 생산된 이 로드스터는 고회전 자연흡기 엔진과 정밀한 핸들링으로 전 세계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다. 단종된 지 15년이 넘었지만, 중고차 시장에선 여전히 프리미엄이 붙는다.
BMW Z8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007 언리미티드’에 등장하며 전 세계의 시선을 모았던 이 모델은 2000년부터 3년간 약 5700대만 생산됐다. 당시엔 고가였던 탓에 판매는 부진했지만, 지금은 클래식카 경매에서 억대에 거래되는 컬렉터 아이템으로 부상했다.
일본차 중에선 토요타 셀리카나 닛산 실비아도 단종 이후 오히려 ‘로망의 차’로 남았다. 특히 실비아는 드리프트 문화의 상징으로, 세대를 거쳐 등장한 S13, S14, S15 모델이 여전히 튜닝 마니아 사이에서 회자된다.
이런 차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당시에는 너무 앞서 있었다’는 것. 시대를 주도하진 못했지만, 역행하며 정체성을 지켰고, 그 고유성이 시간이 지나며 가치를 발했다.
그렇다면, 지금 단종 수순을 밟고 있는 2025년 모델들 중에도 미래의 클래식이 될 후보는 없을까?
BMW M8 컴페티션은 가장 유력한 후보다. 최고출력 617마력의 4.4리터 V8 바이터보 엔진, 그리고 3초대 초반의 제로백 성능. 고성능 쿠페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 차는 전동화 시대가 본격화되면 더욱 희귀해질 것이다. 특히 BMW가 향후 8시리즈 라인업 자체를 접는다는 계획을 내놓은 만큼, 이 모델은 ‘V8의 마지막 함성’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렉서스 LC500도 빠질 수 없다. 여전히 자연흡기 V8을 고집하는 이 GT 쿠페는 정제된 디자인과 정숙성, 그리고 드문 파워트레인 조합으로 인해 향후 하이브리드 LC와는 또 다른 차별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포르쉐 718 카이맨과 박스터 역시 주목할 만하다. 미드십 구조에 평면 6기통 자연흡기 엔진을 얹은 이 모델들은 후속 EV 모델과의 감성 차별이 명확한 만큼, 기존 내연기관 버전은 ‘올드 포르쉐’의 정통 계승자로 부각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