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모터사이클 시장은 한때 ‘스쿠터=출퇴근 발’과 ‘대배기량=소수의 취미’로 갈라져 있었다. 팬데믹을 지나며 배달 수요가 폭발했고, 동시에 라이딩을 여가로 즐기는 인구가 늘었다. 그 사이 시장의 키워드는 조용히 바뀌었다. ‘가성비’에서 라이프스타일을 증폭시키는 ‘개성비’로. 125급 도심 스쿠터, 300급 입문 네이키드, 700급 미들급 어드벤처, 1000급 플래그십 로드스터·슈퍼스포츠까지, 한국에서 살 수 있는 브랜드들은 저마다의 해석으로 이 변화에 ‘브랜드의 얼굴’을 내세운다.
[COVER STORY] 모터사이클의 현재...‘가성비’에서 ‘개성비’까지, 브랜드 지형 재편
일본 4사는 한국에서 여전히 ‘기본값’이다. 혼다는 도심형 스쿠터와 미들급 네이키드·투어러에서 탄탄한 라인업과 정비 네트워크로 신뢰를 쌓았다. 야마하는 스쿠터에서 스포츠까지 ‘달리는 즐거움’의 캐릭터가 확실하다. 가와사키는 네이키드·슈퍼스포츠·레트로(예: Z 계열)에서 강력한 팬덤이, 스즈키는 스포츠·투어러에서 ‘균형감’이 강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타면 편하고, 탈수록 수긍되는’ 기계 밸런스와 부품 접근성이다. 입문자가 첫차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대보는 잣대가 바로 이 표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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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브랜드는 ‘캐릭터’로 산다. BMW 모토라드는 어드벤처의 대명사 GS, 미들급 로드스터, 전동 스쿠터까지 브랜드 세계관이 분명하다. 투어링의 편의·안전 전장, 긴 주행거리, 높은 잔존가치가 프리미엄의 근거가 된다. 두카티는 스포츠와 네이키드, 스크램블러까지 이탈리안 감성과 최신 전자장비로 ‘타는 순간 설명이 끝나는’ 설득법을 구사한다. 트라이엄프는 브리티시 모던 클래식과 미들급 스포츠에서 감성·완성도의 균형을 맞췄다. 이들의 핵심은 ‘차가 사람을 바꾼다’는 경험을 파는 것, 그래서 시승 한 번이 구매 결정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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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M은 “Ready to Race”라는 표어처럼 싱글·트윈 미들급에서 가벼운 차체와 직설적인 세팅으로 ‘달리기’의 기준을 끌어올렸다. 허스크바나는 같은 골격을 보다 미니멀한 북유럽 디자인으로 해석해 도시 라이프스타일과 연결한다. 가스가스는 오프로드·트라이얼의 뿌리를 바탕으로 접근 가능한 가격과 명확한 용도를 제시한다. 한국 라이더가 최근 가장 많이 넘어가는 장르가 ADV·듀얼스포츠라는 점에서, 이 세 브랜드의 존재감은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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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릴리아는 중·대배기 스포츠와 네이키드에서 섀시·전자제어의 날카로운 감각이 강점이다. 모토 구찌는 종치기처럼 울리는 ‘가로배치 V-트윈’의 존재감 하나로 클래식·투어링을 관통한다. 베스파는 금형 자체가 명사다. 출퇴근도 화보가 되는 ‘아이코닉 스쿠터’의 효용을 한국 도심이 증명한다. 베넬리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이탈리안 감성의 입구를 넓힌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탈 때마다 거울·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이 만족스럽다”는 점—디자인이 구매 후 만족을 오래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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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저의 세계에서는 배기량, 토크 수치보다 ‘이름과 이야기’가 더 큰 변수다. 할리데이비슨은 커스텀 컬처·챕터 라이딩·정비 생태계가 탄탄해 ‘브랜드로 산다’는 개념을 확립했다. 인디언은 전통 디자인에 현대 전장과 주행 세팅을 더해 선택지를 넓힌다. 한국 시장에선 도심·근교 위주의 크루즈 수요가 꾸준해, 두 브랜드의 ‘느림의 미학’은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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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엔필드는 ‘속도보다 경험’에 초점을 맞춘 장르를 잘 안다. 클래식 포지션·낮은 시트고·순정 커스텀 파츠 생태계로 입문 장벽을 낮춘다. CF모토·QJ·존테스 등 중국계 브랜드는 300~800cc 미들급에서 전자장비를 적극 탑재하면서도 접근 가격을 제시한다. 수입사 보증·부품망이 정착되는 속도가 관건이지만, “가볍게 시작해 점프 업”을 원하는 라이더에겐 분명 매력적인 옵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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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브랜드는 배달·상업 수요와 합리적 개인 수요를 버팀목 삼아 생태계를 지켜왔다. 과제는 두 가지다. 첫째, 300~500급 글로벌 표준 플랫폼을 얼마나 빠르게, 안정적으로 내놓느냐. 둘째, 정비와 중고 잔존가치 신뢰를 회복·확장하느냐. 전동화 전환기에는 국내 부품·서비스망이 강점이 될 여지가 있다.
전기 스쿠터의 현실: 보조금, 배터리, 네트워크
전기 스쿠터는 이미 택배·배달 업계의 표준 장비가 됐다. 니우(NIU), 세그웨이-나인봇, 국산 다수 브랜드가 도심에서 보조금과 낮은 유지비를 무기로 점유율을 넓히는 중이다. 다만 배터리 교환 인프라와 리스·보험 패키지, 내구성 데이터가 ‘개인 구매’ 확대의 관건이다. 전동화는 ‘언젠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가 핵심 질문이다.
한국 시장만의 결정 변수: 면허·보험·정비, 그리고 커뮤니티
한국은 자동차 중심의 도로 구조, 주차·톨 문제, 보험료 체계가 모터사이클 선택을 크게 좌우한다. 그래서 브랜드 선택은 “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까운 공식 서비스센터, 보험·금융 패키지, 액세서리·보호장비 접근성, 무엇보다 로컬 라이딩 커뮤니티의 밀도가 실제 만족을 갈라놓는다. 브랜드가 운영하는 정기 투어·트랙 데이·체험 행사와 라이더 교육 프로그램은 이제 필수 상품이다. 기계의 성능만큼 ‘함께 타줄 사람’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브랜드 가치를 만든다.
장르별 ‘브랜드 얼굴’ 한눈에 읽기
도심 스쿠터는 혼다·야마하·베스파가 서로 다른 미학으로 공존한다. 입문 네이키드는 혼다·야마하·가와사키가 표준을 제시하고, 트라이엄프·두카티가 감성의 변주를 더한다. 미들급 어드벤처는 BMW·KTM·혼다가 서로 다른 로드·오프로드 비중으로 취향을 쪼갠다. 크루저는 할리데이비슨·인디언의 헤리티지가 여전히 강력하며, 로열 엔필드가 ‘클래식의 문턱’을 낮춘다. 트랙·서킷을 지향한다면 아프릴리아·두카티·야마하가 ‘기계와 전자의 정점’을 보여준다. 전기 스쿠터는 니우·국산 브랜드 중심으로 보조금과 TCO(총소유비용) 게임이 본격화됐다.
초보를 위한 간단한 로드맵
첫째, 통장보다 몸을 먼저 지킨다. 장비 예산은 차값의 일정 비율로 고정하고, 헬멧·재킷·글러브·부츠는 신차 출고일보다 먼저 산다. 둘째, 서비스 지도를 펼친다. ‘가까운 공식 센터’는 잔고장보다 더 확실한 만족 변수다. 셋째, 시승은 같은 날 두 모델 이상을 연속으로 타본다. 기억은 비교 속에서만 선명해진다. 넷째, 커뮤니티를 확인한다. 브랜드의 ‘사람 망’은 오너의 성장 속도와 즐거움을 결정한다.
‘무슨 차를 살까’에서 ‘무슨 라이더가 될까’로
한국에서 모터사이클을 산다는 건, 점점 더 취향과 정체성을 고르는 일에 가까워졌다. 일본 4사의 표준, 유럽 프리미엄의 세계관, 미국 크루저의 서사, 이탈리아의 디자인, 인도·중국의 접근성, 토종 메이커와 전동화의 기회까지. 브랜드는 많아졌고, 길은 더 다양해졌다. 이제 질문을 바꿔보자. “무슨 차를 살까?”가 아니라 “나는 어떤 길을, 누구와, 어떻게 달릴 것인가?”라고. 답은 쇼룸 바깥, 주말의 코너와 평일 밤의 카페에서 더 빨리 찾아온다. 그리고 그때, 브랜드는 단지 출발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