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토요타 박물관 야스히로 사카키바라 관장이 박물관 입구에 전시돼 있는 토요타 모델 AA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나고야,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 취재를 위해 일본 나고야를 찾은 기자단은 경기의 역동적인 기술 경쟁을 넘어, 일본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압축 성장' 모델을 되돌아보는 특별한 기회를 가졌다. 일본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인 나고야에 자리한 토요타 박물관(Toyota Automobile Museum)은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후발주자가 어떻게 선두를 따라잡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제시한다.
취재단은 지난 6일 출국 후, 토요타 그룹의 모태인 산업기술 기념관(7일)에 이어, 8일에는 인류 자동차 역사를 총망라한 토요타 박물관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기자는 한국이 서구에 비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특유의 속도와 혁신으로 빠르게 성장해 온 과정의 해답을 찾은 듯했다.
[르포] 일본차 태동지 나고야, 토요타 박물관에서 찾은 ‘산업 성장’의 힌트
이미지 확대보기첫 가솔린 자동차 1886년 벤츠 모터바겐 사진=나고야,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토요타 박물관 본관은 유럽과 미국에서 자동차가 태어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을 아우르는 전시를 통해 일본이 얼마나 늦게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1886년 벤츠 모토바겐(Benz Patent Motorwagen)이 서구에서 등장했을 때, 일본은 아직 근대화 초기 단계였다. 박물관의 스토리는 바로 이 '늦은 시작'을 서구의 실차(實車) 전시를 통해 직시하게끔 구성돼 있었다.
박물관 1층과 2층에 전시된 초기 유럽 및 미국 자동차들은 일본 자동차 산업이 '배움'에서 시작했음을 증명했다. 토요타의 창업주인 도요다 기이치로가 미국 방문 후 대량 생산 시스템에 영감을 받았듯, 일본차의 태동은 서구의 기술을 연구하고 모방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 과정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선진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여 성장했던 초기 모습과 닮아 있다.
[르포] 일본차 태동지 나고야, 토요타 박물관에서 찾은 ‘산업 성장’의 힌트
이미지 확대보기대량생산을 이끌었던 포드의 모델 T 사진=나고야,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특히 헨리 포드의 '모델 T(Model T)'와 그 생산 시스템에 대한 전시는 후발주자에게 대량 생산과 규모의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이 시스템을 일본 실정에 맞게 변형하고 발전시킨 것이 바로 토요타 생산 시스템(TPS)의 기틀이 됐다. 이는 한국의 제조업 발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본관 3층에 전시된 토요타의 첫 생산 모델(AA형) 및 그 전신인 A1형 복제 모델과 초기 일본차들은 서구의 모방에 그치지 않고, 자국 환경에 최적화된 독자적인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했는지 보여준다.
첫 시작을 지나 근대화가 진행된 1960~70년대에 접어들자, 오일 쇼크를 겪으면서 일본차는 서구의 대형차와는 달리 '고연비와 실용성'이라는 독자적인 가치를 무기로 글로벌 시장을 선점했다. 이는 후발주자가 시장을 뒤집기 위해서는 시대적 변화를 읽고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하는 '전략적 혁신'이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일본의 성취는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산업 전환기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우리는 비록 서구와 일본보다 늦게 산업화됐지만, 반도체, 배터리, IT 기술 등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 분야에서는 이미 선도적인 위치에 있다. 박물관에서 확인한 일본의 '따라잡기 역사'는 한국이 이제는 그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혁신하며 미래 산업을 선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본관 3층을 지나며 만난 토요타 크라운(Crown)과 닛산 스카이라인(Skyline) 등 일본의 '마이카' 시대를 연 주역들은 또 다른 교훈을 제시한다. 이 차들은 서구의 모델을 벤치마킹하는 단계를 넘어, 자국 소비자들의 요구와 도로 환경에 최적화된 독자 모델을 개발함으로써 내수 시장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르포] 일본차 태동지 나고야, 토요타 박물관에서 찾은 ‘산업 성장’의 힌트
이미지 확대보기토요타 브랜드의 역사를 함께 살아온 1955년 토요타 크라운 1세대 모델 사진=나고야,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내수 시장에서의 성공은 기술력과 브랜드 신뢰도를 확보하는 핵심 발판이 된다. 이는 한국 자동차 산업이 내수 시장에서 쌓은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던 과정과도 일맥상통한다. 결국, 성공적인 산업 발전은 해외 기술 도입과 함께 자국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가 결합될 때 가능하다는 점을 박물관은 증명하고 있었다.
토요타 박물관의 전시는 130년에 걸친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보여줬다. 그러나 한국은 서구와 일본이 걸어온 '내연기관 기반의 느린 전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대신, 짧은 기간 동안 IT와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며 ‘압축 성장’을 이루어냈다. 이 배경은 우리가 일본과는 '다른 모습'으로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잠재력으로 작용한다.
[르포] 일본차 태동지 나고야, 토요타 박물관에서 찾은 ‘산업 성장’의 힌트
이미지 확대보기토요타 역사 박물관에 전시된 현행 판매 모델이자 브랜드의 미래를 상징하는 수소 자동차 '미라이' 사진=나고야, 육동윤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일본이 수십 년에 걸쳐 이룬 내연기관의 정밀한 완성도를 따라잡기보다, 한국은 전기차, 수소차 등 미래 모빌리티 전환 시대를 기회 삼아 '빠르게' 선두에 서야 한다는 목표를 갖게 된다. 한국은 '배터리 전기차(BEV)'와 '수소 연료전지(FCEV)'라는 차세대 동력원에서 승부를 걸고 있으며, 이는 한 단계를 건너뛰는 도약으로 느껴진다.
토요타 박물관의 교훈은 이제 한국이 과거 성공 방식을 답습하는 대신, 우리의 강점을 극대화하여 글로벌 모빌리티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할 때임을 명확히 알려주는 듯하다. 다만, 한 가지 우리에게 아쉬운 한 가지는 이렇게 볼 만한 역사를 가진 박물관이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곳 토요타 박물관은 아이치현 나가쿠테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약 4만6700㎡(약 1만4127평), 전시 차량은 약 140~160대에 달하는 대규모 시설이다. 연간 방문객 수는 정확하지 않지만, 수십만 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내년에는 5월에 열리게 될 WRC 랠리 재팬 관람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한번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라면 더욱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