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제조사가 제시하는 주행 가능 거리가 곧 전기차(EV)의 '성적표'처럼 여겨지는 시대다. 하지만 실제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이 수치들이 얼마나 현실과 일치할까? 영국의 자동차 전문 매체 카와우(Carwow)는 6일(현지 시각) 50대가 넘는 글로벌 메이커의 신형 전기차를 대상으로 대규모 '실주행 거리 방전 테스트' 결과를 통합 분석했다. 이 테스트는 단순한 드래그 레이스를 넘어, 소형 시티카부터 고성능 세단까지 모든 차가 충전 한 번으로 배터리가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가혹한 실험이다.
특히 이번 테스트에서 한국 브랜드는 기아 EV9, 제네시스 GV70 등이 제조사 주장 대비 94%에 달하는 높은 달성률을 기록하며 '정직한 효율' 측면에서 글로벌 선두를 다툰 반면, 일부 중국 EV 브랜드는 낮은 달성률을 기록하며 성능 편차를 보였다.
카와우의 주행 거리 테스트 규칙은 간단하면서도 실효성이 높다. 모든 차는 제한 속도를 지키며 동일한 고속도로를 달리고,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될 때까지 주행해 가장 멀리 가는 차가 승자다. 동시에 제조사가 주장한 주행 가능 거리(Claimed Range)에 얼마나 근접했는지도 함께 측정한다. 지난 몇 년간 누적된 52대의 테스트 결과는 소비자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EV 성능 지표를 제시한다. 단순히 긴 주행 거리보다, 제조사의 주장 대비 실효율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롱런'의 승자, 폴스타 3의 압도적 기록과 글로벌 TOP 5
카와우가 테스트한 52대의 전기차 중 폴스타 3가 가장 먼 거리를 달렸다. 이 차는 주장 범위 438마일(약 705km) 대비 390마일(약 628km)을 주행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는 제조사 주장 거리 대비 89%를 달성하는 데 그쳤지만, 롱런 순위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롱런 순위 TOP 5를 살펴보면, 포르쉐 타이칸이 주장 421마일(약 678km) 대비 368마일(약 592km)을 기록하며 2위에 올랐고, BMW iX는 주장 426마일(약 686km) 대비 366마일(약 589km)로 3위를 차지했다. 이어서 메르세데스 EQE가 357마일(약 575km)로 4위, 테슬라 모델 3(페이스리프트)가 352마일(약 567km)로 5위를 기록했다. 반면, 순위표 맨 아래에는 소형차인 혼다 e가 방전되기 전까지 겨우 113마일(약 182km)을 달리며 최하위에 자리했다.
단순히 멀리 가는 것보다 더 주목해야 할 기준은 바로 제조사 주장 대비 실주행 거리가 얼마나 정확했는지이다. 이 '주장 달성률' 순위표에서는 결과가 완전히 뒤바뀐다. 롱런 2위였던 포르쉐 타이칸은 달성률 12위로 내려앉았다. 꼴찌였던 혼다 e는 주장 범위의 90%를 달성하며 달성률 14위로 뛰어올랐다.
더 놀라운 사실은 공식 주장 범위보다 더 멀리 달린 차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미니 일렉트릭 구형 모델은 주장 거리 145마일(약 233km)을 넘어 실제로는 154마일(약 248km)을 달려 달성률 106%를 기록했다. 폭스바겐 e-업 역시 주장 거리 159마일(약 256km)을 넘어 162마일(약 261km)을 주행하며 102%를 달성했다. 가장 정확한 예측을 보여준 것은 바로 이 작고 저렴한 소형 전기차들이었다.
주장 달성률 순위 TOP 5에는 미니 일렉트릭(106%)과 폭스바겐 e-업(102%)이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으며, 이어서 르노 조이(96%), 메르세데스 EQE와 기아 EV9이 나란히 94%를 기록하며 4, 5위에 올랐다.
카와우 테스트에서 한국차들은 제조사 주장 대비 높은 달성률을 기록하며 글로벌 선두권의 신뢰도를 입증했다. 이는 한국 브랜드가 주행 가능 거리를 비교적 보수적으로 책정했거나, 실제 도로에서의 에너지 관리 효율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아의 최신 플래그십 SUV인 EV9의 성적이 단연 돋보였다. EV9은 주장 범위 349마일(약 562km) 대비 실제 329마일(약 530km)을 달성하며 94% 달성률로 글로벌 TOP 5에 진입했다.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 역시 GV70 전동화 모델이 주장 298마일(약 480km) 대비 실제 279마일(약 449km)을 기록하며 EV9과 동일하게 94%의 높은 신뢰도를 보였다. 구형 기아 EV6와 기아 E-니로도 각각 91%와 90%의 준수한 실효율을 보여줬다.
반면, 모델별 편차도 드러났다. 현대 아이오닉 5(페이스리프트 전)는 주장 범위 285마일(약 459km) 대비 실제 237마일(약 381km)을 주행해 83%의 달성률을 기록했으며, 제네시스 GV60 역시 79%를 기록하며 상대적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글로벌 EV 시장의 강자들 역시 다양한 성적표를 내놨다. 테슬라는 모델 3(페이스리프트)가 롱런 순위 5위에 오르며 우수한 하드웨어 성능을 입증했다. 하지만 고성능 모델인 모델 S 플레이드(Plaid)를 포함한 일부 테슬라 모델은 달성률이 75%~79%대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테슬라가 주행 가능 거리를 다소 공격적으로 높게 책정했음을 시사한다.
독일 프리미엄 모델 중에서는 메르세데스 EQE가 94%의 달성률을 기록하며 BMW iX나 포르쉐 타이칸보다 뛰어난 효율 정확도를 보여줬다. 최저 달성률은 로터스 이메야 R로, 주장 대비 64%에 그쳤다. 아우디 RS e-트론 GT 역시 69%로 하위권에 머물렀는데, 이는 고성능 스포츠 EV들이 대체로 주장 달성률이 낮게 나타나는 경향과 일치한다.
중국 EV는 모델별 큰 편차를 보였다. 샤오펑 G6와 같이 한국차에 버금가는 '실주행 정직도'를 보여준 모델이 있는 반면, 로터스 이메야 R처럼 고성능 스포츠 EV들이 주장 대비 달성률이 낮게 나타나는 경향을 따르며 가장 낮은 효율 정확도를 기록했다.
Xpeng G6는 롱런 순위에서 10위를 기록했으며, 실제 주행 거리는 328마일(약 528km), 주장 달성률은 93%로 매우 높은 효율을 보였다. 이는 한국의 EV9, GV70과 비슷한 수준이다. BYD Seal은 롱런 순위 15위, 실제 주행 거리 310마일(약 499km), 주장 달성률은 82%를 기록했다. BYD Sealion 7은 롱런 순위 28위, 실제 주행 거리 277마일(약 446km), 주장 달성률은 89%를 보였다.
리프모터 C10과 로터스 이메야 R는 하위권에 위치했다. 리프모터 C10는 롱런 순위 40위, 실제 주행 거리 224마일(약 361km), 주장 달성률은 85%를 기록했다. 로터스 이메야 R는 롱런 순위 47위, 실제 주행 거리 193마일(약 311km), 주장 달성률은 64%를 기록하며, 테스트 모델 중 가장 낮은 달성률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