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2월, 스웨덴 예테보리에 위치한 볼보 본사 디자인 센터에서 EX90 프로토타입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강렬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존 내연기관 플래그십 XC90의 듬직한 실루엣을 계승하면서도, 전에 없던 첨단 기술과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담아낸 모습은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볼보의 완벽한 청사진이었다.
[최기자 시승기] "안전·지속가능성·성능·승차감 완벽한 네박자"...볼보 EX90 듀얼모터 퍼포먼스 울트라
수년이 흘러 한국에서 다시 만난 EX90은 여전히 멋지고 세련됐다. 볼보가 그리는 '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SDV)'의 최종 진화형이자, 타협 없는 안전과 럭셔리를 품은 순수 전기 플래그십 SUV 'EX90'과 함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경기도 의정부의 카페 '아카니아'까지 왕복 약 57km 구간을 달렸다. 시승 모델은 최상위 트림에 6인승 시트 옵션까지 추가된 'EX90 듀얼모터 퍼포먼스 울트라 6인승'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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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시승에 앞서 EX90의 외장 및 실내 디자인부터 살펴봤다. 시승차는 묵직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블랙 외장 컬러를 입었는데, EX90의 듬직하면서도 날렵함이 공존하는 차체와 잘 어울렸다. EX90의 차체 크기는 전장 5,040mm, 전폭 1,965mm, 전고 1,740mm에 휠베이스 2,985mm다.
먼저 전면부는 볼보 '콘셉트 리차지(Concept Recharge)'의 디자인 언어를 고스란히 옮겨왔고,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볼보만의 고유 디자인 언어를 보여준다. 전기차 특성상 라디에이터 그릴을 과감히 삭제하고 심플한 아이언 엠블럼을 배치했다. 압권은 단연 'HD 픽셀 헤드램프'다. 시동을 켜면 날렵한 픽셀 그래픽의 주간주행등(DRL)이 위아래로 스르륵 열리며 메인 램프가 등장하는 숨겨진 연출은 마치 아이언맨 눈매를 연상케 하는 하이테크 감성을 자극한다.
프론트 범퍼는 큼직한 공기흡입구와 양 옆으로 토르망치 주간주행등과 연결되는 방향지시등을 겸한 주간주행등(DRL) 조명이 색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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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부는 XC90의 듬직한 실루엣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는데, EX90은 처음부터 XC90을 기반으로 개발이 시작됐다고 한다. 다만, 전고를 제외한 사이즈가 더 커졌고, 5m가 넘는 덩치에도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리창과 차체의 단차를 없앤 '플러쉬 글레이징'과 오토 플러시 도어 핸들을 적용해 공기저항계수 0.29Cd라는 훌륭한 수치를 달성했다. 퍼포먼스 울트라 전용으로 장착되는 스포티한 디자인의 22인치 대구경 휠도 전체적인 차량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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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부는 볼보 특유의 수직형 테일램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이는 보다 새롭고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차별화를 두기 위함이다. 테일게이트를 감싸는 'ㄷ'자 형태의 램프와 리어 윈드실드 양옆의 점선 그래픽 조명은 후방카메라가 숨겨진 블랙 패널과 매끄럽게 이어지며 미래지향적인 뒷모습을 완성한다. 이 역시 심리스 디자인 테마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리어범퍼도 하단에 블랙 하이그로시로 마감해 스포티하면서도 무게중심이 낮아 보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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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열 대시보드 중앙에는 14.5인치 세로형 센터 디스플레이가 자리해 중심을 지킨다. 또 스티어링 휠과 센터페시아의 물리 버튼을 극단적으로 덜어내고 대부분의 기능을 화면 속에 통합했다. 특히, 퀄컴 스냅드래곤 콕핏 플랫폼(Snapdragon® Cockpit Platform) 기반의 차세대 사용자 경험인 'Volvo Car UX'가 인상적이고, 자체 개발한 핵심 시스템 '휴긴 코어(Hugin Core™)'와 엔비디아 오린(NVIDIA Orin) 칩이 맞물려 처리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또 TMAP 오토와 음성인식 '아리아'의 똑똑한 길 안내는 여전히 만족스럽지만, 사이드미러나 스티어링 휠 위치 조절까지 디스플레이를 거쳐 스티어링 휠로 조작해야 하는 UI는 조금 불편했고, 운전 중 다소 적응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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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쉬움은 소재의 고급스러움이 달래준다. 최고급 나파가죽으로 마감한 시트는 물론, 대시보드와 도어트림, 센터터널까지 몸이 닿는 모든 곳에 가죽 등 소프트한 소재를 적용해 시각과 촉각을 모두 만족시킨다. 기본 모델에는 페트병 재활용 소재와 스웨덴 산림에서 얻은 바이오 소재로 만든 '노르디코(Nordico)' 가죽이 제공된다. 여기에 업계 최초로 적용된 서울반도체의 '썬라이크(SunLike) LED' 우드 데코 조명은 자연광에 가까운 은은한 빛으로 공간을 심플하고 포근하게 감싼다.
최신 차량들이 다양한 컬러의 화려한 앰비언트 라이팅으로 치장하는 것과 확실히 대조되는 포인트다. 또 요즘 차들이 조수석까지 길게 디스플레이를 적용하거나 블랙 하이그로시 또는 플라스틱 마감을 하는 반면, 볼보 EX90은 가죽과 원목, 알루미늄까지 진짜 리얼 소재로 마감해 볼보 고유의 색깔과 결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드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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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 특유의 인체공학적 시트의 편안함도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 6인승 모델의 2열 독립형 시트는 평평한 바닥과 어우러져 레그룸과 헤드룸 모두 넉넉한 거주성을 제공하며, 전동식으로 조작되는 3열 역시 승하차가 편리해 패밀리 SUV로서의 활용도를 극대화했다. 천장에는 버튼 하나로 투명 및 불투명 기능을 제공하는 '일렉트로크로믹 글라스 루프'를 적용해 뛰어난 개방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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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오디오 시스템은 볼보 EX90의 진정한 백미다. 무려 1,610W 출력의 '바워스앤윌킨스(Bowers & Wilkins) 하이 피델리티 사운드 시스템'은 25개의 스피커를 통해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와 애플뮤직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방음이 완벽한 실내에서 듣는 입체적인 서라운드 사운드는 작은 콘서트홀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한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이외에도 드디어 소프트 클로징 도어가 적용된 것 역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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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공간도 시트 폴딩 시 풀 플랫으로 평평하게 접혀 활용도가 굉장히 좋다. 다만, 프렁크는 충전 케이블이나 작은 물건만 적재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작은데, 최근 글로벌 시장에 출시된 'EX60'보다 활용도가 떨어지는 점은 아쉽다. 참고로 EX60은 한층 진보된 SPA3 플랫폼이 적용된 만큼 차이는 있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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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트레인은 106kWh 대용량 배터리와 듀얼 모터 시스템의 조합이다. 시승한 퍼포먼스 모델은 시스템 합산 최고출력 680마력(500kW), 최대토크 81.1kg.m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공차중량이 2.5톤을 훌쩍 넘지만,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단 4.2초에 불과하다. 웬만한 고성능 스포츠카와 맞먹는 수치다. 여기에 초기 400V 시스템이었던 EX90은 업그레이드를 거쳐 800V 배터리 시스템을 적용해 350kW 급속 충전 시 10%에서 80%까지 약 22분 만에 충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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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충돌 제로(Zero Collision) 달성'이라는 볼보의 브랜드 비전에 따라 새롭게 적용된 '안전 공간 기술(Safe Space Technology)'도 주목할 포인트다. 5개의 카메라와 5개의 레이더, 12개의 초음파 센서로 구성된 첨단 센서가 기본으로 탑재돼 운전자 및 탑승자, 도로 위 모든 이들까지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수준의 안전 표준을 제시한다. 여기에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과 '실내 승객 감지 시스템'을 도입해 운전자의 컨디션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차량 내 방치될 수 있는 어린이나 반려동물의 사고를 원천적으로 예방한다.
뿐만 아니라, EX90에 적용된 SPA2 플랫폼은 경량 알루미늄, 보론강(초고강도 강철) 등을 적절히 사용해 사고 시 배터리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더욱 발전된 충돌 구조와 안전 케이지(Safety Cage)로 설계됐다. 그 결과, 기존 XC90 대비 비틀림 강성이 50%, 충돌 시 에너지 흡수가 20% 향상되는 등 차량 하부와 배터리 팩 구조의 강도와 안전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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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을 살펴보고 본격적인 시승을 시작했다. 시승코스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출발해 내부순환로, 동부간선도로를 거쳐 의정부에 위치한 아카니아 카페로 향하는 약 29km 구간으로, 도심 정체와 고속 주행이 혼재돼 일상에서의 주행 상황을 중점으로 느껴봤다.
복잡한 서울 도심을 빠져나가는 동안 가장 먼저 체감되는 건 차량이 의외로 다루기 쉽다는 점이다. 전장 5m, 무게 2.5톤이 넘는 거구지만, 스티어링 휠의 핸들링 감각은 깃털처럼 가볍고 명료해 앞머리를 원하는 궤적으로 정확히 찔러 넣는다. 강력한 듀얼 모터는 신경질적으로 튀어나가는 것이 아닌, 가속 페달을 밟는 양에 맞춰 리니어하고 고급스럽게 동력을 꺼내놓는다. 막히는 구간에서 가다 서기를 반복할 때의 제동 성능 역시 흠잡을 데 없다. 회생제동의 개입이 매우 자연스러워 차체가 울컥거리거나 탑승자의 고개가 앞으로 쏠리는 노즈다이브 현상을 완벽하게 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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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간선도로에 올라타며 가속 페달을 깊게 밟자, 숨겨진 발톱을 드러낸다. 최고출력 680마력, 최대토크 81.1kg.m의 엄청난 힘이 네 바퀴로 쏟아지며 2.5톤의 차체를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단 4.2초 만에 매섭게 밀어붙인다. 놀라운 건 고속 코너링에서의 거동이다. 부드러운 승차감을 유지하다가도 굽이진 코너를 빠르게 진입하면 바깥쪽 서스펜션이 팽팽하게 긴장하며 차체가 바깥으로 쏠리는 롤링을 기가 막히게 방어해 낸다. SUV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한 훌륭한 섀시 밸런스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건 단연 '듀얼 챔버 에어 서스펜션'이다. 기존 내연기관 XC90의 서스펜션이 요철을 다소 묵직하게 밟고 넘어갔다면, EX90은 도로 위의 불규칙한 충격과 자잘한 진동을 마치 두툼한 융단을 깐 것처럼 최소한의 노면 피드백만 전달할 뿐 웬만한 것은 깔끔하게 지워낸다. 여기에 플래그십다운 압도적인 NVH 설계가 정점을 찍는다. 이중접합 차음 유리와 두터운 방음재 덕분에 시속 100km 고속 주행 시에도 날카로운 풍절음이 실내로 침투하지 않고, 휠하우스 등 하부에서 올라오는 로드노이즈도 최대한 억제돼 극강의 정숙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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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는 조수석에 앉았는데, EX90이 극단적으로 정숙성이 좋은 진짜 이유를 깨달았다. 이 차의 완벽한 침묵은 그저 승차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최고의 오디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치밀한 무대 장치인 셈이다. 차량에 탑재된 1,610W 출력의 바워스&윌킨스(B&W) 사운드 시스템은 헤드레스트 스피커를 포함해 무려 25개의 스피커로 무장했다.
영국의 전설적인 녹음실과 협업한 '애비 로드 스튜디오 모드'를 켜고 노래를 들으면 멜로디는 실내 전체의 입체적인 공간감을 보여주고, 보컬은 또렷하게 맺힌다. 서로가 앞으로 튀어나오려 경쟁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를 완벽하게 존중하는 세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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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륨을 한껏 높일수록 감동은 배가 된다. 급이 떨어지는 오디오는 볼륨을 키우면 소리가 뭉개지면서 귀를 기분나쁘게 찌르지만, EX90의 바워스&윌킨스 사운드 시스템은 마치 스튜디오 한 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평소에 볼보 'XC90 T8 엑설런스' 모델을 타고 항상 차 안에서 노래를 듣다 내리는데, 이번 시승을 마친 후에도 내리기 싫게 만드는 매력은 EX90에서 더 크게 다가왔다. 참고로 가족 중심의 2열 시승을 못해본 것이 아쉬워서 다음에 다시 한 번 만나봐야겠다.
[최기자 시승기] "안전·지속가능성·성능·승차감 완벽한 네박자"...볼보 EX90 듀얼모터 퍼포먼스 울트라
한편, 볼보 EX90 듀얼모터 퍼포먼스 울트라는 넉넉한 공간과 타협 없는 안전, 폭발적인 성능과 플래그십 세단 못지 않은 안락한 승차감까지 모두 챙긴 완벽한 패밀리 SUV다. 터치스크린에 집중된 조작 방식이 누군가에겐 진입장벽일 수 있지만, '타면 탈수록 진화하는 SDV'라는 관점에서는 분명한 미래지향적 진화다.
볼보 EX90은 짧은 시승 시간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여운이 길게 남는 차였다. 사랑하는 가족 또는 탑승자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이동 공간과 완벽한 오디오 룸을 선사하고 싶은 소비자라면 이보다 완벽한 대안은 없다. 시승 차량인 볼보 EX90 듀얼모터 퍼포먼스 울트라 6인승 모델의 국내 판매 가격은 1억 2,32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