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진화했지만, 감성은 뒤처졌다.’ 세계적인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가 최근 출시한 신형 GT 모델 ‘아말피(Amalfi)’를 통해 기술적 회귀를 선언했다. 이전 모델 로마(Roma)의 후속으로 등장한 아말피는 더 강력한 V8 엔진을 탑재하면서도 하이브리드화는 피했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킨 건 파워트레인이 아닌 스티어링 휠이다.
페라리는 고객들의 지속적인 불만에 따라, 기존에 도입했던 터치 감응식 스티어링 휠 인터페이스를 폐기하고 다시 ‘물리 버튼’으로 돌아간다고 발표했다. 아말피는 그 선봉장이며, 앞으로 출시되는 모든 신차에는 물리적 버튼이 기본 사양으로 탑재될 예정이다.
페라리 상업 총괄 에넬리코 갈리에라(Enrico Galliera)는 “물리 버튼은 앞으로 우리가 출시하는 모든 신차에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개발 책임자 지안마리아 풀젠지(Gianmaria Fulgenzi)는 기존 차량 소유자들을 위한 레트로핏 키트(업그레이드 패키지)도 제공할 계획이라며, 차량 전체가 아닌 스티어링 휠의 센터 섹션만 교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터치 키의 도입은 SF90을 비롯한 중후기 페라리 모델에서 시작됐다. 당시엔 최신 기술을 빠르게 반영하겠다는 의지가 있었지만, 실제 사용성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갈리에라는 “고객들은 운전 중에 눈을 도로에 두고 손은 핸들 위에 두길 원한다. 하지만 터치식 버튼은 그 목적에 반했다”고 인정했다. 스마트폰에서 얻은 영감을 자동차에 이식했지만,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같은 사용자 불편이 판매 실적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페라리는 2024년에 1만3752대를 출고해 전년 대비 0.7% 증가한 실적을 기록했고, 2026년까지의 주문량이 이미 확보돼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브랜드의 정체성과 사용자 경험을 중시하는 페라리로서는, 단순한 판매량보다 고객의 피드백을 반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페라리의 이 같은 변화는 독일 폭스바겐도 공유하고 있다. 지난해 폭스바겐은 골프 GTI와 R, R-Line 트림에 다시 물리 버튼을 도입했으며, 향후 출시될 모델에도 센터 콘솔의 버튼 배치를 일부 복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대세는 여전히 스크린 중심이다. 다수의 브랜드들이 실내 버튼을 없애고 터치 인터페이스와 디지털 디스플레이에 집중하고 있으며, 페라리조차 조수석 전용 디스플레이를 새롭게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