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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완벽을 설계하는 브랜드 페라리, 슈퍼카의 본질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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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완벽을 설계하는 브랜드 페라리, 슈퍼카의 본질을 말하다

마라넬로의 심장에서 태어난 페라리는 한계를 넘어선다.

육동윤 기자

기사입력 : 2025-08-29 19:07

296 GTB 사진=페라리이미지 확대보기
296 GTB 사진=페라리
페라리는 F1 트랙에서 단련된 기술과 예술적 디자인, 그리고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하나의 세계관’이다. 브랜드의 엠블럼 속 도약하는 말, 카발리노 램판테(Cavallino Rampante)는 페라리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이 말은 제1차 세계대전 에이스 파일럿 프란체스코 바라카의 전투기에서 처음 사용됐고, 그의 가족이 엔초 페라리에게 이 마크를 사용해 달라 부탁한 것이 시초다. 결국, 한 비행사의 용기와 명예가 오늘날 페라리라는 브랜드 철학으로 계승된 셈이다.

카발리노 램판테(도약하는 말 시초) 사진=위키이미지 확대보기
카발리노 램판테(도약하는 말 시초) 사진=위키

조각을 닮은 디자인, 바람을 조율하는 예술

페라리 디자인팀이 가장 먼저 그리는 건 외형이 아니라 운전석에서의 시야다. 운전자가 어떤 풍경을 보고, 어떤 선을 느끼고, 어떤 감각을 경험하는지를 먼저 정의한 뒤 차체 비율을 완성한다. 덕분에 페라리의 디자인은 단순히 ‘예쁜 차’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차와 사람, 바람까지 고려한 감각적 조형물에 가깝다. 296 GTB의 짧은 오버행과 유려한 곡선은 전통적인 미드십 스포츠카의 비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반면 SF90 스트라달레의 전면부는 공기를 움켜쥐듯 파고드는 거대한 공기흡입구와 공격적인 디퓨저 라인으로 극한의 퍼포먼스를 시각화한다. 모델마다 완전히 다른 언어를 쓰지만, 모든 곡선과 면은 공기와의 대화를 전제로 설계된다.

페라리 디자인의 비밀 중 하나는 공기역학을 위한 미적 해법이다. 데이토나 SP3의 리어 루버와, 푸로산게의 휠 아치 곡선, SF90의 리어 윙 구조까지 모든 요소가 ‘속도를 더 느끼게 하는 시각적 장치’로 작동한다. 그 결과, 서 있어도 달리고 있는 듯한 긴장감과 역동성을 완성한다.

데이토나 SP3 사진=페라리이미지 확대보기
데이토나 SP3 사진=페라리

퍼포먼스, 수치를 넘어선 감각

페라리의 성능은 제원표로만 설명할 수 없다. SF90 스트라달레가 1000마력을 발휘한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건, 운전자가 어떻게 체감하느냐다. 페라리는 코너를 빠져나올 때 전기모터의 토크를 순간적으로 개입시켜 마치 F1 머신을 다루는 듯한 민첩함을 선사한다. 페달을 밟는 압력, 스티어링휠을 돌리는 각도, 차체의 반응이 모두 운전자의 감각에 맞춰 세밀하게 조율된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페라리 엔지니어들은 트랙 테스트를 진행할 때, 프로 드라이버가 아니라 숙련된 고객을 먼저 태운다. 극한의 랩타임보다 ‘실제 고객이 페라리를 어떻게 느끼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라리의 전자제어 시스템은 ‘성능을 보조’하는 장치라기보다, 운전자가 차와 교감하는 감각적 인터페이스에 가깝다.

럭셔리, 맞춤을 넘어 시간의 예술로

페라리의 럭셔리는 비싼 소재를 나열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고객이 자신만의 페라리를 설계할 수 있는 테일러 메이드(Tailor-Made) 프로그램은 유명하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일부 오너들은 엔초 페라리의 친필 서명 복제본을 대시보드에 새기기도 하고, 자신만의 레이싱 히스토리를 차체 패널에 새기는 비밀 옵션을 요청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또한, 페라리는 오너 경험을 ‘시간의 예술’로 확장해왔다. 예를 들어 전 세계에서 극소수에게만 허락된 마라넬로 공장 투어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과거 F1 챔피언 머신을 보관한 비밀 박물관, 클래식 모델의 복원 과정을 목격할 수 있는 ‘클래시케(Classiche)’ 존, 그리고 차를 만드는 장인과의 직접 대화까지. 이 모든 순간은 ‘차를 소유하는 경험’을 ‘브랜드와 역사를 공유하는 경험’으로 바꾼다.

SF90 스트라달레 사진=페라리이미지 확대보기
SF90 스트라달레 사진=페라리

전동화 시대의 페라리, ‘타협’이 아닌 ‘확장’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전동화 흐름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지만, 페라리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뚜렷한 개성을 드러낸다. 환경 규제 대응뿐만 아니라, 퍼포먼스를 위한 도구로 전동화를 활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SF90 스트라달레다. V8 트윈터보 엔진과 세 개의 전기모터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총 1000마력의 압도적 출력을 발휘한다. 전기모터는 코너 탈출 구간에서 토크를 순간적으로 개입시켜 터보랙을 완전히 상쇄하고, 가속 반응을 인간의 신경처럼 즉각적으로 만든다. 페라리는 이를 통해 “전동화가 퍼포먼스를 희생한다”는 통념을 뒤집었다.

하지만 페라리가 전동화를 받아들이는 속도는 경쟁 브랜드보다 훨씬 신중하다. 페라리는 2030년까지 전체 라인업의 60%를 전동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동시에 순수 내연기관 모델의 가치를 유지하려는 철학도 놓치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제품 전략이 아니라, ‘사운드와 감성’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고집에 가깝다. 엔진 사운드를 “마라넬로의 심장박동”이라 부르는 엔지니어들의 태도에서 페라리다운 자부심이 읽힌다.

250 GTO 사진=페라리이미지 확대보기
250 GTO 사진=페라리

헤리티지를 지키는 집념, ‘클래시케(Classiche)’

페라리가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브랜드 헤리티지를 대하는 태도다. 페라리의 클래시케(Classiche) 프로그램은 제작 당시의 설계도와 부품, 색상 코드까지 보관하고 있는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수십 년 전 모델을 ‘공장에서 막 나온 그대로’ 복원해 준다.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다. 한 오너가 1960년대의 250 GTO를 클래시케 프로그램에 맡겼는데, 18개월에 걸친 복원 과정에서 발견된 ‘원래 설계상의 오류’를 그대로 유지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 미세한 결함마저 페라리의 역사와 스토리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이런 집념이 모여 페라리의 클래식 모델들은 단순한 골동품을 넘어 ‘살아 있는 역사’로 평가받는다.

슈퍼카 시장에서의 포지셔닝 변화

과거 슈퍼카 시장은 ‘속도와 성능’을 중심으로 경쟁했다. 하지만 전동화 흐름과 럭셔리 시장의 확장 속에서 페라리는 단순히 빠른 차를 넘어 ‘경험을 파는 브랜드’로 포지션을 바꾸고 있다.

페라리의 코르소 필로타(Corso Pilota)는 전 세계 오너들을 위해 마련된 페라리 전용 드라이빙 아카데미다. F1 기술을 바탕으로 한 차량 세팅, 코너링 전략, 레이싱 라인 해석까지 세밀하게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오너가 자신의 차를 온전히 이해하고 다룰 수 있도록 돕는 ‘브랜드와 고객의 교감 공간’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페라리는 최근 푸로산게(Purosangue)라는 페라리 최초의 4도어 SUV를 선보이며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페라리답지 않은 차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출시 이후 전 세계 수요는 오히려 폭발적이었다. 고객들은 단순히 SUV가 아니라, 페라리가 SUV를 어떻게 재해석했는가에 관심을 가졌다. 결국, 푸로산게는 ‘실용성’과 ‘페라리다움’을 동시에 충족시키며 브랜드의 저변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푸로산게 사진=페라리이미지 확대보기
푸로산게 사진=페라리

숨은 스토리: 마라넬로의 ‘비밀 방’

페라리 본사가 있는 마라넬로에는 ‘아틀리에 디 세그레토(Atelier di Segreto, 비밀 아틀리에)’라 불리는 구역이 있다. 이곳은 페라리의 미래 모델 디자인과 테스트가 진행되는 공간으로, 브랜드 내부에서도 극소수만 출입이 가능하다. 새로운 콘셉트카가 처음으로 빛을 보는 장소이자, 향후 라인업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곳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엔초 페라리 시절부터 지금까지 ‘완성 전 디자인’을 외부에 유출한 사례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엄격한 비밀주의 덕분에, 페라리의 신차는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까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이런 ‘신비주의 전략’은 브랜드의 희소성과 상징성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페라리라는 세계를 경험한다

페라리는 여전히 슈퍼카의 상징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페라리는 디자인·퍼포먼스·럭셔리를 결합한 하나의 세계관을 제시한다. 오너에게 차를 파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역사와 철학, 미래까지 함께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전동화 시대가 도래하면서도, 페라리는 페라리다움을 잃지 않는다. 소리, 감성, 주행 경험을 중심으로 ‘자동차를 넘어선 예술’을 만들어내며, 마라넬로에서 태어난 이 브랜드는 여전히 슈퍼카의 본질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정의하고 있다.


육동윤 글로벌모빌리티 기자 ydy33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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