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충전 인프라 부족, 각국의 전기차 보조금 축소, 관세 인상, 소비 위축 등이 겹치며 완성차 업체들이 ‘라인업 다이어트’에 나서고 있다. 2025년을 끝으로 단종되거나 출시가 연기되는 전기차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내년은 ‘1세대 전기차의 퇴장’이 본격화되는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모델은 단순 생산 중단이 아닌, 브랜드 전략의 후퇴를 의미하기도 한다.
11일 외신에 따르면 전기차 판매는 여전히 늘고 있지만, 상승 곡선은 완만해졌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정부 보조금 대신 보호관세가 등장했고, 소비자들은 ‘비싸고 불편한 차’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완성차들은 반응이 빨랐다. 일부 모델은 “생산 일시 중단”을 이유로 판매를 접었고, 다른 모델은 판매 부진 탓에 단종됐다. 또 일부는 “예정됐던 2026년형 전기차”가 출시조차 되지 못했다.
한국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정부가 2026년 보조금 예산을 축소하고, 소비자들이 하이브리드로 몰리면서 전기차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아래는 외신들이 꼽은 ‘2026년형부터 단종·취소되는 전기차’ 10종이다.
아큐라 ZDX (Acura ZDX)
혼다의 고급 브랜드 아큐라가 내놓은 첫 순수 전기 SUV. GM과 공동개발한 이 모델은 313마일(약 504km)의 주행거리와 499마력의 고성능 버전을 갖췄지만, 실상은 쉐보레 블레이저 EV의 형제차였다. 출시 1년 만에 단종이 결정됐다. 브랜드 정체성이 모호했고 판매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흥미롭게도 짧은 기간 동안 구형 ZDX의 평생 판매량을 뛰어넘는 1만 대 이상을 기록하긴 했다.
현대차그룹의 프리미엄 세단이지만, 북미 시장에서는 이미 단종됐다. 282마일(약 454km) 주행거리, 385마력 출력 등 성능은 준수했지만, 독일 프리미엄과 테슬라 사이에서 존재감을 만들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판매가 이어지지만, 북미 철수는 향후 글로벌 전략 조정의 신호로 해석된다.
GLB 기반 전기 SUV로, 실용적 구성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미미했다. 251마일(약 404km) 주행거리와 5만4000달러(약 7300만 원)의 가격은 경쟁력이 부족했다. 2025년형을 끝으로 북미 판매가 종료된다. 대체 모델로는 2026년형 신형 전동 CLA가 투입될 예정이다.
스텔란티스가 2021년부터 예고했던 전기 픽업트럭이 끝내 무산됐다. 수차례 연기 끝에 결국 ‘플러그인 하이브리드(Ram 1500 REV)’로 대체되며, 순수 전기 버전은 보류됐다. 전동화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는 내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시장은?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이번 글로벌 구조조정의 영향을 피해가기 어렵다. 전기차 수출의 상당 부분이 북미에 집중돼 있고, 미국이 보조금 대신 관세를 택하면서 전략 전환이 불가피하다. 현대차그룹은 2026년 이후 일부 모델의 북미 생산 전환을 검토 중이고, 르노코리아·KG모빌리티도 하이브리드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 역시 보조금 정책을 ‘전기차 중심’에서 ‘저공해차 전반’으로 넓히며,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의 공존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양산보다 생존이 과제’가 된 전기차 시장, 이제 전기차의 경쟁력은 ‘빠른 속도’보다 ‘지속 가능한 구조’로 옮겨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