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 흐름 속에서 대형 3열 SUV는 여전히 중요한 선택지다. 다만, 넓은 공간과 고급스러운 주행 감각, 효율성을 모두 충족하는 전기 SUV는 드물다. 지난주 시승한 현대 아이오닉 9 캘리그래프(Calligraphy)는 이 모든 요구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고급 세단을 연상케 하는 정숙성, 완성도 높은 주행 성능, 첨단 편의 기술을 두루 갖춘 이 차가 오늘의 시승차다.
아이오닉 9는 전장 5060mm, 전폭 1980mm, 전고 1755mm, 휠베이스 3130mm에 달하는 대형 SUV다. 한눈에 들어오는 크기와 균형 잡힌 비율은 아이오닉 라인업의 플래그십다운 존재감을 드러난다. 현대차가 말하는 디자인 언어는 ‘에어로스테틱(Aerosthetic)’. 슬림한 픽셀형 LED 헤드램프, 수평으로 뻗은 전면부, 보트 테일 스타일 리어 부분은 공기역학적 완성도, 그리고 시각적 안정감을 동시에 구현했다는 내용이다. 시승차인 캘리그래프 트림은 전용 휠 디자인과 하이글로시 블랙 몰딩, 세련된 전용 컬러로 한층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차는 전륜과 후륜에 각각 모터를 배치한 AWD 듀얼 모터 시스템을 탑재했다. 시스템 총출력은 422마력, 최대토크는 71.1kg·m에 달하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단 4.9초 만에 도달한다. 굉장한 퍼포먼스를 내지만, 그렇게 달리고 싶은 가벼운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고속도로와 도심, 그리고 지방국도를 두루 달렸다. 고속 주행에서는 대형 SUV 특유의 묵직한 안정감과 전기 모터 특유의 즉각적인 가속 반응이 인상적이다. 회생제동 시스템은 브레이크 페달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정교하게 세팅돼 있다. 주행 리듬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다는 생각이다. 큰 차를 큰 차답지 않게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승차감은 대형 럭셔리 세단을 연상시킨다. 에어서스펜션과 이중 차음 유리, 노면 소음을 능동적으로 상쇄하는 ANC-R(Active Noise Control-Road) 기술 덕분에 시속 100km 이상으로 주행해도 차안은 고요했다. 렉서스를 쫓던 현대차가 요즘 들어 더 잘 하는 일이다.
노면 요철을 지날 때는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하고, 코너 구간에서는 차체를 단단히 잡아주며 안정성을 확보했다. 특히 3열 승객 공간에서도 바운싱 현상이 적어, 7인승 구성에서도 장거리 이동의 피로감이 크지 않다.
실내는 ‘거실 같은 SUV’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아이오닉9는 3열 SUV임에도 공간 활용성이 뛰어나며, 플랫한 바닥과 3130mm의 긴 휠베이스 덕분에 2열과 3열 모두 쾌적하다. 캘리그래프 트림에는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 14.6인치 중앙 디스플레이, 증강현실(AR) 기반 헤드업 디스플레이(HUD)가 적용돼 운전자 정보 접근성을 극대화했다. AR HUD는 네비게이션 경로와 차량 주변 상황을 도로 위에 겹쳐 보여준다. 좋긴 좋다만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거 같다.
2열 캡틴 시트는 릴렉세이션 컴포트 모드를 지원해 거의 비즈니스 클래스 수준의 안락함을 제공한다. 앞 시트 헤드레스트 뒤쪽에 개별 모니터를 탑재하고 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좌석이다. 3열 시트 역시 성인 2명이 무리 없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있다. 여기에 일부 트림에서 제공되는 회전형 2열 시트는 가족 중심 사용자에게 또 다른 별미가 될 수 있을 거 같다.
아이오닉 9는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한다. 바닥에 110.3kWh 대형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 시 제원상 최대 620km(WLTP 기준)까지 주행할 수 있다. 350kW 초급속 충전 시 10%에서 80%까지 약 24분 만에 충전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실제 주행에서 오차범위는 대략 ±50km로 보는 게 맞다. 에어컨 등의 사용기준에 따라 변동하는 수치. 하지만, 여전히 장거리 여행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정도의 여건이 된다.