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모빌리티

글로벌모빌리티

[그때그차는] 시대를 앞서간 걸작, KGM 무쏘의 찬란한 전설과 유산

메뉴
0 공유

뉴스

[그때그차는] 시대를 앞서간 걸작, KGM 무쏘의 찬란한 전설과 유산

투박한 지프의 시대를 끝내고 프리미엄 SUV의 서막을 열었던 코뿔소의 포효

육동윤 기자

기사입력 : 2025-12-31 08:03

KGM 무쏘 사진=KGM이미지 확대보기
KGM 무쏘 사진=KGM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서 1993년은 매우 특별한 해로 기억된다. 당시 도로를 점령하고 있던 SUV들은 대부분 군용 차량의 DNA를 그대로 이어받아 각지고 투박한 이른바 지프차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승차감보다는 험로 주파 능력이 우선이었고 세련미보다는 실용성이 강조되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시장의 흐름을 단숨에 바꾸어 놓으며 등장한 모델이 바로 쌍용자동차의 무쏘다. 프로젝트명 FJ로 명명되어 개발된 이 차량은 단순한 신차 출시를 넘어 한국 SUV 시장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꾼 혁명적 존재였다.

무쏘가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가장 먼저 충격을 안겨준 것은 다름 아닌 외관 디자인이었다. 당시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은 자체적인 디자인 역량이 부족해 해외 모델을 라이선스 생산하거나 기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쌍용자동차는 과감하게 영국 왕립예술대학의 켄 그린리 교수에게 디자인을 의뢰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쌍용 무쏘 사진=KGM이미지 확대보기
쌍용 무쏘 사진=KGM

켄 그린리 교수는 돌고래의 매끄러운 곡선과 코뿔소의 강인한 골격을 조화시켜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유선형의 파격적인 실루엣을 완성했다. 직선 위주의 디자인이 지배하던 시장에서 무쏘의 부드러운 곡선과 공기역학적인 설계는 마치 미래에서 온 자동차 같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디자인 못지않게 무쏘를 전설의 반열에 올린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심장부에 위치한 메르세데스-벤츠의 엔진이다. 1990년대 초 쌍용자동차는 기술적 도약을 위해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와 전략적 기술 제휴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무쏘에는 벤츠의 직렬 5기통 디젤 엔진인 OM602 엔진이 탑재됐다. 당시 국산 디젤 엔진은 소음과 진동이 심하고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했으나 벤츠 엔진을 품은 무쏘는 이러한 편견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영하 40도의 혹한기 테스트와 영상 50도의 혹서기 테스트를 견뎌내며 증명된 이 엔진의 내구성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무쏘는 100만 킬로미터를 주행해도 엔진 보링이 필요 없는 차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무쏘의 등장은 마케팅 측면에서도 프리미엄 전략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쌍용자동차는 무쏘를 단순히 짐을 싣거나 험로를 달리는 차로 홍보하지 않았다. 대신 성공한 도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성하는 프리미엄 SUV로 포지셔닝했다. 가죽 시트와 우드 그레인 등 당시 고급 세단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실내 사양을 대거 적용했으며 고속 주행 시의 정숙성을 강조하며 고소득 전문직과 경영자 층을 공략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무쏘를 부의 상징으로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이후 등장하는 국내 럭셔리 SUV 시장의 기틀을 마련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무쏘가 가진 또 다른 강점은 프레임 바디 구조가 주는 압도적인 안정성이었다. 3중 구조의 강철 프레임은 사고 발생 시 승객을 보호하는 강력한 방패 역할을 했으며 오프로드 주행 시 차체 뒤틀림을 최소화하는 신뢰를 줬다. 이러한 기계적 완성도는 무쏘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모델로 만들었다. 특히 아프리카 종단이나 죽음의 경주로 불리는 다카르 랠리 등에 출전해 완주에 성공하며 국산 자동차의 위상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쌍용 무쏘 사진=KGM이미지 확대보기
쌍용 무쏘 사진=KGM

진화하는 코뿔소, 7인승 모델과 무쏘 스포츠의 등장

무쏘는 초기 5인승 모델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시장의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변모했다. 출시 초기에는 고급 SUV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5인승 위주로 생산되었으나, 다인승 차량에 대한 세제 혜택과 대가족 이동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1990년대 중반 7인승 모델을 라인업에 추가했다. 이는 무쏘가 단순한 과시용 차량을 넘어 실용적인 패밀리카로서의 입지까지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3열 좌석을 추가하면서도 특유의 유선형 차체 라인을 해치지 않았던 설계는 당시 설계진들의 고심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더 나아가 무쏘는 2002년, 국내 자동차 시장에 'SUT(Sports Utility Truck)'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다시 한번 파란을 일으켰다. 바로 무쏘 스포츠의 등장이다. 기존 무쏘의 세련된 전면부와 승용 감각의 실내를 유지하면서도 후면을 개방형 적재함으로 개조한 이 모델은 레저 활동을 즐기는 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화물차로 분류되어 저렴한 자동차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으며, 이는 훗날 액티언 스포츠, 코란도 스포츠를 거쳐 현재의 렉스턴 스포츠로 이어지는 KGM 픽업트럭 계보의 시초가 되었다.

KGM 무쏘 사진=KGM UK이미지 확대보기
KGM 무쏘 사진=KGM UK

세계를 누비는 내구성과 기술적 완성도

무쏘의 가치는 국내보다 험난한 환경의 해외 시장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메르세데스-벤츠와의 협업은 단순히 엔진을 얹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차량 전체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촉매제가 되었다. 무쏘에 적용된 전자식 파트타임 4륜 구동 시스템은 주행 중에도 스위치 조작만으로 구동 방식을 변경할 수 있는 '쉬프트 온 더 플라이(Shift-on-the-fly)' 기능을 지원해 당시 운전자들에게 혁신적인 편의성을 제공했다. 또한 ABS와 에어백 등 당시 SUV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안전 사양들을 선제적으로 도입하며 프리미엄 모델로서의 격을 높였다.

무쏘의 기계적 신뢰성은 가혹한 모터스포츠 무대에서도 증명됐다. 1994년부터 출전하기 시작한 파라오 랠리와 다카르 랠리에서 무쏘는 쟁쟁한 글로벌 브랜드의 차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완주에 성공했다. 특히 순정 상태에 가까운 세팅으로도 지옥의 코스를 견뎌내는 모습은 외신들로부터 '동양에서 온 신비로운 코뿔소'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성과 덕분에 무쏘는 유럽과 호주 등지에서 견고한 마니아층을 형성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의 엠블럼을 달고 판매될 정도로 그 품질을 공인받기도 했다.

2005년 쌍용 무쏘 사진=KGM이미지 확대보기
2005년 쌍용 무쏘 사진=KGM

마침표를 찍고 전설이 된 이름, 그 뒤를 잇는 유산

2005년, 무쏘는 후속 모델인 카이런과 상위 모델인 렉스턴에게 자리를 넘겨주며 공식적인 단종을 맞이했다. 약 1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단일 모델명을 유지하며 생산된 무쏘는 한국 자동차 산업이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으로 나아가는 과도기를 상징하는 모델이었다. 비록 생산은 중단되었지만, 무쏘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감은 여전하다. KGM은 현재도 영국을 비롯한 일부 해외 시장에서 렉스턴 스포츠를 '무쏘(Musso)'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며 과거의 영광과 신뢰를 마케팅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오늘날 올드카 시장에서 무쏘는 가장 대접받는 국산 SUV 중 하나다. 벤츠 엔진 특유의 엔진 음을 그리워하는 이들이나 90년대의 향수를 찾는 수집가들에게 무쏘는 여전히 현역이다. 특히 초기형 모델의 경우 켄 그린리 교수의 순수한 디자인 언어가 잘 보존되어 있어 미학적 가치 또한 높게 평가받는다. 무쏘는 단순히 한때 잘 팔렸던 자동차를 넘어, 한국 자동차도 세계 수준의 디자인과 성능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상징적 존재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무쏘가 남긴 기술적 토대와 브랜드 이미지는 오늘날 KGM이 SUV 전문 브랜드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가장 큰 뿌리가 되었다. 시대를 앞서갔던 유선형의 코뿔소는 이제 도로 위를 달리는 전설이 되어 우리에게 자동차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육동윤 글로벌모빌리티 기자 ydy332@g-enews.com
<저작권자 © 글로벌모빌리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