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럭셔리 자동차 시장은 20세기 초부터 두 개의 브랜드가 양분해왔다. 제너럴모터스(GM) 산하의 캐딜락(Cadillac)과 포드(Ford)의 프리미엄 라인업인 링컨(Lincoln)이다.
유럽의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일본의 렉서스가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을 재편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들은 이미 ‘미국식 럭셔리’의 기준을 세우며 정면으로 경쟁해왔다. 두 회사의 관계는 미국 산업과 정치, 대중문화가 교차하는 ‘미국 럭셔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귀족의 문장 vs 대통령의 이름… 태생부터 엇갈린 정체성
캐딜락의 기원은 미국의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를 개척한 프랑스 장교 앙투안 드 라 모트 캐딜락에 뿌리를 둔다. 그의 문장을 엠블럼으로 삼으며 품격과 귀족성을 강조해온 브랜드는 태생부터 ‘유럽식 기품’을 지향했다.
반면, 링컨은 미국 정치사에서 출발한다. 창립자 헨리 릴랜드가 존경하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며, 브랜드 자체에 국가적 상징성을 부여했다. 출발점부터 캐딜락이 유럽 귀족을 연상시키는 고급스러움을 표방했다면, 링컨은 권위와 책임, 공공성을 품은 미국적 가치에 더 가까웠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브랜드 모두 미국 자동차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헨리 릴랜드가 각각 만들었다는 점이다. 릴랜드는 1902년 캐딜락을 만든 뒤 이를 GM에 매각하고, 1917년 다시 링컨을 창립했지만 경영난으로 1922년 포드에 인수된다. 두 브랜드 모두를 탄생시킨 같은 창립자가 서로 다른 그룹에 흡수되며 미국 럭셔리 시장을 양분하게 된 이 역사는 지금도 업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꼽힌다.
1930~50년대는 캐딜락이 미국 고급차의 기준을 세우며 전성기를 맞은 시기다. 캐딜락은 전기식 스타터, 동기식 변속기, 미국 최초의 V16 엔진, 자동변속기 ‘하이드라매틱’ 등 각종 신기술을 연이어 선보이며 “세계의 표준(Standard of the World)”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특히 1930년 등장한 V16 엔진은 캐딜락을 단숨에 ‘궁극의 미국 럭셔리’로 끌어올린 결정적 기술이었다. 당시 미국 자동차 시장은 대량생산 시대의 초입에 있었으나, 캐딜락은 고성능·고정숙·고급 소재를 앞세워 기술적 우월성을 과시하며 경쟁자와 격을 달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후 호황기에는 더욱 화려했다. 1959년형 캐딜락 엘도라도는 당시 미국 사회를 지배하던 우주개발 열풍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큼직한 크롬 장식과 로켓 모양 테일램프, 하늘을 찌를 듯 솟은 핀테일 디자인은 과장된 듯하지만, 바로 그 ‘오버스러운 멋’이 캐딜락을 대중문화의 중심에 놓았다. 엘비스 프레슬리, 할리우드 스타, 뮤지션들이 즐겨 타며 ‘성공한 미국인의 차’로 자리 잡았고, 영화·뮤지컬에서도 끊임없이 등장하며 상징성을 키웠다. 캐딜락은 이 시기 미국적 번영과 낙관주의, 그리고 자신감의 아이콘이었다.
정치의 심장부에 자리한 링컨… 대통령의 차로 굳어진 위상
캐딜락이 혁신과 화려함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했다면, 링컨은 미국 정치의 심장부와 연결되며 독자적 위상을 갖췄다. 그 중심에는 링컨 컨티넨탈이라는 기념비적 모델이 있다. 특히 1961년형 컨티넨탈은 ‘대통령의 차’라는 이미지를 굳힌 결정적 모델로 꼽힌다. 케네디 대통령이 탑승했던 의전 차량으로 널리 알려졌고, 미국 비밀경호국과 공동으로 개발된 초기 의전용 보안 차량이라는 점도 역사적 의미를 더했다.
링컨은 이 시기 ‘품위 있는 미국 럭셔리’를 상징하는 브랜드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엔지니어링의 혁신보다 정숙함, 안정감, 균형 잡힌 디자인을 강조했으며, 정치인·재계 지도자·정부기관 의전 차량으로 폭넓게 사용되며 ‘권위의 차’라는 이미지를 쌓아갔다. 캐딜락이 화려함과 기술의 상징이었다면, 링컨은 조용한 품위와 사회적 신뢰를 상징하는 브랜드였던 셈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는 두 브랜드에 큰 시험대였다. 유럽 제조사가 효율성·운동 성능을 앞세워 북미 시장을 공격적으로 파고드는 동안, 캐딜락과 링컨은 대배기량·대형 세단 중심의 라인업이 역풍을 맞아 판매가 빠르게 흔들렸다. 캐딜락은 연비 향상을 위해 실린더를 자동으로 전환하는 ‘V8-6-4’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당시 전자제어 기술의 한계로 잦은 고장과 진동 문제가 이어지며 대표적 실패 사례로 기록됐다. 링컨 역시 안정감 있는 대형 세단이라는 이미지는 유지했으나, 메르세데스 S클래스나 BMW 7시리즈와 비교해 기술력에서 뒤처졌다는 평가가 늘어났다.
두 브랜드 모두 오일쇼크 이후 잇달아 등장한 규제 환경과 소비 트렌드 변화 속에서 존재감이 약해졌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었다. 과거의 영광만으로는 더 이상 ‘미국식 럭셔리’의 입지를 지킬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 시기였다.
1990~2000년대는 미국식 대형 세단이 사실상 마지막 황혼기를 맞은 시기다. 링컨 타운카와 캐딜락 드빌(DTS)·세빌(STS)은 여전히 공항 셔틀·리무진 시장에서 꾸준한 수요를 확보하며 미국 고급차의 전통을 보여주었지만, 글로벌 시장의 패러다임은 이미 SUV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특히 링컨 타운카는 ‘미국 리무진의 표준’으로 불리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남겼다. 반면 캐딜락은 북스타일 V8 엔진을 중심으로 고급 세단 이미지를 유지했지만, 엔진의 내구성 논란이 이어지며 시장의 기대에 완전히 부응하지는 못했다. 두 브랜드 모두 미국식 대형 세단의 명맥을 이어간 마지막 주자였고, 이 시기를 끝으로 미국 럭셔리 세단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1980~1990년대 미국 시장에서는 BMW, 메르세데스-벤츠, 렉서스 등 유럽·일본 브랜드들이 빠르게 성장했다. 정교한 핸들링, 고급 내장재, 첨단 기술 등 ‘프리미엄의 새로운 기준’이 제시되면서, 전통적으로 편안함과 대형 세단 중심이었던 캐딜락·링컨의 경쟁력은 점차 흔들렸다.
2000년대 초 캐딜락은 "아트 앤드 사이언스(Art & Science)" 디자인 철학으로 반격을 시도했다. CTS, STS, XLR 등 날카로운 엣지의 디자인은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었고, CTS-V 같은 고성능 모델은 독일 프리미엄에 정면 도전장을 냈다. 반면 링컨은 고급 트림 중심의 전략을 지속하며 정체성에 다소 혼란을 겪었지만, MK 시리즈와 네비게이터로 브랜드 감성을 재정립하려 했다.
SUV 시대의 개막, 링컨이 다시 웃다
2010년대 이후 북미 시장에서는 대형 SUV가 ‘럭셔리의 기준’으로 자리잡았다. 이 변화는 링컨에겐 기회였다. 1998년 등장한 1세대 네비게이터는 럭셔리 SUV의 선구자였고, 이후 꾸준한 업그레이드를 거치며 링컨의 상징이 됐다. 특히 4세대 네비게이터는 알루미늄 바디, 고급액티브 서스펜션, 럭셔리 3열 공간 등을 갖추며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 치열한 1:1 경쟁 구도를 만들었다.
반면 캐딜락은 에스컬레이드의 압도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세단 중심 라인업이 비교적 오래 유지되면서 ‘SUV 시대의 전환’에 다소 늦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5세대 에스컬레이드에 이르러 최첨단 커브드 OLED 디스플레이, 슈퍼크루즈 등으로 경쟁력을 되찾으며 북미 플래그십 SUV 시장을 다시 흔들기 시작했다.
전기차 시대, 서로 다른 노선 선택
두 브랜드의 미래 전략은 공통점도, 차이점도 있다. 공통점은 ‘전동화는 피할 수 없다’는 사실. 그러나 속도와 방향은 확연히 다르다.
캐딜락은 GM의 얼티엄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2030년까지 전 차종 EV 전환”이라는 공격적인 목표를 세웠다. 리릭(Lyriq), 셀레스틱(Celestiq) 등 고급 전기차 라인업은 ‘미국식 하이테크 럭셔리’를 구현한다. 리릭은 가성비 좋은 럭셔리 EV로 호평을 받고 있으며, 셀레스틱은 장인 수작업 기반의 ‘미국식 커스터마이즈 럭셔리’의 정점을 보여준다.
반면 링컨은 보다 점진적인 전략을 택했다. 포드의 모델 e 플랫폼과 공유하는 하이브리드·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기반으로 전동화를 확대하고 있다. ‘링컨 스타 콘셉트(Star Concept)’ 이후 순수 전기 SUV 출시가 예고돼 있지만, “완전 EV 전환” 시점은 상대적으로 느리다. 이는 링컨의 핵심 시장이 북미이며, 장거리 주행·대형 SUV 수요가 여전히 높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전통 럭셔리의 ‘감성’은 어떻게 계승되는가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두 브랜드의 ‘클래식 DNA’를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캐딜락은 과거의 ‘패기 있는 디자인’과 ‘기술 주도 브랜드’를 계승하며, 미래에는 “미국식 미래기술 럭셔리”라는 정체성을 강조한다. 실내 조명, 대형 디스플레이, 직관적 사용자 경험 등을 결합한 ‘테크 세비 럭셔리(Tech-Savvy Luxury)’를 지향한다.
링컨은 오히려 감성에 집중한다. 링컨은 ‘조용한 비행(Quiet Flight)’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앞세워 정숙성, 편안함, 실내 소재 등을 강화해 왔다. 이는 전동화 시대와 맞물리며 더욱 부각될 수 있는 전략이다. 링컨 EV 콘셉트가 마치 ‘움직이는 라운지’처럼 설계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끝나지 않은 라이벌 구도… 미국 럭셔리의 운명은?
캐딜락과 링컨의 경쟁은 시대에 따라 형식이 달라졌지만, 본질적으로 ‘전통과 변화의 균형’을 맞추는 싸움이다. 두 브랜드는 한때 유럽 브랜드들의 공세 속에 존재감이 약해졌지만, 북미 소비자의 취향 변화, 기술 발전, SUV 시대의 도래 속에서 다시금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이 둘은 단순한 자동차 브랜드가 아니라 ‘국가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플래그십 SUV 시장에서 에스컬레이드와 네비게이터가 맞붙는 구도는 오늘날에도 가장 강력한 ‘미국 럭셔리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의 승자는 누구인가
전기차 전환과 글로벌 시장 확대라는 두 과제를 앞둔 지금, 캐딜락과 링컨의 방향성은 더욱 분명하게 갈린다. 궁극적으로 승부는 ‘전기차 시대에도 브랜드 헤리티지를 어떻게 해석하고 구현하는가’에 달려 있다. 미국식 전통 럭셔리가 미래에도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두 브랜드의 다음 행보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