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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실록 : 체로키뎐] 안으로는 권속을 품고, 밖으로는 수렁 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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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시승실록 : 체로키뎐] 안으로는 권속을 품고, 밖으로는 수렁 평정

가화만사성을 이룬 내실의 넉넉함과 광야의 본능을 깨운 쿼드라-리프트의 비기

육동윤 기자

기사입력 : 2026-01-06 09:02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AI 편집) 사진=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AI 편집) 사진=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2025년을 보내고 2026년을 맞이하는 시점에 스텔란티스코리아가 지프 그랜드 체로키를 10일간 장기 시승차로 제공했다. 단발성 시승기로는 이 차가 가진 무게와 결을 온전히 담기 어렵다고 판단해, 이번 기획은 ‘옛 기록’의 문체를 빌려 여정을 남기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하루하루의 감각을 ‘실록’처럼 떠올려본다. 편집자주

제5장.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 모두를 품으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행군 닷새째, 오늘은 이 거대한 함선에 소중한 권속들을 태우고 길을 나섰다. 일찍이 옛 성현들이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 하였으니, 기함의 존재 이유 또한 운전자 혼자의 즐거움이 아닌 보금자리 전체의 평안에 있음이라.

뒷문을 여니 그 광활한 내실이 마치 대궐의 사랑채와 같다. 이열(2列)의 좌석은 대갓집 소파처럼 넉넉하여 장성한 사내나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두를 포용하고, 등받이의 각도를 조절하니 마치 구름 위에 누운 듯한 편안함을 선사한다. 특히 머리 위를 가득 채운 파노라마 선루프는 창공을 그대로 실내로 끌어들여, 좁은 가마 속에 갇힌 답답함 대신 사방이 트인 정자에 앉아 유람하는 듯한 개방감을 준다.

가장 기특한 것은 곳곳에 숨겨진 세심한 배려들이다. 각자의 자리에 마련된 공조 장치는 누군가는 따뜻한 온기를, 누군가는 시원한 바람을 즐길 수 있게 하여 다툼을 미연에 방지한다. 또한, 수많은 보물(전자기기)을 충전할 수 있는 단자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니, 긴 도정 속에서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거대한 수하물 칸(트렁크)은 가족의 온갖 살림살이를 삼키고도 여유가 남아, "이것저것 다 챙겨라" 하던 아낙의 걱정을 단숨에 잠재웠다.

길을 달리는 내내 뒷좌석의 권속들은 깊은 단잠에 빠지거나 창밖 풍경을 논하며 즐거워했다. 차체가 높고 웅장하여 멀미의 기운이 스며들 틈이 없고, 부드러운 승차감은 요철을 지날 때조차 요람을 흔드는 듯 부드럽게 넘겨주기 때문이다. 가족 모두가 평온하게 목적지에 당도하여 문을 나설 때, 그들의 얼굴에 어린 만족스러운 미소야말로 이 기함이 받은 가장 높은 등급의 훈장이었다.

모두를 품고도 여유를 잃지 않는 그랜드 체로키의 넉넉한 품성을 우러러보며, 다섯째 날의 기록을 맺는다. 내일은 다시금 홀로 거친 들판으로 나아가, 지프 가문의 골격 속에 잠들어 있는 야생의 본능을 깨워보려 한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AI 편집) 사진=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AI 편집) 사진=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제6장. 본능(本能) — 진흙길의 혈투, 지프의 골격이 살아나다

행군 엿새째, 비단길 같은 대로를 뒤로하고 마침내 지프 가문의 숙명이라 할 수 있는 거친 광야로 발길을 돌렸다. 며칠간 내린 비로 길은 눅눅한 진흙 수렁이 되었고, 바퀴를 삼키려는 듯 입을 벌린 구덩이들이 곳곳에서 기함을 시험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기함의 비기(祕技)인 '쿼드라-리프트(Quadra-Lift)'를 가동하였다. 그러자 나직이 엎드려 있던 거구가 마치 잠에서 깨어난 거인처럼 스스로 허리를 곧게 펴 차고를 높이기 시작했다. 지면으로부터 몸을 멀찌감치 띄워 올리니, 날카로운 돌부리와 깊은 진흙탕도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이는 마치 장수가 전장에서 말의 고삐를 바짝 죄어 올려 적진을 내려다보는 듯한 웅장한 시야를 선사했다.

이어 지형 설정 시스템인 '셀렉-터레인(Selec-Terrain)'을 진흙(MUD) 모드로 돌리니, 기함의 성격이 일순간 표변하였다. 부드럽게 속삭이던 엔진은 낮게 깔리는 포효로 바뀌었고, 네 개의 바퀴는 마치 굶주린 짐승의 발톱처럼 미끄러운 흙바닥을 깊숙이 움켜쥐었다. 한쪽 바퀴가 허공을 맴도는 아찔한 순간에도, 기함은 영민하게 구동력을 배분하여 단숨에 수렁을 박차고 나갔다.

거친 길 위에서 차체가 비틀릴 법도 하건만, 뼈대(프레임)의 강인함은 흔들림이 없었다. 실내에서는 그 어떤 잡소리나 불안한 비명도 들리지 않았으니, 험로를 정복하는 와중에도 기품을 잃지 않는 그 모습에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튀어 오르는 흙탕물이 기함의 하얀 외벽을 더럽혔으나, 그것은 오욕이 아니라 훈장과도 같았다.

도심의 수트 속에 감춰져 있던 야생의 본능이 깨어나는 것을 목도하며, 나는 비로소 이 차가 왜 '지프'라는 이름을 허락받았는지 깨달았다. 광야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 그 당당한 기개를 붓 끝에 담으며 여섯째 날의 기록을 마친다. 내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하는 퇴근길의 고요한 동반자로서 이 차를 다시 마주해 보려 한다.


육동윤 글로벌모빌리티 기자 ydy33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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